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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y 23. 2019

제 '걷기' 친구를 소개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걷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걷기'란 무엇인가?


‘걷기’란 두 팔과 두 다리를 번갈아서 휘젓는 것으로 인간의 신체로 이동하는 행위이다. 가장 원초적이자, 근본적인 이동의 수단인 것이다. 걷기는 또한 운동의 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헬스클럽의 벨트를 돌리거나, 강변에서 진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과 운동을 넘어서 '사색을 위한 물리적인 전희'이기도 하다.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 걷는다’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이르면, 걷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서 개인적 수양의 경지에 이른다.

‘걷기’란 두 팔과 두 다리를 번갈아서 휘젓는 것으로 인간의 신체로 이동하는 행위이다.


내가 걷기를 시작한 건, 아마 한국나이로 두 살 때 쯤이었을 것이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그 맘 때 쯤부터 걷기를 시작한다. 누구나 숨쉬기 운동과 걷기 운동에 있어서는 수준급의 경력자들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누구나 걷기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걸어다니는 사람을 흔히 ‘뚜벅이’라고들 하는데, 이는 ‘차가 없어서 걸어다니는 사람’을 의미하곤 한다. 이 단어는 차가 있으면 차를 타고 다닐텐데, ‘소유’를 하지 못하여 불가피하게 걷게 되었음을 전제한다. 언어가 인식의 열매임을 생각하면 우리가 얼마나 걷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건강을 위해서 걷는 사람, 그저 ‘걷기’가 좋아서 걷는 사람, 햇볕을 쬐고 싶어서 걷는 사람, 사색을 하고 싶어서 걷는 사람, 정신적 수양을 위해서 걷는 사람, 누군가와 함께 마음을 나누기 위해 걷는 사람 등등. 거리에 걷는 사람들은 제각각의 가치관과 사연들을 가지고 걷는다. 

거리에 걷는 사람들은 제각각의 가치관과 사연들을 가지고 걷는다.


My Walking Story in Seoul


나도 학창 시절부터 걷는 것을 꽤나 좋아했었다. 내가 걷는 것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 시간이 나에게 일종의 ‘이미지 트레이닝(image training)’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기질상 항상 준비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나를 겉으로만 보는 사람들은 임기응변에 능하다고들 하는데 그 임기응변조차도 사실은 언젠가 마음으로 되뇌이며 준비한 것일 가능성이 많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 오늘의 할 일은 무엇인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것인지를 그려본다. 걷는 시간은 하루를 영화 필름처럼 이미지화(image化)하여 그 이미지에 이런 저런 '첨삭'을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아침에 등교하며 걸을 수 있음에 감사했고, 행복했다.


서울에서 살 때까지만 해도 나의 '걷기' 시간은 충분히 보장되었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발생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차가 없었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학교에 가거나 출근을 했다. 대중교통수단이 나의 목적지 바로 앞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도보로 이동을 해야한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캠퍼스 안에서도 돌아다녀야 했기에 하루에 짧게는 20~30분, 길게는 한 시간 이상을 걷곤 했다.

서울에서 살 때까지만 해도 나의 '걷기' 시간은 충분히 보장되었다


그러다보니 딱히 살이 찔 기회도 없었던 것 같다. 운동을 찾아서 하지 않더라도 기본적인 걷기 시간이 보장되어 있다보니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가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고 착각하며 만 25년을 보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내 체질에 대한 착각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것이었는지를 실증적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걷는 것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던 때는 역시 연인과 함께 걸을 때였다. 바쁜 도시 생활에 바빴던 걸음은 함께 걷는 상대방의 호흡과 함께 점점 느려지고, 부드러워진다. 앞을 보고 걸어도 살짝씩 보이는 그녀의 옆모습과 옷깃,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은은히 함께 느낄 수 있는 그녀의 향기, 햇살이 비춰오면 은은히 빛나던 옆모습. 그녀와 함께 천천히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걷는다는 것


문제는 지방으로 내려오고 나서부터였다. 직장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얻었다. 그리고 곧 내 차가 생겼다. 출근 시간은 5분이면 충분했다. 그러다보니 학창시절에 하루를 떠올리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던 시간이 생략되었다. 

