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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Aug 15. 2023

비열함과 두려움의 사이, 한식뷔페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세 번째

함과 두려움의 사이, 한식뷔페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병원을 가고 매일 같은 시간에 약을 먹고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퇴근하고 매일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눕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잠들지 못한다. 잠을 못 자는 날은 눈을 감고 있을 뿐이지 한숨도 자지 못한다. 자려고 누우면 이상하게 심장이 두 군 거리기 시작한다. 잠이 들었다가 바로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면서 잠에서 깨어난다. 이럴 때 먹으라고 약을 하나 주긴 했지만 별로 효과가 없는 걸 보면 증상에 맞는 약은 아닌 것 같다. 매일 같은 것을 반복하는 데 결과는 같지 않으니 불공평하다. 하지만 습관을 만들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약을 먹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자리에 눕고를 매일 같이 반복한다.


출근을 위해서는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회사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약에 취해 있는 경우가 많아 몇 번은 지하철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두 시간 넘는 출근 시간이 지나고 회사에 들어가면 이미 녹초가 되어있다. 커피 때문에 잠을 못 잘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 때문에 이제 커피도 마시지 못하고 있다.


점심시간 가까이 돼서야 겨우 정신이 돌아온다. 회사입장에서 보면 이런 약쟁이 늙은이는 빨리 내쫓고 싶을 텐데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이런 상태이니 매일 같이 점심을 고르는 것조차 너무 힘이 든다. 점심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멀리 가기는 힘들다. 주변의 가게가 너무 빨리 변한다. 새로 생기고 없어지고 하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점심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빌딩에서 쏟아져 나온다. 아마 멀리서 보면 마치 개미집에서 개미들이 떼거지로 나오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삼삼오오 무리 지어 순식간에 가게들로 들어가고 미쳐 못 들어간 사람들은 가게 앞에 줄을 서기 시작한다. 난 혼자서 밥을 먹는 시간이 많아 조금 늦게 나오는 편이다. 그래도 식당에 들어가면 항상 불안하다. 내가 자리에 혼자 앉았는데 몇 명의 손님들이 들어왔다가 자리가 없어 다시 나가는 날이면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 것 같다.


눈치가 덜 보이는 식당이나 1인석이 있는 식당들 위주로 찾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가는 식당이 항상 정해져 있다. 회사원들이 점심시간에 선호하지 않는 메뉴를 파는 곳이 대부분이다. 나는 그날 상황을 봐서 사람이 별로 없는 곳에 들어간다. 이상하게도 같은 음식인데 집에서 먹는 것보다 그런 가게에서 먹는 게 빨리 질려버린다. 아마 간이 세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깊이 있게 파볼 만큼 궁금한 것은 아니라서 배부르고 나면 잊어버린다. 나는 변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이상하게 지겨움은 남들보다 빠르게 온다.


아마 내가 지겨움을 느끼는 것은 내가 선택이 가능할 때 나오는 자신감의 비열한 면이고 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쉽게 얘기하면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한 것이다. 자주 가는 가게들과 음식 메뉴들을 보면서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바꾸고, 거절하고, 다시 좋아할 수 있다는 어이없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급속도로 빨리 지겨워지는 것이다. 식당에 앉아서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눈치를 보면서도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어처구니없다. 이런 생각에 다다르니 점심메뉴를 고르는 게 어쩐지 비참해져 버렸다. 이상한 자기 자기 비하로 점심도 맛있는 걸 못 먹게 된 게 어처구니없었지만 그런 게 나인걸 어떡할까.

그 뒤로 한동안 난 한식뷔페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식뷔페라고 호텔 뷔페를 생각하면 안 된다. 공사장 근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함바집의 회사원 버전이 한식뷔페인 것이라 생각하면 간단하다. 대여섯 가지 반찬과 한 종류의 국으로 이루어진 식단을 식판에 알아서 담아서 먹는 방식이다. 자율배식이다 보니 푸짐하게  먹을 수 있고 대부분 5~6천 원이어서 돈을 아끼고자 하는 회사원들이 많이 찾는다.


 최근 들어 천 원 이상 가격이 올랐다. 대부분 7000원대로 올랐는데 겨우 오백 원이나 천 원 차이인데 그게 아까운 생각이 들어 오히려 더 좋은 데를 찾아다니게 되었다. 점심 메뉴를 고르지 않기 위해 한식뷔페에 가기 시작했는데 이제 다시 한식뷔페 하는 식당들 중에서 맘에 드는 곳을 고르고 있다. 하루종일 인터넷으로 주변 한식뷔페를 찾아보고 가장 평이 좋은 한식뷔페를 가게 되었다. 카드가로 7500원. 다녔던 곳 중 최고가였다. 12시쯤 갔는 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배식줄이 가게문을 열고 안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테이블에도 사람들이 다 차 있어서 음식을 받아도 앉아서 먹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음식을 담고 나서 둘러보니 앉을자리가 생겼다. 무서울 정도로 빠른 회전율로 자리는 금방 생겼다. 그곳에는 다른 한식 뷔페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없었다. 다른 곳은 어떤 요리를 해도 특유의 잡내 같은 것이 있는데 그곳은 음식 그 자체의 냄새만 있다. 엄청나게 좋은 퀄리티의 음식들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제 물건이 자기 냄새만 풍기는 것만으로도 믿음이 가는 곳이 되었다. 더구나 여기는 다른 곳과는 달리 주방 외에도 테이블을 관리하고 음식을 채워놓는 직원들이 별도로 있고 항상 부지런하게 정리를 해줘서 음식이 떨어져서 기다리는 일도 없다. 오늘은 메인요리로 묵은지 닭볶음탕이 나왔는데 고기에 잡냄새도 없고 맵기도 적당해서 맛있게 먹을 수가 있었다.


며칠 동안 맛있게 점심을 먹었는데 오늘은 다 먹고 나니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이곳이 변할까 봐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난 이 가게에 대해 약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회사로 돌아와서 나의 선택에 대해 고민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서.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게 많아지면 난 약자가 된다. 많아지면 난 비열해진다. 선택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어야 한다. 


메뉴를 고를 수는 없지만 먹지 않음은 선택할 수 있다. 그 두 가지는 서로 비슷한 무게를 가질 것이다. 그 정도가 나의 비열함과 두려움 사이의 적당한 타협이다. 그렇게 생각한 후 그 가게에 다시 가지 않았다. 약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선택지 하나를 일부러 잃어버렸다. 비단가게들 뿐일까. 난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을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버리고 또는 버림 받길 요청했다. 나는 지금 자신감을 잃고 갈 곳 없는 두려움에 짧은 점심시간을 헤매고 있다. 내가 좋아했던, 이제는 애써 무시한 그 가게들을 등에 두고 피하는 방법만 알고 있는 나의 시선은 어디 좋은 곳이 없을까 계속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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