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면아래 Sep 22. 2023

내 영혼의  튀김 소보루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열여덟 번째

정리해도 끝없이 나오는 냉동실의 물건들은 누가 쌓아 놓은 것일까. 집에는 나밖에 없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물건들이 많다. 규칙적인 생활로 인해 기억력이 많이 좋아진 것 같은 요즘 집안 정리를 많이 하는데 전혀 기억에 없는 물건들이 많이 나온다. 특히나 냉동실이 그렇다.  양이 많아서 남는 것마다 냉동실에 넣다 보니 가뜩이나 좁은 냉동고가 금방 가득 찬다. 넣어둔 기억도 없고 꺼내서 봐도 왜 냉동실에 있는지 모를 것들이 있다. 깻잎이라던가 삶은 계란 같은 것들은 정신을 차린 요즘에 보면 아이큐 낮은 우렁각시가 넣어놨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리고 반대로 넣어둔 기억은 나는데 어디에 박혀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뭐 하나 꺼내려면 온갖 것들을 다 끄집어내어 하나하나 찾아봐야 한다. 누군가는 냉동실 지도를 만들어서 냉장고에 부착하면 관리가 매우 좋다고 하는데 항상 물건을 꺼낼 때는 그래야지 싶다가도 닫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오늘은 저녁에 먹을 베이컨을 찾느라 한참을 뒤적거리는데 작은 봉지 하나가 같이 딸려 나오면서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뭔가 싶어 풀어보니 소보루다. 노란색 종이에 반쯤 감싸진 소보루.


난 빵 중에서 소보루를 제일 좋아한다. 껍데기의 아삭함이 좋아서 껍데기만 떼어먹기도 한다. 냉동실에서 탈출을 감행한 소보루는 튀김 소보루였다. 대전에 가면 성심당이라는 빵집이 있다. 소보루 안에 팥을 넣은 후 통째로 튀겨서 파는데 어느덧 대전의 명물이 되었다. 고향이 대전은 아니지만 10대 후반에 잠깐 대전에서 살았다. 그 옛날부터 성심당은 대전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빵집이었다고 한다. 약속을 잡을 때면 토요일 7시에 성심당 앞에서 만나자 등등으로 쓰이는 도심지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중 하나였다. 지금은 성심당이 있던 곳이 구 도심이 되어서 약속장소로서의 의미는 퇴색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빵집은 점점 유명해져서 대전에 가면 무조건 들려야 하는 명소가 되었다. 사실 난 대전에 살 때 성심당에서 빵을 먹어본 적이 없다. 약속장소로서만 기능할 뿐 빵집이 아니었다.


몇 년 전 대전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여느 출장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일들을 처리하고 서울로 오기 위해 대전역에 갔는데 어느 조그만 빵집 같은데 사람들이 엄청나게 줄을 서 있는 것이었다. 새로 생긴 곳인가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았더니 성심당이었다. 내가 아는 성심당은 중앙로에 있는 커다란 빵집인데 여긴 무엇일까.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은 무얼 사기 위해 줄을 선 것일까. 물어보면 쉬운 일이지만 나는 그냥 궁금한 채로 줄을 서는 선택을 했다. 넉살 없이 궁금증만 많으면 몸이 피곤하다. 줄 뒤에서 계속 보니 사람들은 한 가지 빵을 집중적으로 사고 있었다. 종업원은 쉴 새 없이 빵을 박스에 담아 손님에게 넘기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고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튀김 소보루 한 박스를 샀다. 식기 전에 박스를 닫지 말라는 종업원의 말을 들으면서 난 종이백을 받아 들었다. 고소한 냄새가 났다. 기차 안에서도 선반 위에 올려놓은 소보루 생각이 났다. 지하철에서도 버스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집에 왔다. 드디어 먹을 수 있다. 노란 종이봉투에 반쯤 쌓여있는 소보루 한 개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첫맛은 너무나 고소하고 달콤했다. 튀김과 팥이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맛은 한 개까지였다. 원래 음식을 많이 먹지도 않을뿐더러 살짝 느끼해서 반이상 먹었을 때는 커피가 먹고 싶어 졌다. 박스에는 아직 3개나 더 남아 있었다. 난 한 개씩 소분해서 냉동실에 소보로를 넣었다. 그런데 가끔 생각날 때 냉동실에서 꺼내서 커피와 같이 먹으면 꽤 괜찮았다. 


엄청나게 갈망하게 되는 맛은 아니지만 가끔씩 기억은 나는 맛이라서 그런지 대전에 갈 때마다 한두 박스 정도 사서 먹기도 하고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주기도 한다. 오늘도 대전 출장을 갔다가 일찍 끝나고 올라오는 길에 튀김소보루 두 박스를 샀다. 굳이 회사로 가지 않아도 되는 늦은 오후에 나는 튀김소부로 두 박스를 들고 힘들게 사무실로 돌아가 동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금요일 오후라서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다. 회사 동료가 출장이 끝났으면 집으로 가야지 왜 사무실로 오냐고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내가 주는 튀김소보루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 때문에 웃는 사람을 오랜만에 보았더니 기분이 이상했다. 갈 곳없는 내 눈을 보며 그는 웃으며 고향이 대전이라 좋겠다고 했다. 나는 대전이 고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에게는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게 제일 좋다. 머릿속에 있는 그 편견에 맞춰 말하지 않으면 긴 토론이 시작되거나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만다. 하지만 오늘은 꼭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었다. 왠지 그 웃음에 나를 맞춰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오늘 나는 성심당 빵을 먹으며 자라나서 항상 그곳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튀김소보로가 영혼의 음식인 대전 사람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둘이 함께 잔치국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