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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Jan 28. 2024

중요한 것은 샌드위치

100가지 요리, 100가지 마음. 쉰세 번째

어릴 적에는 시장에 가는 것이 싫었다. 엄밀히 말해 시장에 무엇인가를 하러 가는 것이 싫었다. 엄마의 심부름을 간다던지 닭모이에 쓸 배추부스러기 등등을 구하러 간다던지 하는 일 등등. 갈 때마다 꼭 일이 생기곤 했다. 심부름으로 무언가를 사러 가면 항상 질이 좋지 않은 물건을 사 오곤 했다. 싱싱하지 못한 야채, 냄새나는 생선, 유통기간이 거의 다와가는 상품들 등등 언제나처럼 시장은 나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았다. 집에 와서는 언제나처럼 엄마의 한숨을 들었고 그녀와 같이 다시 시장에 가면 시장 사람들은 생글생글 웃으며 ‘어휴 물건을 잘못 주었네’ 하면서 다른 것과 바꾸어 주었다. 엄마는 내게 항상 좋은 물건을 고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야채를 비롯한 생물의 상태, 물건의 유통기한 보는 법, 쓸만한 야채부스러기가 있는 곳 등등. 하지만 주의력이 부족하고 왠지 모를 압박에 항상 이상한 물건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뿐만 아니라 1000원을 들고가서 500원어치 물건도 못 사 오기 일쑤였다. 엄마와 함께 가는 시장은 친절한 사람들로 가득했지만 어린 내가 혼자 가는 시장은 눈 돌리면 코 베어가는 어른들의 야만의 링이었다. 질 나쁜 물건과 바가지를 쓴 가격. 동네마트라고 다르지 않았다. 몇가지 물건을 살 때마다 유통기한, 가격등을 항상 생각해야 하고 물건의 가짓수가 많으면 꼭 이상한 물건들이 끼어져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엄마의 한숨소리. 나는 커서도 시장을 잘 가지 않았다. 우리나라 시장은 물론이고 해외 관광지의 시장들이나 파머스마켓 따위를 가도 항상 그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발가벗겨 잡아먹으려는 눈빛들.


그래서 편의점이 생겼을 때 나는 그 신뢰감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정확한 유통기간, 명시되어 있는 가격, 깨끗한 실내환경. 모든 물건이 동네마트나 시장에 비해 훨씬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편의점을 이용했다.


라면이나, 음료수 같은 물건들 뿐만 아니라 김밥, 샌드위치, 핫도그 등등 간편한 음식들의 종류가 많아짐에 따라 이른 아침 출근을 할 때면 편의점에서 라면이나 핫도그등을 먹고 가거나 김밥,  샌드위치등을 사가지고 회사로 갔다. 모든 것의 유통기간이 적혀있었고 기간이 지난 음식이 남아있는 일도 거의 없어 나는 유통기간 확인하는 것을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김밥은 언제나 차갑고 딱딱했고 전자레인지에 데운 핫도그는 물컹물컹하니 맛이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실망을 하는 것은 샌드위치였다. 햄 샌드위치, 계란샌드위치, 야채 샌드위치 등등 종류는 계속 늘어갔다. 반정도 투명한 포장지에 샌드위치 조각이 두 개가 들어 있는데 빵과 빵 사이에는 내용물이 뚱뚱할 정도로 크게 들어있었다.


그리고 회사에 와서 먹으려고 꺼내보면 햄이나 계란등 내용물은 보이는 쪽에만 두껍게 끼워져 있었고 안쪽으로는 빵만 겹쳐져 있었다. 처음 산 한두 개가 잘못된 것인가 했는데 모든 샌드위치가 그러했다. 제조 회사나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그렇게 샌드위치에 대해 분노가 쌓여갔다. 정확한 유통기간, 투명한 가격표, 정확한 재료의 표기 등등으로 편의점은 나에게 신뢰의 상징이었는데 샌드위치가 매일같이 그걸 무너뜨렸다.


맛이 없는 것도, 비싼 것도, 재료가 좋지 않은 것도 모두 상관이 없었다.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샌드위치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너무도 뻔뻔했던 어린 날의 시장과 동네 마트를 떠올리게 했다. 나의 편의점이 그럴 리 없다며 언젠가는 바뀔 것이라고 믿은 몇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난 더 이상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지 않았다. 그리고 편의점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샌드위치 하나로 전부 바뀌게 되었다. 질 나쁜 음식, 비싼 가격, 좋지 않은 재료 등등.


어제는 사무실에서 늦게 까지 남아서 일을 해야 했다.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얼마전 들어온 신입의 실수로 인하여 아무 상관없는 팀원 모두가 남아 있었다. 일을 해야 해서가 아니라 벌을 받기 위해서. 팀장은 일을 시키고 퇴근했고 모든 일이 해결될 때까지 다 같이 신입을 도와주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한밤중에 해결해야 할 일 따위는 없었다.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고 인터넷을 보거나 다음날 할 일들을 정리하면서 묵언 중에 화를 내고 있었다. 그 어린 신입은 안절부절못했고 급기야 뛰어나가서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후 돌아온 신입은 비닐봉지 가득 음료수와 샌드위치, 김밥을 사가지고 왔다. 거의 울상인 얼굴로 책상 위에 음료수와 김밥, 샌드위치등을 나누어 주었다. 내 책상 위에도 진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올려놔주었다. 벌건 얼굴로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밤에는 커피를 먹지 않는다. 특히나 이렇게 고카페인이라고 적힌 커피는 더욱더. 그리고 편의점 샌드위치라니. 최악의 조합이었다. 한숨을 쉬며 샌드위치의 포장을 벗겨내었다. 의외로 두툼한 샌드위치가 손에 잡혔다. 색이 좋은 햄이 여러 겹 들어 있었다. 한입 배어물자 속 안에까지 햄이 가득 차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위로도 아래로도 햄이 들어 있었다. 세상은 어느새 나모르게 좋아지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를 멈추고 과거로 계속 숨어들 때에도 무엇인가는 조금은 좋아지는 부분들이 있었다. 편의점 샌드위치도 그러했나 보다. 두 번째 샌드위치 조각에도 계란이 속속들이 들어 있었다. 빵을 열어서 보니 내용물이 두껍고 고르게 펼처져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바뀐 걸까. 나는 언제부터 최악인 과거에서 멈추어 있었을까. 혹시나 모든 일이 좋아졌는데도 나는 여전히 최악인 과거 그 순간에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닐까.


얼굴이 벌게져서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신입에게 다가갔다.


"샌드위치 맛있네요. 그거 지금 하신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내일 그 회사 담당자들이 나와야 돼요. 이제 집에 가요. 내일 해야 돼요"


그 신입은 눈이 동그래지며 어떻게 집에 가냐고 자기 때문에 다 남아있는데. 그래서 맞다고 당신 때문에 남아 있으니 당신이 가야 다 갈 수 있다고 했다. 내가 팀장에게 내일 아침에 이야기하겠다고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했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신입도 주춤주춤 하면서 짐을 싸고 일어났다.


"걱정 말아요. 지금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맞다. 사실 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내일이면 팀장은 야근을 멈추고 마음대로 집으로 가게 한 내게 불같이 화를 내고 그래서 회사는 나를 더 밀어내겠지만. 팀원들은 나를 더 멀리하겠지만. 신입도 나를 더 피하겠지만. 나는 더 혼자가 되겠지만.


중요한 건 없다. 그런 곳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샌드위치위에 고르게 펴진 내용물 보다 중요한 건 그 밤, 사무실에서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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