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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Dec 27. 2023

내 마음의 섬, 딤섬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마흔네 번째

최근 그 사람이 먹고 싶은 요리가 있다고 계속 얘기했다. 꼭 그 요리를 특정 식당에 가서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엄청나게 유명한 가게라서 웨이팅이 두시간은 기본인 가게였다. 거기에 장소도 시내 중심부 몰 내부라서 주말에 갔다가는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고민 끝에 평일에 연차를 내기로 했다. 연차까지 내서 갈만한 식당이냐고 묻는 다면 단연코 그건 아니다. 난 그런 것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다. 연차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쓴 것뿐이다.


평일에, 그것도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임에도 몰내부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식당에는 사람이 꽉 차 있었고 식사를 마친, 혹은 하러 가는 직장인들로 통로마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사람이 진짜 많은 곳이라던데 하고 걱정부터 들었다. 도착한 딤섬가게는 의외로 대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웨이팅기기에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순간 20명의 대기 목록이 떴다. 요즘은 웨이팅기기가 있어 번호를 입력하고 기다리면 순서가 되었을 때 문자나 카톡으로 알려준다.  20명이면 족히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딤섬을 좋아했다고 이 난리인가. 그 사람은 이제 시간이 남으니 천천히 몰을 구경하자고 한다. 몰이 신기한 나이는 지났고 우리도 그 자리에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지만 손을 꼭 잡고 걷기 시작하니 주변의 세상이 조금씩 희미해져서 온건히 우리만 남게 되었다. 한참을 걷고 예쁜 옷을 보고, 귀여운 액세서리를 고르고 하니 어느덧 가게입구에 와서 대기하라는 문자가 왔다. 우리는 서둘러 가게로 갔다.


"그봐요 금방 들어가죠?"


금방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있어 긴 시간이 즐거웠다. 자리를 안내받으니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몇 가지 딤섬 메뉴가 있었고 그 외 밥이나 면 요리도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 있게 몇 개의 요리를 주문했다. 아주 맛있을 거라 자신했다.


딤섬에 대해서 그다지 기대가 없었다. 어렸을 때 유행했던 홍콩영화에서 주인공들이 딤섬을 먹으면 맛있어 보이기는 했다. 만두와 비슷해 보이는데 딤섬은 다른 것이라고 사람들이 얘기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홍콩영화는 그 짧은 유행을 불태우고 사라졌고 나도 딤섬을 잊어버렸다.


홍콩을 출장으로 자주 다니면서도 딤섬을 먹어보지 않았다. 그때는 해외 출장에 지쳐있을 때라 해외에 나가도 한식을 먹거나 패스트푸드 점에 가곤 했었다. 미식의 도시라는 홍콩 출장 때도 마찬가지였다. 늦은 미팅을 마치고 다들 술자리를 약속하며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고 원래 잘 어울리지 않는 나는 저녁에 시내구경이나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한 외국인 동료가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다. 의견을 물어볼 때는 머뭇거리긴 하지만 대부분 거절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단도직입적인 권유를 하면 거절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색하게도 그 동료와 둘이 저녁밥을 먹게 되었다. 외국인과 단둘이 저녁이라니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차로 십 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건물로 갔는데 겉보기에는 비즈니스건물이라 식당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니 작은 식당입구가 보였다. 딤섬집이었다. 종업원이 열어주는 문으로 들어가자 깜짝 놀랄 만큼 큰 홀이 보였다. 몇십 개나 되는 테이블에 사람들이 가득 있었고 테이블 사이로 카트를 밀고 다니는 종업원들도 십여 명은 되어 보였다. 자리를 안내받아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둘이 앉았다. 나에게 뭐 먹고 싶은 게 있냐며 메뉴판을 주었는데 광둥어와 영어로 쓰여있는 메뉴판에는 수십 개의 메뉴가 있었지만 샤오룽바오 하나 밖에 알 수가 없었다. 잘 모르겠다고 어색하게 웃으니 자기가 알아서 시키겠다고 하며 종업원을 부른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종업원은 오더지를 내려놓고 돌아갔다. 잠시 후 카트를 밀고 다른 직원이 와서 딤섬찜기 몇 개를 내려놓았다. 찜기에는 세내개의 딤섬이 들어있었다. 먹어보라고 웃으면서 말하기에 한 개를 들어 간장에 찍어 먹어보았다. 맛있었다.


"만두와는 전혀 다른 거네요. 속도 탱탱하니 너무 맛있어요"


진심이었다. 내 말에 그 동료는 그제야 웃으며 자기도 먹기 시작했다. 카트가 또 오더니 딤섬찜기 두 개를 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후 또 카트가 왔고 딤섬이 테이블에 올려졌다. 카트가 오고 또 오고 계속 왔다. 온 세상의 딤섬이 테이블에 다 올라오는 것 같았다. 중국은 음식을 남기는 게 예의라고 배웠지만 너무 많은 양에 놀라고 있는 나를 보며 그 동료는 웃으며 말했다.


"먹고 싶은 것만 먹어요"


갑자기 이상한 마음이 전달되어 왔다. 그때부터 먹은 딤섬은 맛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홍콩도 딤섬도 그 동료도 이상한 마음에 묻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후 몇번밖에 없었던 홍콩 출장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난 적은 없었다. 내가 피했던 건지 그 사람이 자리에 없었던 건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문한 딤섬이 작은 찜기에 담겨 나왔다. 찜기가 세 개, 딤섬은 네 개씩 12개가 나왔다. 나보고 먹는 방법을 가르쳐주면서 어서 먹으라고 했다. 가르쳐준 대로 먹으니 정말 맛있기는 했다. 내가 맛있게 먹는 걸 본 그 사람도 내게 가르쳐준 방식대로 먹는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빙그레 웃음이 난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안타까운, 약간은 쓸쓸한 마음이 딤섬사이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난 이 사람이 필요하다. 좋아도 하지만 필요도 하다. 이제는 사람은 서로 필요해서 만난다고 믿는 나이가 되었다.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런데 그럴 때마다 자꾸만 쓸쓸해진다. 내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이를 먹으면 마음이 단단해져 간다는데 매일 흔들리고 쓰러지고 꺾이고 때때로 다시 일어선다.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야 알 수 있는 것일까. 굳은 마음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걸까. 흔들리는 내 마음은 딤섬을 다 먹고 입가를 닦고 있는 내 앞의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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