걷기가 사라진 일상은 마치 준비 없이 소나기를 맞는 것 같았다. 


‘그럼 꼭 걸어야 이미지 트레이닝이 되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100%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어느 정도 그러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 사방이 막힌 곳에서 사고가 잘 안되는 병에 걸린 것 같다. 도서관 중에서도 사방이 막혀있는 칸막이가 있는 곳은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차라리 바람 부는 공원의 벤치가 사고의 흐름을 훨씬 촉진시키는 것 같다. 


그런 연유로 인해서 나는 차가 있어도 걷는 쪽을 택했고, 차와 도보의 중간 지점을 탐색하다가 자전거를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기도 했다.

걸어서 출근하는 습관은 지역의 소도시에서만 지내온 분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실제로 전주의 시내버스를 타보면 80%는 중고등학생 및 대학생들, 20%는 노년층이다. 그 사이에 있는 인구들은 시내버스를 거의 타지 않는다. 설문조사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직관적으로 살펴보면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시내버스가 시공간적으로 그리 촘촘하지 않아서 너무나 오랜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둘째, 대학을 졸업한 인구의 대부분은 차를 가지고 다닌다. 
셋째,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대도시에서보다 소도시에서 걷는 것은 좀 더 특별한 행위가 되어 있었다. 운동으로서의 걷기는 보편적이지만 이동으로서의 걷기는 보편적이지 않은 상황, 그러나 걷기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제 걷기 친구를 소개합니다(걷친소)


그로부터 수년이 흘러 이제는 또 한 명의 걷기 친구이자 출근 친구가 생겼다. 바로 5살 난 아들이다. 녀석이 내 직장 안에 있는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녀석은 타이페이 여행과 베이징 여행, 서울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버스 타는 것의 즐거움을 알아버렸다. 처음에는 네 살 밖에 안 된 아이를 시내버스에 태워서, 먼 거리를 걸어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절반은 걷고, 절반은 안아서 겨우 어린이집에 도착하곤 했지만 아이의 표정에는 생기가 돌았다.

절반은 걷고, 절반은 안아서 겨우 어린이집에 도착하곤 했지만 아이의 표정에는 생기가 돌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차를 타는 것보다 버스 타는 것이 좋아서 아들이 버스를 고집하는 것인 줄 알았지만 나는 점점 녀석이 아빠의 손을 잡고, 또는 안겨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걷기’는 더 이상 이미지 트레이닝의 시간이 아니었다. 연인이었던 아내와 함께 걷는 그 때처럼, 아이와 함께 걷는 그 순간순간들의 행복을 누리는 시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점점 녀석이 아빠의 손을 잡고, 또는 안겨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도 아들의 손을 잡고 걸어서 집을 나온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아들이 먼저 다정한 인사를 건네면 굳어져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금세 풀리곤 한다. 짜증에 가득 찼던 기사님도 꼬맹이의 인사에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시곤 한다. 캠퍼스에 들어서면 내가 학창 시절에 걷던 도시의 풍경과 다르게 마가렛 꽃들과 유채꽃들이 만발해있다. 그러한 풍경들을 아들과 나란히 걸으며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아직은 자신의 마음을 꾸밈 없이 아빠에게 이야기하는 아들. 친구들과 토닥거리며 싸웠던 이야기부터, 자연을 소재로 만들었던 자기만의 작품 이야기,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 이야기들이 내 마음을 비춘다. 두 남자의 이야기 꽃들이 캠퍼스 여기 저기에 활짝 핀다. 

두 남자의 이야기 꽃들이 캠퍼스 여기 저기에 활짝 핀다.


걷기 이야기(Walking Story)는 계속된다


하루를 시작하는 걷기의 역사는 그렇게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홀로 빨랐던 걸음은 누군가와 함께 걸으며 느려졌다. 느려지니 주변의 것들이 보인다. 그것들을 보며 누리며, 이야기하며, 나는 어느새 걷기의 또 다른 경지에 이른다. 

다섯 살 아들의 걷기에 대한 기억은 어떠할까. 

30년 후 쯤, 녀석의 브런치가 있다면 걷기에 대한 어떤 글이 올라올지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30년 후 쯤, 녀석의 브런치가 있다면 걷기에 대한 어떤 글이 올라올지 궁금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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