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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Sep 15. 2023

눈길 잃은 스테이크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열다섯 번째

새로운 기억이 없어지는 자리를 속속 예전 기억들이 채워간다. 매일 같은 일들을 반복하면 더 그렇다. 5시 반에 일어나고 이불을 개고 사과 한 개를 먹고 물 한잔을 하고 세끼를 챙겨 먹는 나의 하루들이 반복되는 습관으로 가득 차자 현재가 빠르게 사라지고 과거가 점점 선명해진다. 그렇게 빠져나간 현재들은 나의 우울감을 조금씩 가져가는지 어느 순간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멋진 일은 아닐지라도 포기할 만큼 나쁜 것도 아니다. 예전 어떤 영화에선가 '먹는 방법을 고민하느라 식은 스테이크를 먹는 것처럼 때 지난 후회들이 현재를 망치는 것'이란 말을 했다. 그 비슷한 말이었던 것 같은데 그 말보다 두툼한 고깃덩어리인 스테이크가 더 기억에 남았다.  


영화를 보면 미국식 다이닝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주인공들이 나오곤 했다. 접시만 한 큰 고기를 칼로 슥슥 썰어먹는 모습을 보면서 스테이크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 있었다. 여직원이 커피를 따라 주며 맛있냐고 물으면 가볍게 웃으면서 대답하는 행동이나 식사가 끝나고 팁을 주는 것도 왠지 멋있어 보였다. 이렇게 미국식 레스토랑에 대한 동경이 있었지만 어린 시절에는 주변에 비슷한 식당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포기하고 말았다. 다만 소고기집에 가서 고기를 맛있게 먹을 때가 생기면 스테이크도 비슷한 맛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한국에도 이런저런 캐주얼 레스토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스테이크를 먹게 되었다. 조금 질기고 퍽퍽한 맛. 이미 스테이크를 먹는다고 내가 영화의 주인공처럼 느껴질 나이도 아니었을뿐더러 그 맛도 환상적이지 않아 적잖이 실망을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먹는 스테이크는 분명 다를 거라는 생각은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처음 간 허름한 다이닝에서 시킨 스테이크는 산더미 같은 양을 자랑할 뿐 맛은 전혀 없었다. 질기고 퍽퍽한 고기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아 결국 반이상 남겨야 했다. 아주 불친절했던 여직원을 위한 팁을 몇 불 주고 나오니 시내에는 땅거미가 지고 있었고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왔었다. 하지만 이후 좋은 레스토랑에 갈 기회들도 많아졌고 스테이크에 대한 기억은 차츰 나아져 갔다. 

그러던 어느 미국 출장 때 조금은 핫한 레스토랑에 갈 일이 생겼다. 젊은 동료들이 그곳엔 꼭 가봐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어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나는 당연히 따라갔다. 최근에 지어진 듯한 레스토랑은 그 시대에 맞는 인테리어를 하고 있었고 젊은 고객들과 더 젊은 직원들로 꽉 차 있었다. 동료들이 각자 먹고 싶은 것들을 주문했고 나도 비슷한 걸 시켰다. 나온 음식은 나쁘지 않았고 직원들도 꽤 자주 테이블에 와서 불편하거나 더 필요한 건 없는지 묻는 등 서비스도 나쁘지 않아 기분 좋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레스토랑의 젊은 직원들이 테이블 사이로 모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계속 보고 있는데 갑자기 흥겨운 음악이 나오더니 직원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었다. 작은 몸동작이지만 적당한 타이밍에 함께 치는 박수가 있어 합을 제법 맞췄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군무였다. 춤을 추면서 손님들 한 명 한 명에게 눈을 맞추면서 웃음을 짓기도 하고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기도 하여 고객들은 즐겁게 박수를 치며 호응을 해주었다. 짧은 군무가 끝나자 직원들은 순식간에 흩어져서 자기 할 일로 돌아갔다. 손님들은 자기들끼리 즐겁게 웃으면서 다시 식사를 이어나갔다.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잘 몰라 당황하기 일쑤인 나 같은 소심쟁이도 그 흥겨운 분위기가 전혀 져서 기분이 좋아졌었다. 나올 때 이런 곳은 팁을 더 주어야 하는 건지 고민했지만 다른 직원들이 주는 만큼 주고 나왔다. 한국에 온 후 다시 경험할 일이 없었기에 그 기억은 빠르게 잊혀 갔다. 가끔 가는 레스토랑들의 스테이크들도 어떤 때는 맛있고 어떤 때는 못 먹을 맛이고, 그렇게 스테이크는 평범한 음식이 되어갔다. 


