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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Dec 03. 2023

남겨진 기억의 해물탕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서른일곱 번째

변하는 건 막을 수 없다. 그게 싫으면 원하는 기억 속에 갇히면 된다. 과거가 또렷해질수록 현실은 희미해지고 살기는 편해진다. 하지만 너무 선명해지면 마음이 아픈 기억도 많다.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면서 음식의 형태도 많이 변했다. 어린 시절에는 음식을 한 곳에 넣고 물을부터 끓인 후 나누어 먹는 음식들이 많았다. 주로 찌개나 탕 종류의 음식들이다. 부대찌개, 감자탕, 대구탕, 매운탕, 해물탕 등등 많은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끓여서 다 같이 나누어 먹는 요리들은 장단점이 있다. 적은 내용물로 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지만 개인이 내용물을 자기 몫만큼 먹을 수가 없다. 잘못하면 국물만 먹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잘먹고 잘사는 요즘, 1인용 찌개나 탕으로 발전하지 못한 찌개나 탕 종류의 것들은 점점 사라져간다.


아버지가 아프시고나서 어머니는 식당일을 하러 다니셨다. 오리집, 해물탕집, 고깃집 등등에서 일하시면서 식당에서 남는 것들을 많이 싸가지고 오셨고 우리는 어머니가 싸 오신 음식들로 그나마 외식 흉내를 낼 수 있었다. 그중에서 해물탕집에서 가장 오래 일하셨는데 며칠에 한 번은 해물탕을 싸가지고 오셨다. 낙지, 전복이나 새우 등 비싼 재료들은 없을 때가 많았고 게, 조개, 미더덕, 콩나물등이 대부분이었지만 빨간 국물에 끓여낸 해물탕은 밖에서 사 먹는 사치를 대신하기에는 충분했다. 새우라도 몇 마리 있는 날이면 어머니는 항상 새우를 까서 우리에게 주셨다. 본인은 해산물 쳐다보기도 싫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가끔 해물탕에서 먹는 새우는 너무도 맛있어서 꼬리까지 잘근잘근 씹어먹곤 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굳이 국물 안에 있는 새우를 까서 먹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새우가 먹고 싶으면 새우전문점으로 가면 되고 게가 먹고 싶으면 게 전문점으로 가면 되었다. 더 이상 펄펄 끓는 물에서 꺼낸 새우를 호호 불어가며 까먹지 않아도 되었다. 해물탕은 그저 술 좋아하시는 분들의 안주거리로 명맥을 이어가다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든 가게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집에 가면 어머니는 여전히 해물탕을 준비하신다. 우리가 이젠 해물탕 안 좋아한다고 말씀을 드려도 왕새우가 잔뜩 들어간 해물탕을 끓여주신다. 그리고는 국물만 먹는 우리들에게 새우를 까주신다. 이미 어머니의 자식들은 나이를 먹을 대로 먹고 어머니의 손자손녀들에게 새우를 까줘야 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곱아서 잘 펴지지도 않는 손으로 새우를 까서 주신다.


이제 그만하라고 짜증도 내고 화도 내고 설득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다. 우리 가족이 모일 때마다 불고기, 소고기 구이, 잡채 등등 메인 음식은 항상 달라지지만 새우가 들어간 해물탕은 꼭 같이 있다. 이제는 아무도 관심이 없어 국물만 떠먹고 말지만 뭔가 안쓰러운 생각에 건더기라도 건질라치면 반짝이는 어머니의 눈빛을 외면하기가 어렵다. 어머니의 기억은 거기에서 멈춰있다.


날씨 좋은 일요일, 모처럼 그 사람과 일찍부터 연락이 되어 바닷가로 드라이브를 나왔다. 차를 타고 서해안을 따라 계속 달려갔다. 바다가 보였다가 사라졌다를 반복했고 그 사람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차를 몰았다. 가끔 나에게 이 노래 어떻냐고 동의를 구했지만 내가 전부 모르는 노래들만 나와서 그냥 웃고 말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소나무가 심어진 해변가에 있는 칼국수집에 가게 되었다. 커다란 새우가 잔뜩 들어간 해물 칼국수가 나왔다. 해산물이 너무 많아 거의 해물탕에 칼국수 사리가 들어간 느낌이었다. 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우를 까기 시작했다. 식기 전에 까서 줘야 한다는 생각에 뜨거움을 참고 새우를 까서 그 사람 그릇에 놓아주었다.


"해물 칼국수에서 새우 까서 먹은 건 처음이에요. 귀찮아서 안 먹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맛있네요"


그 사람은 웃으며 연신 맛있다고 말했다. 나도 하나 까서 먹어보았다. 이 새우라고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추억이 되지 못한 새우의 맛. 이번에 집에 내려갈 때도 어머니는 굽은 등으로 새우를 준비하실 것이다. 좋아질 수 없는 해물탕 새우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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