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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Aug 11. 2023

자신만만 코다리 찜

100가지요리, 100개의 마음. 두 번째

자신만만 코다리 찜

어쩌면 잠을 잘 못 자서 그냥 머리가 멍 한 건지도 모른다. 자주 가는 마음병원 선생님은 주야간 약을 꼬박꼬박 먹으면 좋아질 거라 하는데 벌써 7년이 넘었다. 밤에 먹는 약은 아침까지 날 몽롱하게 만든다. 하지만 먹지 않으면 잠시라도 잠을 잘 수 없으니 꼬박꼬박 챙겨 먹고는 있다. 예전에는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밤새 책을 읽거나 거리를 걸어 다녔다. 지금은 세네시간이라도 눈을 꼭 감고 누워 있는다. 눈 위에 수건 같은 걸 올려놓는 것도 좋다. 눈을 조금 무겁게 하면 잠들지 않아도 완전히 깨어있는 상태는 아니라서 덜 피곤하다.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면 눈이 멍해 보인다. 어렸을 때 이런 눈을 동태눈이라고 했는데 동태눈이 어떤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 동태눈이면 어떻고 명태눈이면 어떨까. 일어나서 앉아있는 것만 해도 큰 발전이다.


동태눈이라니. 동태가 명태인가?


잘 알지 못하면 좋아하기 어려운 법이다. 제사상에 올리는 북어포도 명태이고 동태도 명태고 과메기도 명태라는데 살아있는 걸 본 적이 없어서인지 전설 속의 괴물처럼 머릿속에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명태를 이용한 요리들에 썩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더구나 알지 못하는 생선을 토막내서 양념으로 거대한 덩어리를 만들어 그 속상태를 짐작하지 못하게 하는 찜요리 들은  정말 좋아할 수가 없다. 사람이든 요리든 속이 보이지 않으면 불편하다. 하지만 내 속이 보이면 더 불편하다. 내 마음은 양념 안에 가두고 남의 마음은 맑은 냇물에 담가 놓고 싶다. 찜요리 하나를 보는데도 내 마음은 여기저기 부서지고 뭉쳐지고 반복하면서 하나의 덩어리처럼 변한다. 어쩜 이리도 싫어하는 찜요리 같을까.


매운 양념과 콩나물등이 반이상 차지하고 정작 메인 재료는 뭉개져서 거의 보이지 않는 그런 걸 요리라고 시키는 게 돈이 아까웠다. 그래서 생선찜 같은 요리를 먹게 되면 같이 딸려 나온 밑반찬들이랑 밥을 먹게 된다.


내가 시켜 먹을 일 없는 그 요리를 갑자기 오늘 점심에 먹게 되었다. 이런저런 일을 같이 하는 인테리어 사장님과 오전에 현장에서 미팅이 있었는데 미팅이 끝나고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당연히 자기 직원들이랑 먹을 줄 알았는데 나보고 같이 먹자고 해서 당황한 나머지 좋다고 해버렸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의 불편한 자리. 더 불편한 음식. 사장님이 코다리찜을 너무 좋아해서 부득불 가게를 찾아서 들어갔다. 내키지 않았다. 붉은 털실 같은 콩나물 산더미를 보면 이상하게 메슥거린다. 

우리는 유명하지도 않고 맛집 느낌도 전혀 없는 그 가게를 코다리찜이라는 메뉴만 보고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라 가게 안은 사람들로 대부분 테이블이 차 있었다. 뭘 먹을까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사장님이 갑자기 코다리찜을 주문해 버렸다. 먹고 싶냐고 묻는 것은 고사하고 둘이 갔는데도 소자도 아니고 중자를 시켰다. 이런 요리를 싫어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내 몫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디까지 먹고 그만둬야 할지 잘 몰라서 눈치를 보면서 계속 뒤적거릴 때도 있다. 여러모로 불편하다.


너무 많은 거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는 코다리를 너무 좋아해서 이인분 이상을 먹을 거라 걱정을 하지 말란다. 난 0.1인분도 자신이 없지만 주변을 보니 대부분 사람들도 접시 위에 산처럼 쌓인 찜 요리를 먹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게 주력 메뉴인 것 같았다. 남들과 다른 걸 시키면 더 불안하다. 하지만 물어는 봐야지라고 속으로만 되새기고 만다.


