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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Nov 04. 2019

아빠, 손 놓지 마세요!

자전거로 배우는 육아, 아내에게 배우는 육아

언제 이렇게 컸을까


해가 뉘엿뉘엿 져 가고, 손톱달이 어두워진 가을 밤을 미세하게 비출 때쯤, 나는 두 살배기 딸을 로케트처럼 솟아오르게 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느 새, 다섯 살 아들이 해맑게 웃으며 팔을 벌린 채 달려왔다. 녀석의 겨드랑이에 손을 얹고, 하늘 위로 던지려고 하는데 이제는 공중으로 던지기에는 너무 커버린 녀석의 얼굴을 마주했다. (물론 내 힘이 부족한 이유도 있다) 가을의 찬 공기를 맡으니 2015년 겨울, 녀석을 처음 안아보던 때가 생각이 났다. 녀석이 자라온 기억의 편린들이 출생의 기억과 함께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 자전거를 내달릴만큼 커버린 아들의 모습이 내 앞에 있었다.

녀석의 겨드랑이에 손을 얹고, 하늘 위로 던지려고 하는데 이제는 공중으로 던지기에는 너무 커버린 녀석의 얼굴을 마주했다.


아내도 엄마는 처음이었을텐데..


아들과 눈을 처음 마주친지 다섯 해, 딸과는 두 해가 되어 가고 있다. 아내는 감각적인 디자이너였지만 나와 결혼한 후 7년간 그 모든 섬세한 감각마저 가정의 행복을 도모하는데 쏟아왔다. 수십년을 막내로 살아온 나는 아내를 통해 나보다 타인을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둘씩 배워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정말이지 밥도 많이 먹었지만 그보다 엄마의 사랑을 더 많이 먹는 것 같았다. 그러한 사랑의 상호 작용에 서서히 스며들면서 나는 제 앞가림만 하던 늦둥이 막내에서 자연스럽게 가족들을 먼저 챙기는 아빠가 되어갔다. 


아이들의 홀로 서기


아이는 커 갈수록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난다. 모든 영역에서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하던 아이들은 서서히 스스로 뒤집고, 기고, 걷는다. 스스로 물을 먹으려다가 물을 바닥에 쏟기를 수십 차례, 밥을 혼자 먹어보려고 숟가락을 뜨다가 온 몸이 음식으로 뒤범벅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성취감을 느낀다. 그렇게 아들은 점점 우리의 품을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네 살 때에는 아빠, 엄마 없이 이모가 있는 중국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요즘은 식사 전에 아들이 상에 수저와 젓가락을 놓는다. 식사를 마치면 두 살 딸이 빈 그릇을 하나씩 하나씩 싱크대에 넣는다. 처음부터 잘 하지는 못했다. 쏟고, 버리고, 난리가 났지만 결과와 상관 없이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스스로 시도한 것을 칭찬해주며, 뒤에서 묵묵히 난장판이 된 집을 치워온 건 다름 아닌 엄마였다. 그녀의 결실을 나는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쏟고, 버리고, 난리가 났지만 결과와 상관 없이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준 건 다름 아닌 엄마였다.


아빠, 손 놓지 마세요


아들과 처음 자전거를 타러 나갔을 때이다. 아들은 킥보드를 한참 타다가 이제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었다. 공기가 조금 쌀쌀해진 저녁 무렵, 아들과 함께 내려가서 아내가 사 놓은 하얀 자전거를 자동차 뒤에 실었다. 보조 바퀴가 양쪽에 있지만 다섯 살 아이에게는 브레이크도 한 손에 쥐어지기 힘들기에 걱정이 앞서는 자전거였다. 우리는 차를 타고 집 주변의 공원으로 나갔다.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온 몇몇 사람들이 우리를 힐끗 쳐다보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아빠, 손 놓지 마세요


처음 타는 자전거 치고 녀석은 꽤나 능숙하고 힘있게 페달을 밟아나갔다. 그렇지만 아빠의 손을 떠나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혹시 내리막길에서 아빠의 도움 없이 마구 굴러가거나 넘어질까봐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녀석은 내 손을 잡아 땅으로 떨구었다


삼십분 쯤 흘렀을까. 녀석의 옆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지칠 법도 한데 녀석의 자전거 연마 의지는 식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잡아주고 나니 아들의 자신감은 눈에 띄게 불어난 것 같았다. 녀석은 말 없이 슬쩍 내 손을 잡아 땅으로 떨구었다. 이제는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아이들의 뒷모습이 더 익숙해질 미래, 그리고 감사


저 멀리 빠르게 사라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내와 나의 미래를 생각했다. 아이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더 익숙해질 우리의 미래. 그렇기에 우리를 필요로 하는 이 아이들의 요청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들의 자전거를 잡아준 삼십분처럼 아이들이 아빠, 엄마를 필요로 하는 이 순간들도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겠지... 그렇기에 우리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의 아우성이 더더욱 소중하다. 그것을 일찍 깨달은 아내는 체력이 다하는 순간마다 의지를 다잡으며 내게 말하곤 했었다. 아이들이 팔을 벌리고 안아달라고 하는 것도, 밥을 먹여달라고 하는 것도, 화장실에 같이 가자고 하는 것도, 모두 스치듯 지나가는 시간동안일 것이라고. 아이들과 마음을 다해서 함께 보낼 수 있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그녀의 말에서 진심 어린 행복이 느껴지곤 했다.

 

이제 스스로 자전거를 잘 탈 수 있게 된 아들의 얼굴에 자신감과 성취감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녀석의 멀어져가는 뒷모습도, 우리를 향해 속도를 내며 달려오는 모습도 감사한 저녁이다. 


가을 바람이 얼굴에 스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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