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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pr 05. 2019

4대(四代)가 함께 떠난 부산 여행

가끔은 옛날 방식으로 사는 것도 사랑의 방법이다

사진, 그 2차원의 신비


'사진'은 참 신비롭다.


'사진'은 참 신비롭다.

형체는 분명 2차원의 종이 속에 박제되어 있는데 그 때의 느낌, 불어오던 바람, 들려오던 음악, 사람들과의 분위기 등 모든 것들이 함께 소환되어 오기 때문이다. 물론 문명의 발달로 동영상이 많이 쓰이긴 하지만, 찰나의 순간을 2차원의 공간에 담아내어 별다른 기기 없이 오프라인에서 다시 펼쳐볼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사진 밖에 없다.


'사진'은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38년생인 우리 아버지도 2015년생인 우리 아들도 모두 사진을 본다. 멀리 떨어져 살기에 간간이 메신져로 보내드리는 사진이 우리들의 안부를 대신할 때도 많다. 아들 녀석은 5년 밖에 살지 않았지만 자신의 출생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태블릿 PC에서 매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간 세대는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인화해서 앨범에 정리하던 세대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순간의 기억들은 조금씩 휘발되어 자취를 감춘다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시니어 세대의 감각이다.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던 시절


현재의 30~40대의 세대들은 ‘디지털’에 익숙해져서 사진관에 가서 필름을 맡기고, 2~3일 후에 찾으러 가던 설렘을 조금씩 잊어버리고 있는 듯 하다. 찾은 사진 속에는 잘 나온 사진, 형편 없는 사진, 플래시가 터져서 얼굴이 허여멀건하게 나온 사진들이 이리저리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진들이 소중했던 순간들을 부여잡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되기에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앨범에 정리해두던 기억이 있다. 사진 옆에 조그맣게 순간의 기억들을 묘사하는 글들을 써두던 기억도.

찾은 사진 속에는 잘 나온 사진, 형편 없는 사진, 플래시가 터져서 얼굴이 허여멀건하게 나온 사진들이 이리저리 섞여 있었다.



4대(四代)가 함께 떠난 부산 여행


처제가 중국에서 오랜만에, 아주 짧게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 기회에 처가 식구들을 모시고 짧은 여행이라도 떠나보는게 어떨까. 꽤 즉흥적인 생각이었기에 아내와 상의도 하지 않고, 회사의 담당 직원에게 그 주에 회원권으로 부산에 콘도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를 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 평소에는 그렇게 자리가 없던 한화리조트를 회원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답신을 받았다.


때마침 사업차 말레이시아로 떠나게 된 장인 어른은 아쉽게도 같이 못 가게 되셨지만, 아내의 할머님, 장모님, 아내, 처제, 나, 그리고 우리 아이들 두 명이 함께 떠나는 부산 여행이 성사되었다. 뜻밖의 4대가 함께 하는 부산 여행. 사위가 되어서 늘 은혜만 입고 제대로 해 드린 것도 없었던 차에 이런 기회에라도 잘 살리고 싶었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케이블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와 아들은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송도 바다를 가로지를 참여단을 모집했다. 다른 겁은 별로 없지만 유난히 놀이기구 겁이 많은 장모님과 아내가 기권했고, 아내와 연동되어 있는 둘째 아이가 덩달아 기권되었다. 발 밑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케이블카라는 점이 더 한 몫을 한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오후팀 참가자가 꾸려졌다. 용감하신 할머님, 처제, 나, 그리고 아들. 우리는 오랜만에 맑게 갠 하늘을 만끽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표를 끊었다. 할머님 덕분에 덩달아 한 명까지 경로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용감하신 할머님, 처제, 나, 그리고 아들. 우리는 오랜만에 맑게 갠 하늘을 만끽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표를 끊었다.


'통과 의례'를 통과하지 않으신 할머니


해상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어느 관광지에서나 지나가야 하는 통과 의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포토존이었다. 그들은 친절한 표정으로 관광객이야 좋든 싫든 사진을 찍어준다. 그리고 사진을 확인하라고 하고, 사진을 가져가려면 비싼 돈을 내야 한다. 그런 일반적인 프로세스 말이다.

해상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어느 관광지에서나 지나가야 하는 통과 의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포토존이었다.


