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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Feb 10. 2020

조선시대, 가장 충격적인 '특별채용'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 리뷰

'사회적 신뢰 수준'과 '특별채용'의 묘한 상관관계 


나는 대학에서 교수 인사를 하면서 공개채용과 특별채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해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특별채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매우 큼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몸 담은 곳이 사립대학이었다보니 공개채용에 대해서도 ‘혹시 내정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끊임없이 받아야 했다. 하물며 ‘특별채용’을 한다는 것은 절차적인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사회적 신뢰를 받기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특별채용은 거의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규정에 의해서 엄격하게 통제되었다.

특별채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사회적 신뢰의 문제와 맞닿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정함’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 소수의 상위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좋은 제도들을 악용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한 사회에서 ‘특별채용’, ‘입학사정관제’와 같은 제도들은 허울만 좋은 제도, 신뢰할 수 없는 제도로 인식되기가 쉽다. 그렇다보니 실력이 좋아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특채’ 출신들은 증명할 기회를 잡기도 어려우며 해당 조직에서 크게 환영받기도 보통 어려울 것이다. 


21세기의 선진화된 우리 사회에서도 환영받기 어려운데 만약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특별채용이라면 어떻겠는가? 수많은 양반 출신 유생들이 밤을 새워 글공부를 해서 얻은 관직인데, 관노 출신의 일개 노비가 왕의 직관적인 판단에 의해 높은 관직을 얻는다면? 아마도 극심한 반대와 왕따에 부딪히게 되지 않을까? 여기 실제 그런 사람이 있다. 조선시대 궁궐에서의 전대미문의 파격적인 특별채용, 그 중심에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 있다.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는 한석규, 최민식이라는 현존하는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로 이 파격적인 특별채용과 뭇사람들의 질투를 샀던 그들의 브로맨스를 역사적 근거에 기반한 픽션으로 진지하게 다룬다. 

영화는 이 파격적인 특별채용과 뭇사람들의 질투를 샀던 그들의 브로맨스를 역사적 근거에 기반한 픽션으로 진지하게 다룬다.


'손재주'만으로 부산에서 궁궐로 스카웃된 사나이, 장영실


장영실은 본디 동래현(현재의 부산) 출신이다. 노비이다보니 태어난 정확한 해도, 사망한 해도 알 수가 없다. 그는 10살 때부터 관청에 들어가 관노로 일했는데 손재주가 매우 뛰어나 어딜 가든 있으면 너무 좋지만, 없으면 너무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가 태종에 의해 발탁되어 동래현의 관노에서 궁궐의 노비가 된다. 영화에서는 궁궐에서 노비로 일하던 장영실의 손재주에 대한 소문이 세종(한석규 분)에게 들어가 세종이 그를 직접 대면해서 보는 장면이 나온다. 

장영실은 손재주가 매우 뛰어나 어딜 가든 있으면 너무 좋지만, 없으면 너무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세종은 어떻게 하여 '대왕(大王)'이 되었나


‘세종’하면 떠오르는 것은 압도적으로 ‘한글’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세종’의 업적 중에 ‘한글’은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세종과 장영실의 팬이 되어버린 여섯 살 아들과 함께 위인전을 보면서 알게 된 사실들 중에 가장 파격적이었던 것이 있다. 조선왕조실록 1426년 기록에 보면 21세기에 비춰보아도 놀라운 정부의 복지정책이 나오는데 그것은 ‘전국 관청에 소속된 여종이 아이를 낳으면 100일의 출산휴가를 주라’는 것이다. 그 후 4년 뒤에는 또 하나의 정책이 발표되는데 ‘관청에 속한 여종들이 아이를 낳으면 남편들에게도 30일의 휴가를 주라’는 것이었다. 최근 법이 개정되면서 남편들에게 주어진 의무 출산휴가가 10일로 늘어났지만 세종이 노비들에게 준 30일의 휴가보다 오히려 더 짧은 셈이다. 

