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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Jan 28. 2020

'우한 폐렴'이 무서운 진짜 이유

'경계'와 '혐오' 그 사이에서

'우한 폐렴'의 공포


'사스'와 '메르스'의 기억도 아직 생생한데 2020년 새해부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세칭 ‘우한 폐렴’의 공포가 온 세계를 엄습하고 있다. 2020년 1월 28일 현재, 중국에서만 4515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에도 네 명의 확진자가 나왔는데 앞의 두 명은 공항의 검색대에서 발열검사로 체크가 되었으나 나머지 두 명은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한국에 입국해 방역감시망을 벗어났다. 세 번째 확진자는 강남, 한강 일대를 누볐고, 네 번째 확진자는 평택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움직였다고 한다.       


중국 우한시의 상황을 담은 유투브 영상은 영화에서 보던 모습보다 더 처연하고, 공포스럽다.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 눈 앞에 닥친 질병의 재앙을 해결해보고자 병원을 가득 메운 사람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여력이 없어서 절규하는 의료진들.      

중국 우한시의 상황을 담은 유투브 영상은 영화에서 보던 모습보다 더 처연하고, 공포스럽다.


오랜 학문 연구를 통해 나온 분석은 아니겠지만 우한 폐렴은 증상이 없는 잠복기에도 전염이 된다고 한다. 그것은 오늘 내가 까페나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사람이 보균자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막연한 공포감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을 평온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경계'이다


사람들은 평소에도 '선'을 긋고, 그 '선'을 지키며 안정감을 얻는다.      

지역적 거주와 민족(nationality)의 경계는 사람들에게 '애국심'과 '애향심'을 갖게 하는 주요 원인이며 또한 이기적인 민족주의와 지역주의가 발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다. 세계 토픽에 지진 소식이 들려와도 그냥 무덤덤하게 지나갈 수 있는 것은 그 지역을 ‘나와 특별히 상관 없는 지역’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에 자연 재해가 발생했을 때, 인터넷 댓글을 통해 그 지역이나 국가의 문화적 특성이나 과거의 역사를 연결시키며 비하하는 행태는 때로 비인간적으로 느껴지지도 한다.     

사회적 계층도 또 하나의 경계가 된다. 최근 한 언론 매체의 뉴스는 거주하는 아파트의 이름이 초등학생들끼리의 인간 관계에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내가 속한 계층과 상관 없는 일이라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영화 ‘기생충’에서 배우 이선균이 보여주는 캐릭터는 계층 간 만남이 얼마나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상위 계층이 하위 계층의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선을 지키는 것’이이다. 하위 계층이 하위에 있다는 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상위 계층은 하위 계층에게 제한적 자비를 베풀 수 있지만 그 선을 넘는 인격적 교류가 이루어지려고 한다면 많은 경우에 멈칫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한 신문 기사는 거주하는 아파트의 이름이 초등학생들끼리의 인간 관계에서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렇듯 경계가 정해진 상태 속에서 군중들은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사람'들은 '경계'를 강화한다


그런데 ‘바이러스’라는 놈이 이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려 버렸다. 사람들은 명품을 걸친 사람을 대하면 어려워할지 몰라도 바이러스는 지역과 계층을 가리지 않는다. 세 번째 확진자가 거닐었던 대치동은 대한민국 귀족 교육의 산실이다. 바이러스는 언제 어떻게 연결이 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우한 폐렴 뉴스는 '세계 토픽'란이 아니라 '사회'란으로 옮겨졌고, 우리들의 스마트폰에 '푸시 알림'을 띄워냈다.     

이럴 때일수록 기존의 경계를 더욱 강화하는 것은 공포를 느낀 사람들의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청와대 국민 청원 란에는 중국인들의 한국 입국 금지를 청원하는 게시글이 4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냈다. 우한시와 인접 도시들은 봉쇄되었고, 베이징의 시외버스도 운행이 중단되었다. 중국인들의 단체 해외 여행이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다. 각국들은 우한에 있는 자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세기를 띄우는 계획을 검토하고 시행하고 있다. 이렇듯 바이러스의 창궐을 경계의 강화를 통해 막아내는 것이 세계보건기구(WHO)와 각국의 질병을 관리하는 기관의 역할일 것이다.          

이렇듯 인간 생활을 평온하게 유지시켜주던 경계가 깨지면서 어쩔 수 없이 사회학적인 혼란기가 발생한다. 평소에 유지되던 지역 거주의 경계가 생존을 위해 깨지면서 경계를 넘으려는 자들과 경계를 더욱 강화하고자 하는 자들의 갈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이 갈등은 ‘바이러스’라는 물리적인 질병의 의미를 넘어서 특정 인간과 사회에 대한 혐오 현상으로 번져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영화 '부산행'에서 막연한 공포심을 이용해 사람들을 선동했던 김의성 캐릭터


'경계'는 '혐오'로 발전한다


우한시민들은 중국인들의 미움을 받고, 중국인들은 전 세계인들의 미움을 받는다. 한국에서도 특정 도시에 확진자들이 더 나오기 시작한다면 그 도시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가 생길 것이다. 또 다시 경계를 넘으려는 자들과 경계를 더욱 지키려는 자들의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그 갈등의 역학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인간 사회에는 공포와 불신이 가득찰 것이다. 우한시의 한 시장에서 발생한 폐렴 바이러스는 이렇게 사회학적인 공포를 발생시켜 인간 사회를 무너뜨리고 있다.     

사회적인 문제로 넘어오기 전에 물리적으로 문제가 끝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임계점은 이미 넘어버린 것 같다. 이제는 질병의 문제와 함께 사람들의 심리적, 사회적 움직임에도 예의주시해야 할 시기가 왔다.      


필요한 '경계', 유연성이 필요한 '경계'


인간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경계도 있지만 유연한 경계도 필요하다. 때로는 경계를 넘어선 통섭과 소통이 훨씬 더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한 도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이러한 유연성과 통섭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 누구와도 마음 놓고 소통할 수 없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 홉스(Hobbs)가 가정했던 인류 문명 이전의 상태로 사회적 시계를 돌려버리는 사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한 폐렴'이 무서운 진짜 이유


'바이러스'는 우리의 몸의 건강 뿐 아니라 개인의 마음의 건강, 그리고 사회적 건강을 같이 앗아갈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오늘도 다섯 번째 확진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나의 경계심과 공포가 바이러스를 넘어서 사람들과 사회로 향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본다. 이 시간에도 창궐한 바이러스로 인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 수많은 중국인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대상을 알 수 없는 막연한 공포심이 우리의 마음에 '가시'로 치환되지 않게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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