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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Sep 24. 2023

길거리 오뎅의 영혼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열아홉 번째

일본 출장을 다녀와 일주일 만에 회사에 출근을 했다. 동료가 다가와서는 출장은 괜찮았냐고 즐거운 출장이었냐고 물었다. 출장이 즐겁고 안 즐거울  종류의 것은 아닐 텐데 갑작스러운 질문에 뭐라 대답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힘들었어요. 한식도 너무 먹고 싶었고요. 나이 들면 이제 남의 나라 음식은 안 맞나 봐요"


그 사람이 기대했던 답이었던지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오른다. 그러더니 점심에 다 같이 한식을 먹으러 가자고 얘기한다. 대답도 하기 전에 돌아서서 동료들에게 오늘은 내가 한식을 먹고 싶어 하니 점심에 한식당에서 가자고 하며 큰 소리로 웃었다. 참 소란스러운 사람이다.


한식에 대한 선호는 해외를 나가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한식 없이도 몇 개월째 거뜬하지만 어떤 사람은 하루만 돼도 한식당을 찾아 헤맨다. 나는 전자에 가까워서 해외를 나가도 가는 곳마다 한식을 먹는 타입은 아니다. 몇 주 정도는 한식을 안 먹어도 전혀 지장이 없다. 몇 달 정도 외국에 있으면 슬슬 김치와 한식이 조금 당기기는 한다. 하지만 내가 가본 외국에는 한국식당이 없는 곳이 없었다.  좀 비쌀 뿐이지 오히려 한국보다 양도 많고 맛도 있다.


한국에서의 삶이 팍팍했던 나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그다지 크지 않은 편이어서 향수병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외국인 동료들과 그 나라의 음식을 맛보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관광지에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파는 그런 음식 말고 현지인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런 음식들. 태어 나서 처음 보는 식재료와 요리법으로 만든 음식을 만날 때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앞섰다. 한국에서도 고집스럽게 변화를 싫어했지만 외국에서는 신기하게도 마음이 쉽게 열려버렸다. 오히려 살짝 부유하는 느낌으로 있던 외국에서의 일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언제나 그렇듯 내 마음은 착 가라앉아 닫혀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외국에 있는 듯한 마음 때문에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곤 했다. 영혼 없이 회사와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이 반복된다.


내가 사는 지역은 대부분 개발이 완료돼서 작은 길들이 없고 대부분 대로에 아파트들이 많다. 하지만 역에서 아파트로 가는 샛길이 아직 남아 있고 그 옆으로 조금 남은 흙배기 땅에 오뎅과 떡볶이를 파는 집이 있다. 옆에 꽈배기를 파는 집도 있었는데 작년에 불에 타 없어지고 떡볶이 집만 남아 있다.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에는 길에서 파는 음식들이 정말 많다. 관광지에 있는 그런 뻔한 것들 말고 주택가와 회사 근처에서 죽, 빵, 튀김 등등 간단한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것들을 판다. 나도 몇 번 사 먹어 보았지만 입맛에 잘 맞지 않았다. 길거리 음식이라도 관광지에서 파는 것들이 얼마나 외국인들에게 맞춰져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외국인 동료들이 나와 식사를 할 때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음식만 시킨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다. 그래서 외국에서 일할 때 아무리 오래 같이 시간을 보내도 완벽하게 그들 세계에 있지 않고 한국과 외국 사이 어딘가에쯤 붕 떠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소한 배려들이 날 계속 손님으로 만드는 것이다.


집으로 가는 샛길에 있는 오뎅집에 가면 전혀 배려가 없는 한국 음식이 날 맞이 한다. 며칠(혹은 몇 달)을 끓였을지 모르는 탁한 국물에 게딱지 같은 게 들어 있고 대나무 꼬챙이에 꽤어진 오뎅이 수북이 넣어져 있다. 그 앞으로는  플라스틱 붓이 들어있는 간장 항아리가 있어 오뎅에 간장을 발라 먹을 수 있다. 오뎅을 먹고 난 대나무 꼬치는 씻지도 않고 다시 재활용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미 한 입 베어 물은 오뎅을 간장 항아리에 푹 담가서 먹기도 한다. 간장 항아리가 있는 테이블 밑으로는 오뎅국물을 먹던 종이컵들이 버려져 있고 버려진 국물들도 군데군데 고여있다. 예전에 플라스틱바가지에 오뎅국물을 주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좋아진 거라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비위생적이다.


오늘 집에 오다가 쌀쌀한 날씨 탓인지 홀린 듯이 그곳에 들어갔다. 뜨거운 국물을 종이컵에 따라 마시고 오뎅에 간장을 붓으로 발라 조금씩 먹는다. 외국의 낯선 길에서 파는 음식을 먹고 얼마나 많은 탈이 났었는지 기억이 나지만 여긴 내 고향이다. 불안함도 잠시일 뿐 살짝 짭짤한 오뎅과 국물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내가 한국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기분 나쁠 정도로 배려 없는 이 음식이 날 이방인의 자리에서 한국으로 데리고 온다. 비로소 땅에 다리 내리면서 부유하는 정신이 몸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부유하던 마음이 몸으로 돌아올 때 무언가 다른 이질적인 게 붙어 있음을 알았다. 내 마음을 따라온 그 이물감이 무엇인지 생각하느라 머릿속에서 오물거리고 있을 때 회사동료의 웃던 얼굴이 스쳐갔다. 이물감도 곧 사라져 버렸다. 밖으로 나온 나는 갑자기 부는 쌀쌀한 바람에 가방을 안고 집으로 걸어갔다. 한 발 한 발 걸어갈 때마다 내 다리는 땅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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