세종은 그런 임금이었다. 우선순위가 명확한 사람. 정치적 논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와 백성들에게 유익이 되는가’였다. 그의 수많은 업적들의 기저에는 바로 이러한 정신이 깃들어있다. 세종이 직접 밝힌 ‘훈민정음’의 창제 취지는 중국의 글자와 우리의 말이 서로 맞지 않아 백성들이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궁궐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해서 일상 회화와 작문의 차이를 이미 극복을 해낸 사람들이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종은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 우선순위가 있었기에 대국(大國)의 글자를 대체할 수 있는 우리의 글자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우리 실정에 맞는 음악을 연구할 수 있었고, 중국과 다른 우리의 절기(節氣)에 대한 연구도 할 수 있었으며, 중국이 독점하던 고차원적인 학문인 천문학에도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선순위가 명확한 사람. 정치적 논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라와 백성들에게 유익이 되는가’였다.


형식과 관행을 산산조각낸 세종과 장영실의 파격적 만남


영화의 감독은 세종이 가지고 있었던 이 성품에 포커스를 맞추어 상상력을 발휘하였다. 세종과 장영실의 만남은 그 자체가 파격이었다. 어찌 조선시대의 예법에서 왕과 궁궐의 노비가 대면을 한단 말인가. 그 대면만으로도 아마 당대의 나라의 녹을 받는 관리들은 안절부절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백성들의 유익보다는 사대부의 명분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세종은 오로지 장영실의 실력만을 근거로 종3품(대호군)의 관직을 내리게 된다. 게다가 백성들을 이롭게 하는 과학적인 일들을 장영실과 직접 상대하고 논의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게 된다. 여기에서 영화가 보여주는 최민식과 한석규의 브로맨스는 당대의 사회상을 떠올려보면 거의 판타지에 가깝다. 장영실에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장영실의 업적이 더 과장되는 측면도 없지 않아 또 다시 역사왜곡 논란이 일기도 했다. 

어찌 조선시대의 예법에서 왕과 궁궐의 노비가 대면을 한단 말인가.


세종이 없는 장영실은 그냥 노비였다


하지만 ‘세종’이라는 임금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가 있다면 영화의 브로맨스는 그리 전기적(傳奇的)이지만도 않다. 세종이라면,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장영실’은 실용학문보다 인문학에 치중되었던 조선의 연약함을 메꿔줄 수 있는 대안 없는 과학자였기 때문이다. 기술을 천대하고 오직 글공부만 하던 기득권의 가치관에 세종은 오염되지 않았다. 장영실은 그에게 너무도 필요한 사람이었다. 영화처럼 그들이 인간적인 정(情)까지 나누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세종이 백성을 사랑했기 때문에 노비였던 장영실을 발탁했던 것만큼은 자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파격적인 특별채용, 비극적인 직권면직


우리가 알고 있고, 또 예상 가능한 것처럼 결국 장영실은 큰 업적을 남겼지만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으며 삶을 마무리하지 못한다. 그는 뭇사람들의 질투를 받고, 관직에서 밀려났다가 세종이 행차하던 가마가 사고를 당하자 이에 대한 유지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관직에서 물러난다. 그 후에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아마 궁궐의 역사가들의 관심을 얻지 못한 듯 하다. 


그렇게 세종의 전대미문의 파격적 ‘특별채용’은 결국 ‘직권면직’으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세종의 전대미문의 파격적 ‘특별채용’은 결국 ‘직권면직’으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


지금의 우리는 이러한 장영실의 삶을 보며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얻는가?


조선시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런 것들이 참 많다. 무엇이 본질인지,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런 사람들에게 권력과 힘이 쥐어질수록 공동체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기도 힘들고, 설사 오늘날 ‘세종’ 같은 리더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가 뜻을 펼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아보인다. 


우리는 ‘조선’보다 더 나은 사회에 살고 있는가?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는 아마도 그것을 하늘에 묻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조선’보다 더 나은 사회에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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