사장님은 뭐가 바쁜지 계속 핸드폰으로 일을 하고 난 피곤해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서 기다렸다. 갑자기 테이블 위에 붉은 산 같은 것이 턱 하니 놓여졌다. 드디어 요리가 나왔다. 테이블 가운데 올려진 붉은 양념의 산이 내 손을 가려주는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놓였다. 젓가락으로 어디부터 찔러야 하나 기웃거리고 있는데 사장님이 큼직한 덩어리를 쑥 찾아내서 내 앞접시에 올려놓았다. 너무 놀라서 악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내 영역을 불쑥불쑥 기척 없이 들어오면 처음엔 놀라고 진정되면 슬슬 화가 난다. 내속을 당연히 모르는 넉살 좋은 사장님은 어느새 고기를 발라내서 맛있게 먹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의 기준에서 좋은 것이 남에게도 좋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오지랖도 넓고 얼굴도 두꺼워서 한 번만 만나도 십 년을 만난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런 그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어차피 난 그런 인간이 될 수 없어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감정상태가 되고 만다. 


슬슬 화가 나려고 하는데 앞에 앉은 사람은 전혀 눈치를 못 차리고 있다. 내가 상을 뒤엎어서 나가버려도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이해 못 할 것이다. 한숨으로 화를 가라앉히고 앞접시에 올려진 빨간 양념에 숨겨진 고기 속살을 파내기 시작했다. 몇 번을 끼적거리니까 살덩어리들이 큼지막하게 떨어져 나왔다. 밥을 조금 퍼서 그 위에 코다리살 한 조각을 올려놓고 냄새를 맡았는데 살짝 바다비린내가 났다. 다 틀렸어라고 생각하며 입에 넣었다. 그런데 처음 먹어 보는 코다리찜은 매콤 달콤하니 꽤 맛있었다. 대다수의 찜 요리들이 콩나물이나 양념만 많은 것에 비해 생선살도 많았고 양념도 맵기가 적당하여 좋았다. 반찬만 먹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요즘 매운 걸로만 승부하는 식당이 얼마나 많은지. 어렸을 때부터 먹어왔던 빨갛게 버무려진 음식들이 이제는 대부분 내가 먹기에 너무 매운 시대가 되었다. 수십 년을 매운 음식을 먹고 있지만 매워지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이렇게 새빨간 요리가 맵지 않은 건 기적에 가깝다. 더구나 이 식당은 매운 걸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아주 매우 청양고추를 썰어서 섞이지 않게 찜요리 위에만 올려놓아 매운 걸 좋아하는 사람도, 못 먹는 사람도 다 같이 먹을 수 있게 해 놨다. 사장님은 그 고추와 코다리를 같이 먹으면서 진짜 맛있다고 나에게 계속 권유했지만 이마에 흐르는 땀만 봐도 얼마나 매운 고추인지 알 수 있는 내가 먹을 리가 없었다. 


땀을 계속 흘리면서도 고추를 더 달라고 해서 먹는 걸 보면 매운 것은 맛이 아니라 중독이 아닌가 싶다. 고추를 안 먹었지만 그래도 좀 매웠는지 나도 한참을 먹으니 땀이 나고 입안이 뜨거워졌다. 물을 마시려고 보니 빈컵이었다. 우리는 물도 안 따라 놓고 밥부터 먹고 있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생각하면서 사장님과 내 컵에 물을 따랐는데 생수가 아니라 숭늉이었다. 식당에서 숭늉을 본 게 얼마만인지 처음에는 육수를 잘 못 따랐나 싶었다. 너무 오랜만에 먹어서 이게 뭐지 하면서 한참을 생각했다. 아마도 찜요리가 맵게 느껴지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것 같다. 생선을 먹을 때 생수는 비린내를 더하는 경우가 있는 데 숭늉을 먹으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같이 간 인테리어 사장님은 자신의 촉은 항상 맞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반쯤 벗어진 이마에 흐르는 땀을 계속 훔치면서도 연신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는 사장님을 보니 살짝 웃음이 났다. 항상 긍정적인 사장님이라 자신의 선택이 맞을 때만 기억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자기밖에 모르지만 한없이 긍정적이라는 것은 얼마나 좋은 재능인가. 남을 신경 쓰지도 않고 본인의 기분은 항상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 물론 보는 사람만 그렇게 생각하고 정작 본인은 걱정 많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모든 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하고 그걸 잘 감추지 못하는 나에게 사장님의 너스레는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처럼 느껴졌다. 그런 건 아무리 연습한다고 좋아지지 않는다. 사장님의 긍정 한 스푼을 내 밥 위에 올려놓고 싶어졌다. 그건 어떤 맛일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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