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반응은 어땠을까?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세상은 있었다.
그 당연한 사실이 때로는 굉장히 신비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존재하지 않던 세상,
그 안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은 이미 살고 있었고,
심지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도 그러했다.
올해 다섯 살이 된 아들 녀석도 요즘에 그런 생각을 하나 보다.
사실은 네 살 때부터, 잊을만하면 하는 질문.
아빠, 아빠랑 엄마랑 어떻게 만나게 되었어요?
어떻게 결혼했고, 어떻게 나를 낳았는지 알려주세요.
말하자면 길고 긴 스토리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장성한 아들과 단 둘이 여행을 가서
바다나 강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네 살 밖에 안 된 아들의 '자신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은
나를 그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나는 네 살 혹은 다섯 살 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수차례 우리 부부의 첫 만남의 순간을 이야기해 왔다.
'아빠가 스물 네 살, 엄마가 스물 두 살 때 일이었지'로 시작한 그 이야기에서 나는 휴가 나온 시커먼 군인이었고, 아내는 서울 살이 2년차의 예쁜 대학생이었다. 내가 '모토로라' 핸드폰에 저장했던 그녀의 최초 이름은 '미스 경북 진'이었다.
아들은 이야기를 듣는 중에도 질문이 많았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던 그 세상에서 아빠, 엄마는 만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만났더라도 서로 길이 엇갈려 다른 길을 걸어갈 수도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랬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까?
영화 '어바웃 타임'은 그 흔한 타임슬립 영화이다. 하지만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그 영화를 감명 깊게 보았던 이유는 영화의 주인공이 더 이상 '시간 여행'을 하지 않게 된 이유를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 길을 선택해도 이 문제가 나오고, 저 길을 선택해도 저 문제가 발생했기에 주인공은 좌충우돌 타임슬립을 반복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간을 돌리니 원래 알던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 '다른 아이'가 자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배우자가 바뀐 것도 아니었지만 생명이 잉태되는 그 짧은 순간에도 변수는 있게 마련이다. 2등으로 달리던 정자가 갑작스레 앞의 녀석을 제치고 1등으로 골인했다면? 당연히 내가 알던 그 아이는 '다른 아이'로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주인공은 그제서야 더 이상 시간을 돌리는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이미 정이 들어버린 자녀는 그 어떤 존재로도 대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들의 여러 질문 덕분에 나 역시도 나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의 연애와 결혼 생활 속에서도 다양한 변수가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옆에 있는 아내와 영원이, 소원이. 이 주인공들이 바뀌는 상상은 꿈에서조차 허용할 수 없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정도(正道)를 걸었노라는 확신이 든다.
급기야 오늘은 아침에 일어난 아들과 함께 2012년, 아내와 함께 했던 신혼여행 영상들을 함께 보게 되었다.
사실 다섯 살 밖에 안 된 아들이지만 조금 쑥쓰럽기도 했다. 그 속에는 차마 SNS에도 공개하기 어려웠던 우리의 풋풋하고, 서투른 애정 행각들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20대 초반부터 오랫동안 오누이처럼 티격태격 하며 알아오다가 연애를 하면서는 서로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었다. '앞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면 부부가 될터인데 이렇게 너무 편하게만 말을 하다보면 나중에는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어색한 존댓말이 시작되었고, 그 어색함은 결혼 초기에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그 때는 어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느 정도 정착이 된 지금 보면 내가 보아도 좀 오글거린다. '여보'라는 호칭도 아직 쓰기 전이라 교회에서 쓰던 호칭이 그대로 담겨 있다.
게다가 아내와 나는 얼마나 신났는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그 여행지를 소개하는 듯한 영상들이 다수 있다. '프라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너무 좋아요!' 그 때는 어떠한 생각으로 그런 '홍보물'을 찍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 부부에게는 슬며시 홍조를 띠며 웃을 수 있는 예쁜 추억들이다.
그런 영상을 다섯 살 아들 녀석에게 오늘 전격 공개했다.
아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엄마, 정말 예쁘게 말하네!
지금도 예쁘지만 저 때는 더 예쁘다!
아들은 영상들을 누구보다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사실 아빠와 엄마의 풋풋한 연애 모습을 아이들은 잘 볼 기회가 없다. 일단 아이가 태어나고나면 부부 간의 '사랑'보다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으로 주된 관심이 옮겨가는 것이 일반적이라 우리의 아이들에게 부모의 연애를 보는 것은 잘 허락되지 않는 것 같다.
내 쑥쓰러움과 대조적으로 아들은 엄청나게 행복해하고 있었다.
애교 섞인 엄마의 말투, 갑자기 볼에 뽀뽀를 해 버리는 아빠의 돌발 행동.
내가 보기에는 조금 쑥쓰러운 장면들인데, 아들은 너무 좋단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정말 행복해한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본다. 우리 부모님의 서로 사랑하는 연애 모습을 실제 영상으로 확인한다면, 나는 어떨까? 참 든든할 것 같다. 내가 존재하기 전부터 아빠, 엄마는 저렇게 사랑했었구나. 우리 엄마, 아빠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랑에 근거해서 내가 태어났구나. 나의 기원은 정말 탄탄하구나.
그렇다.
나는 신혼여행 영상을 아들에게 비로소 공개함으로써 녀석에게는 큰 행복과 안정감을, 나에게는 깊은 깨달음을 선사해주고야 말았다.
내가 존재하지 않던 그 세상 속에서도 사람들은 사랑을 했고,
그 중에 아빠와 엄마가 있었으며,
그것이 나의 존재의 기원이라는 것.
다섯 살 짜리 꼬마의 배시시한 웃음 속에
오묘한 삶의 진리가 오묘하게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