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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Dec 04. 2018

서울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

1991년과 2018년의 서울하늘을 바라보며

2018년의 서울 하늘은 잿빛인 경우가 많았다. 저 서쪽 바다 건너 서역에서는 아직 끝을 모르는 개발과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노력을 쉬지 않았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노력은 또 다시 사람들의 숨통을 옥죄고 있었다.

내가 자라던 때의 서울 하늘은 그렇지 않았었다. 나는 성수동의 공장들 사이로 등교를 하곤 했었는데 그 공장 연기 사이로 보였던 하늘조차도 파랗게 보였었다. 내가 좋아하던 가수들 중에는 '푸른 하늘'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 그룹도 있었다. 기교 없는 미성의 그 노래들은 정말 푸른 하늘과 잘 어울렸었다.

그와 더불어 그 시절 하늘을 바라보면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었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 연인들 사이에서는 가장 유명하고 보편적인 데이트 코스이기도 했고, 내가 케이블카를 처음 타 보기도 했던 곳. 어디에 있든 밤에 홀로 반짝이는 그 타워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에 위안과 안식을 얻곤 했었던 것 같다.

한강 쪽으로 가까이 오면 63빌딩도 있었다. 국민학생들은 한 번씩 꼭 견학을 가곤 했던 그 곳은 어디서나 보이진 않았기에 개인적으로는 남산타워보다는 그 감흥이 덜 했다. 그래도 90년대에 3D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는 것을 보면 그 존재 자체가 첨단을 의미하는 빌딩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2018년의 서울에는 거의 어느 곳에서든 독보적으로 보이는 또 다른 타워 하나가 등장하였다. 잠실에 위치한 이 타워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바벨탑' 또는 '볼드모트'였다. 따뜻한 인상이라기보다는 그냥 높이 쌓아올린 것 같은.. 하늘에 닿아보고자 노력에 노력을 더 하던 바벨의 사람들도 떠오르고, 어떤 판타지 영화에서 악의 소굴로 항상 그려지던 높은 구조물도 생각났다. 아마 선입견도 있었을 것이다. 그 빌딩을 소유한 기업이 사실상 일제강점기에 한 사람이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던 것을 기원으로 세워졌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가장 배고팠던 시절에 국민적 필요와 무관한 사행성 산업에 투자했던 기업인 점, 그들의 현재 지배구조가 여전히 배타적으로 '재벌'의 지위를 굳게 다지고 있는 점 등이 맞물려 그 빌딩조차도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기업에 대한 선입견이 아니더라도 아무것도 모르던 순수한 시절 바라다보았던 서울 하늘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 원리를 경험한 사람이 바라다 본 서울 하늘은 이미 같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2018년의 서울 하늘 아래, 나에게는 지축이 흔들리고, 패러다임이 바뀌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는데 그것은 나에게 두 번째 아이(딸)이 태어난 것이었다. 이 사건이 지니는 역동성과 특별함은 경험한 자들에게는 굳이 설명이 필요없고, 경험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설명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이를 낳고 수일을 지내게 된 병원과 조리원은 창 밖으로 석촌호수와 롯데월드타워가 바라다보이는 곳이었다.


병원에서 조리원으로 옮긴 후, 특수한 상황이 하나 생겼다. 조리원 규칙상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 사이의 접촉이 금지된 것이다. 네살된 첫째 아들은 임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동생은 언제 나오냐며 그녀를 기다리던 순정남이었는데 보고 싶던 동생과의 만남이 처음부터 막히니 지켜보는 부모가 더 가슴이 먹먹할 노릇이었다.

더 치명적인 것은 늘 자기가 원하면 안길 수 있던 엄마 품마저 갑자기 금지되는 상황.

하지만 그는 이러한 상황을 바다의 물결을 맞이하듯 의연히 받아들였고, 아빠와 서울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큰 아빠들, 또한 그의 사촌들의 사랑을 받으며 지냈다. 주중에는 아빠와 함께 전주에 내려와 어린이집을 다니며 둘만의 데이트를 누리기도 했다. 
대신 여동생과는 완전히 차단되었고, 엄마와는 잠깐잠깐의 면회가 전부였다.


녀석은 어디에서든 아빠를 닮아서 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보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다. 특히나 철교를 지나는 전철을 보는 순간은 아빠와 아들 사이에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환희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아들과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를 데이트 하노라면 꼭 바라다보이는 곳이 바로 롯데월드타워였다. 녀석은 반짝이는 그 곳을 볼 때마다 매우 반가워했다. 그리고 '엄마'를 떠올렸다. 그 곳에 가면 엄마와 동생을 볼 수 있다는 희망, 하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는 절망감이 교차하는 그의 눈동자를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었다.

버스의 방향이 바뀌어 타워를 찾을 수 없게 되면 우리는 자리를 옮겨 그 타워를 바라보곤 했다.

"엄마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뭉클이(딸)은 자고 있을까, 아니면 일어나서 놀고 있을까?"

"지금쯤이면 뭉클이 배고파서 먹고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질문들과 대답들을 나누면서 아쉽고 그리운 마음을 나누고 있노라면 어김 없이 버스는 우리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그 곳은 마치 등대와도 같았다.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등대. 엄마의 존재와 부재를 함께 확인할 수 있었던. 엄마와 여동생의 체온은 느낄 수 없지만 동시에 같은 서울 하늘 아래 그녀들이 계속 살아가며 기동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등대와 같은 곳. 그렇게 사랑을 확인하고 안식하며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급기야 아들과 나는 그 타워의 꼭대기에 가보기로 했다. 그 타워가 그저 우뚝 솟은 자본주의의 상징일 때는 오를만한 값어치가 전혀 없었는데, 이제는 우리에게 그 곳은 한 번은 올라가야할 장소가 되어있었다. 122층 꼭대기에 올라 우리가 해야했던 일은 멀리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발 밑으로 석촌호수와 그 옆에 있을 엄마와 뭉클이의 존재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우리를 바라다보고 있을 그녀들에게 세이 헬로우를 하는 일이었다. 그래요. 우리는 잘 있으니 여자분들도 잘 있어요! 마치 영화 러브레터에서 히로꼬가 외치던 대사처럼.


언젠가 아내를 면회하러 갔다가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유리창 바깥을 홀로 내다본 적이 있다.

순수하게 서울 하늘을 올려다보던 국민학생 소년의 눈빛은 시간이 흘러 다소 냉소적인 시선으로 퇴색되어 있었는데.. 그런 시선에 비친 새 빌딩은 차갑게만 느껴졌었는데..

그 남자에게 그를 빛나게 해주는 아내가 생기고, 또 그를 닮은 아들과 딸이 새로운 존재로서 다가왔을 때, 그의 눈빛은 다시 그 영롱함을 찾기 시작했던 것 같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 안에서 유동하는 자금들의 흐름과 관계 없이 그의 눈동자 안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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