오늘은 회사동료와 외근을 갔다가 돌아오면서 어떤 스테이크집에 가게 되었다. 동료가 가고 싶은 식당이 있는데 같이 가는 게 어떻냐고 했다. 법인카드로 먹자는 아주 솔깃한 제안을 함께해서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집에 가면 시간이 좀 애매하기도 해서 조금 떨어진 아웃렛에 있는 미국식 레스토랑에 가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종종 광고로 보았던 유명한 이름의 레스토랑이었다. 항상 대기 줄이 긴 곳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인터넷으로 줄서기를 신청하면 현장에서 크게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동료는 말했다. 줄서기를 신청하고 아웃렛으로 출발했다. 30여분 차를 몰고 아웃렛에 도착했다. 크지 않은 입구 앞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예약을 하고 와서인지 금방 차례가 돌아와서 안으로 안내받았다. 입구 크기에 비해 안은 꽤 널찍했고 미국식 레스토랑처럼 꾸며져 있었다. 조금 비싼 편이지만 법인카드라고 생각하니 스테이크와 몇몇 음식들을 시킬 수 있었다. 큼직한 접시에 큰 고깃덩어리와 많은 양의 감자튀김을 보니 정말 미국 레스토랑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고기도 살짝 질긴 듯 하지만 마블링이 없는 미국식 소고기의 특징일 뿐 맛이 없는 건 아니었다. 동료는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고기를 썰고 있었다. 


그렇게 음식을 잘 먹고 있었는데 내 옆에 비어있는 공간으로 직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난 설마 하고 쳐다보았는데 일렬로 선 직원들이 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작은 몸동작에 합이 맞는 박수, 딱 미국에서 봤던 그 군무였다. 다만 다른 것은 누구도 손님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좋은 음악과 잘 맞는 춤동작, 타이밍 좋은 박수가 있었지만 그들의 눈동자는 허공을 헤매고 있었고 힐끔힐끔 쳐다보는 손님들을 쳐다보는 직원은 한 명도 없었다. 군무가 끝나자 어정쩡하게 군무를 바라보던 고객들은 다시 식사를 이어갔고 직원들은 빠르게 일로 돌아갔다. 


이들이 전부 아르바이트생들일 거라는 생각이 마음을 파고 들어왔다. 최저 시급은 받을까, 밥은 제때 챙겨 먹는 걸까, 몸이 아파도 춤을 춰야겠지 등등 수많은 상념들이 떠올랐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젊은 아르바이트생들의 미소를 보면 마음이 아파왔다. 젊을 때 최저시급을 받으며 나와 잘 맞지도 않는 서비스직을 몇 년이나 한 적이 있었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항상 있었다. 내가 아니라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나는 항상 비관적이고 절망을 먼저 생각했지만 삶이 나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던 세상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기술은 굉장한 속도로 발전하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은 그것보다 더 빨리 사라져 가는 세상이 되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기성세대가 만든 세상일 것이다. 목적을 위해 정의는 필요 없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고, 행복이나 희망은 돈 없는 사람들의 자기 위안일 뿐이라고, 나는 절대 그렇게 주저앉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세상을 만든 나는 이제는 우울증을 친구 삼아 과거를 되씹으며 좋은 테이블에 앉아 비싼 고기를 썰고 있다. 썰린 고기사이로 살짝 피가 배어 나온다. 동료가 추가로 주문한 음료수를 들고 웃으면서 테이블로 다가오는 어린 직원의 눈을 바라보기가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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