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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Sep 17. 2023

배려 없는 부대찌개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열여섯 번째

동료가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아직 11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시계를 잘못 보았나 싶어 다시 확인했는데 10시 50분을 조금 지나고 있었다. 아직 점심시간이 아니고 아침을 먹은 지 얼마 안돼서 괜찮다고 사양을 했다. 동료는 지금 가자는 얘기가 아니었고 점심에 같이 가자는 이야기였다. 뜬금없는 이야기에 당황했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어 알겠다고 다.


점심시간에 날 포함해서 4명의 무리가 이동을 했다. 항상 그렇듯이 난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지만 그 동료가 나를 바라보며 근방에 정말 맛있는 부대찌개집이 새로 생겨서 가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웃어야 하는 타이밍이라 조그맣게 웃으며 그렇군요 전혀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지역마다 대표하는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있다. 대표한다고 해서 반드시 맛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곳과 특별히 차별화가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대표한다는 것은 해당 음식의 원조라는 이야기이고 오랜 세월 그 맛을 지켜왔다는 의미인데 유명한 음식들은 세상에 퍼지면서 다시 그 지역에 맞게 바뀌기 마련이라 이미 다른 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원조집을 찾으면 실망할 때가 많은 것 같다. 나도 그런 경험이 많은 지라 원조집에 줄이 길거나 하면 그 옆집에 가서 먹곤 한다. 원조집 옆집이 맛있다는 얘기는 나한테는 틀린 얘기는 아니다. 


원조가 어디인지 상관없을 정도로 익숙해진 대표적인 음식 중에 부대찌개가 있다. 나도 부대찌개를 언제 어디서 처음 먹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 딱히 특별히 맛있어서 먹는다기보다는 햄과 소시지가 잔뜩 들은 국물에 라면사리도 넣고 해서 푸짐한 맛에 먹었던 것 같다. 나눠먹는 걸 싫어해서 예전부터 난 작은 그릇을 달라고 해서 내 것을 따로 퍼서 먹곤 했는데 국하나 주면 자기 숟가락으로 대충 같이 먹던 시절이었던지라 유난 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많이 먹는 편도 아닌데 타박을 들을 때마다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부대찌개집을 간 것 보면 어느 정도 좋아하는 맛이긴 한가 보다.


그래서인지 의정부에 출장을 갔을 때 원조 의정부 부대찌개를 가보고 싶었다. 동료들과 있을 때 내가 먼저 어딘가를 가자는 일이 극히 드물다 보니 내가 이야기하면 잘 들어주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의정부에 있는 직원이 원조 부대찌개로 안내했고 다 같이 가게 되었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가게로 가니 역시 줄이 길게 서있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식은땀이 흘렀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있어 다른 곳에 가기도 어렵고 해서 결국 불편한 마음으로 줄을 서서 기다렸다. 거의 30분 넘게 기다려서 들어갔는데 딱 기대한 식당의 느낌 그대로였다. 낡았지만 관리가 되고 있는 가게 내부와 꽉 찬 손님들, 분주한 직원들. 자리에 앉아 부대찌개를 주문하니 곧바로 햄, 소시지등 건더기와 육수가 담겨 있는 널찍한 찌개그릇을 가져다 화구 위에 올려놓고 불을 켰다. 라면사리까지 미리 넣고 뚜껑을 닫고 가더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와서 뚜껑을 열더니 이제 드셔도 된다고 했다. 너무 바빠 보여 그릇을 달라고 할 타이밍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냥 젓가락으로 건더기만 집어먹었는데 묘하게 맛이 좋았다. 고급스러운 건 아닌데 맛이 있다. 드물게도 나는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먹어 보았다. 아무것도 아닌 국물인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맛이 있었다. 조금 비싼 프랜차이즈 부대찌개집에서 먹는 것과 다른 맛이었다. 맛있는 저렴한 맛? 설명하기 힘든데 소박한 맛이라고 하면 맞을지 모르겠다. 와우! 바로 이거야! 하는 맛은 아닌데 계속 먹게 되고 집에 와서도 가끔 생각나는 맛. 


의정부 출장은 한 달에 한번 정도 있었고 갈 때마다 그 집에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의정부 직원이 부대찌개집 말고 다른데 가면 안 되겠냐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고 하고 다른 식당으로 가는데 그 직원이 말을 계속 이었다. 자기는 집이 의정부인데 부대찌개가 지겹고 싫다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친구들이나 손님이 오면 그 원조 부대찌개집에 갔고 많을 때는 일주일에 네다섯 번도 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어서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난 한 달에 한번 오지만 나 같은 사람이 30명 있으면 이 사람은 한 달에 30번을 그 집에 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항상 민감해서 주변에 폐 끼치는 것을 잘 피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민감하기만 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그 직원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그날 이후 원조 부대찌개집을 가지 않았다. 왠지 씁쓸한 맛이 날 것 같았다. 그 후에도 부대찌개집을 종종 가게 되는 경우가 생겼지만 내가 찾아서 가진 않게 되었다.


동료의 안내로 간 곳은 새로 생긴 집이라 인테리어도 부대찌개집 같지 않고 커피숍같이 깔끔했다. 그 동료는 자기가 알아서 시키겠다고 모두들에게 말했고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곧바로 한솥은 되어 보이는 부대찌개가 나왔다. 햄이 종류별로 가득 들어있었다. 그곳에 오자고 했던 동료는 여기 햄은 정말 고급햄이라며 사람들과 나를 바라보며 연신 칭찬을 했다. 사람들은 부대찌개의 햄은 좋은 것보다는 싸구려가 제맛이라는 둥 별 시답지 않은 얘기들을 늘어놓을 뿐 아무도 부대찌개가 끓고 있음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난 사람수대로 그릇을 달라고 해서 적당히 끓어올라 맛있게 익었을 부대찌개를 가능한 균등하게 퍼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원조부대찌개사건 이후 부대찌개집에 오면 그릇을 사람수대로 달라고 해서 내가 직접 퍼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내가 배려하지 못한 그 직원과 뜻하지 않게 씁쓸한 맛이 되어버린 원조에 대한 사과의 의미에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먼저 나서서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뭐가 달라지진 않는데 왜인지 나를 약간은 힘들게 해서 누군가를 배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부대찌개를 먹을 때 죄의식과 편안함의 균형이 맞고 씁쓸한 맛도 사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균등하게 사람수대로 부대찌개를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잘못 푸면 나중에는 건더기가 모자라기도 하고 늦게 푸면 국물이 모자라고 라면사리는 국자에서 계속 흘러내리는지라 집중하지 않으면 엉망진창이 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담아야 한다. 다하고 나니 어깨가 살짝 굳은 느낌이 들었다. 의도된 몸의 불편함이 마음의 편함을 가져다준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먹고 있었고 나도 한 숟가락 떠서 먹어본다. 다른 동료들이 연신 맛있다고 하여 그곳에 가자고 했던 동료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웃음이 날 초라하게 만들었다. 다른 곳과 별다를 것 없는 맛이었다. 그냥 평범한 부대찌개의 맛. 내가 아는 부대찌개의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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