핸드폰으로 찍는 디지털 사진에 익숙한 나와 처제가 그냥 지나치려는 순간, 할머님이 말씀하셨다.


할머님: 이건 얼마예요?
직원: 한 장 인화하시면 만 오천원이에요, 할머니.


나는 순간 ‘할머니, 이건 너무 비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할머니의 지갑은 열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쿨하게 만오천원을 지불하고 그 사진을 고이 본인의 가방에 넣으셨다.


내가 언제까지 살런지는 모르지만
증손주랑 이런데도 와봤다는 걸 이거 보면서 기억해야지.



추억을 공유하는 방법의 차이


짠해지고,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열심히 할머니에게 함께 한 추억을 메신져로 보내고 있었지만 할머니에게 그 사진들은 손에 잡히지 않고, 매번 꺼내볼 수 없는 일회용 사진에 불과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매번 우리가 사진을 찍어드릴 때마다 할머니께서 습관적으로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그만 좀 찍어~ 어차피 보내주지도 않을거. 뭐하러 계속 찍어댄다니~?”


그렇다. 우리는 할머니와 매번 함께 했지만 할머니는 그런 추억을 곱씹을만한 매개체가 덜 제공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 추억을 할머니와 공유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할머니에게 익숙한 방식은 아니었다. 큰 깨달음과 동시에 한 가지 소소한 결심을 했다. 이번 여행 사진들은 포토북으로 만들어서 할머님께 꼭 선물해드리리라. 이번 여행은 모시는 것만큼이나 추억을 할머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상케이블카의 목적지에는 이런 저런 볼거리와 사진 찍을 것들이 많았다. 그 시간들은 할머님에게도, 처제에게도, 아들에게도, 나에게도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행복이었다.

그 시간들은 할머님에게도, 처제에게도, 아들에게도, 나에게도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행복이었다.


그 날 밤, 우리는 해운대 시장에서의 소소한 쇼핑과 The bay 101에서 바라다보이는 야경을 함께하며 부산 여행의 정점을 찍었다.

그 날 밤, 우리는 해운대 시장에서의 소소한 쇼핑과 The bay 101에서 바라다보이는 야경을 함께하며 부산 여행의 정점을 찍었다.

그 다음 날은 처제가 다시 중국으로 출국하는 날이었고, 김해공항에 배웅을 위해서 또 하나의 팀이 꾸려졌다. 장모님, 처제, 나, 아들. 공항 까페에 앉아 주스를 한 잔씩 나눈 뒤, 처제가 출국장 안으로 돌아갔다. 헤어지는 순간들마저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추억을 선물하다


포토북을 만드는데는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원하는 탬플릿을 정하고, 그 안에 넣을 사진들을 고르고, 적절한 멘트들을 넣고, 저장! 그리고 매수를 정해서 결재를 하면 바로 작업에 들어가고, 다음 날 배송이 되어, 그 다음 날 받을 수 있다. 만든 날로부터 2일만에 받게 되는 셈.


부산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홀로 다시 남겨질 할머님을 위해서라도 아내와 아이들이 좀 더 할머님 댁에 남는 것이 좋겠다는 상의를 했다. 포토북이 도착하던 날, 한참 업무를 하고 있는데 배송 완료 문자와 함께 아내가 보낸 동영상 몇 개가 와 있었다. 할머니가 도착한 선물을 뜯는 것에서부터 놀라시는 모습, 사진들 하나하나 보시면서 반응하시는 모습들을 롱테이크로 찍어 보낸 것이었다. 그 동영상의 마지막은 이러했다.


고마워, 김서방!
아들들한테도 못 받아본 거를
손주 사위한테 받아보네!


할머니께서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에 나도 하루 종일 행복했다.


가끔은 옛날 방식대로 사는 것도 사랑하는 방법이다


가끔은 잊어버린 옛날 방식대로 사는 것도 사랑하는 방법이다.

그 분들도 자녀들과 손주들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들이 익숙한 방법보다 자녀와 손주들에게 익숙한 방법을 익히시느라 매순간 힘드시지 않을까.

그게 그 분들의 사랑의 방식이라면,

우리 자녀들도 조금이나마 옛날 방식으로 살아보는 것이 그 분들을 사랑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우리 자녀들도 조금이나마 옛날 방식으로 살아보는 것이 그 분들을 사랑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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