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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r 12. 2020

'애사심'은 '연봉 순'이 아니잖아요

무대에 서지 않지만 무대를 빛내고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프론트'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최근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매우 감명 깊게 보았다. 필자에게는 드라마 ‘미생’보다 마음에 더 울림이 있는 작품이었다.


드라마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드림즈’라는 만년 최하위를 기록한 프로야구 구단의 ‘프론트’와 ‘선수’들이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우리가 주로 접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선수’들이다. ‘선수’들의 그라운드에서의 숨가쁜 호흡과 발놀림은 공중파와 스포츠 채널, 신문 기사, 유투브, 그 외의 개인 매체들을 통해서 수없이 파급된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 구단의 스포트라이트 이면에는 ‘프론트’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다. 시즌이 끝나고, 팀이 재정비를 하는 기간동안 ‘프론트’는 더 강한 팀을 만들고자 노력하며 다음 해를 대비한다. 시즌 중에 부상이 발생하거나 취약점이 발견된 포지션에 대해서는 필요한 선수를 찾아서 트레이드를 하기도 한다. 외국에서 유망하거나 이미 정점에 오른 선수들을 용병으로 데려오기도 하고,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신인들을 발굴하여 프로에 데뷔시키기도 한다. 팬들의 니즈를 찾아서 홍보 전략을 세우기도 하고, 스타 플레이어들의 유니폼이나 굿즈를 만들어 판매를 준비한다. 팀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여론이 흘러가도록 언론과 미디어를 잘 활용한다. 혹여 선수들의 음주운전이나 도박, 약물 등의 도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언론 대응과 함께 그에 응당한 징계를 처리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든 노력은 모두 ‘더 강한 팀’을 만들어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들의 노력은 외부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들의 노력은 오직 선수들이 잘 치고, 잘 받아내며, 잘 뛰어주어야 비로소 증명된다.

하지만 프로 스포츠 구단의 스포트라이트 이면에는 ‘프론트’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다. 사진은 드라마 '스토브리그'에 등장하는 프론트 조직도


'스토브리그'의 주인공


그동안 스포츠를 다룬 영화들은 주로 ‘선수’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 야구가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하는 스포츠이고, 그 중심에 늘 선수들이 있어왔으며, 그 중에서도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들 하니, ‘프로야구’의 ‘투수’들이 이러한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이 되어온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프로야구’의 ‘투수’들이 이러한 영화나 드라마의 단골 주인공이 되어온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진은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퍼펙트 게임' 포스터)


하지만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선수들이 아니다. 물론 강두기(하두권 분)나 임동규(조한선 분)와 같은 선수들도 등장하지만 그보다 백승수 단장(남궁민 분), 이세영 운영팀장(박은빈 분), 한재희 사원(조병규 분) 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드라마는 우리가 주로 집중해온 ‘경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경기를 잘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노력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비중있게 다룬 것이다.


'구단 프론트'와 '대학 행정'의 묘한 동질감


대학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해온 필자로서는 여러모로 감정이입이 되는 포인트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과 프로 구단은 은근히 이러한 생리 측면에서 비슷한 면이 많다. 프로 구단이 모기업이 있듯 대학에도 대학을 소유하는 학교법인이 있다. 프로구단에서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이 감독, 코치들과 선수들이라면 대학의 교육 현장에는 교수와 학생들이 있다. 프로야구팀의 경쟁력은 그라운드에서 증명되어야 하며, 대학의 경쟁력은 궁극적으로 강의실과 연구실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사실 구단의 프론트나 대학의 행정 영역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들은 현장 뒤에 그러한 사람들이 존재하는지도 잘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필자는 최근 몇 년동안 교수 인사 업무를 맡아서 했었다. 계약서를 숱하게 작성했다. 통상적인 계약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서명날인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있다. 때로는 교수님 연구실의 문을 두드려서 찾아 뵙고 개인적으로 설명을 드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니 몇 년간 서명이 되지 않는 계약서도 존재한다. 교수 인사와 관련된 제도에 조금씩 변화를 가하려면 엄청난 진통이 따르기도 한다. 교수 징계 결과를 알리는 통보문을 들고 해당 교수님을 찾아뵈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연 없는 무덤은 없게 마련이다. 몇 시간씩 하소연을 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애사심은 연봉 순이 아니었다


나는 교수 인사 부서의 일개 직원이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전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학교’에서 하는 말이라고 불렀다. 그게 어쩌면 아이러니였다. 재정적인 측면에서 필자보다 훨씬 많이 받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배짱을 놓기도 하는데 상대적으로 그들보다 적은 연봉을 받는 일개 직원이 ‘학교’를 대표해서 그들을 타이르고 설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그들보다 적은 연봉을 받는 일개 직원이 ‘학교’를 대표해서 그들을 타이르고 설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은 모두가 중요하지만 모두가 공동체 중심으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프로구단 선수들이 어떻게든 더 몸값을 올려서 이적을 노리듯 학문 분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개인들의 도덕적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서로 다른 구조가 만들어내는 고유의 특성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다. 전문 분야의 사람들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도 공동체의 이익을 함께 도모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유도하는 것은 행정 직원들만이 해야만 하고, 또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구단의 프론트나 대학의 행정은 보이지 않게 조력하는 역할이다.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발전에 초점을 맞추어낼 수 있는 사람들 역시 이들이다. 억대 연봉을 받는 스타 플레이어들보다 프론트와 행정가들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십년동안 대학에서 일을 해오면서 필자는 그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몸소 경험해왔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가능할까 수없이 질문했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니 적어도 그 무대에서는 웃는 얼굴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에 서지 않는 사람들은 무대에 서는 사람들보다 동기 부여가 상대적으로 덜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 질문을 가지고 스스로 묻기도 했고, 헌신하는 것을 아깝지 않게 여기는 다른 선배들과 후배들과 대화를 통해 나누기도 했었다.


결국 그 질문에 답은 ‘애정’이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이세영 팀장이 어렸을 때부터 드림즈의 경기들을 보면서 꿈을 키웠듯, 재벌 3세인 한재희 사원이 자비를 아끼지 않으며 포구 연습을 하듯, 그렇게 공동체와 야구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의 노력을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 노력이 결국 선수들의 근육과 글러브에, 배트에 배어들어갈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 궂은 일들을 해내는 운영팀을 보며 나는 직업과 노동의 소명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 질문에 답은 ‘애정’이었다. (사진은 '스토브리그' 포스터)


무대에 서지 않지만 무대를 빛내고 있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물론 모든 프론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고, 모든 대학 행정가들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프로 선수와 교육자들 중에서도 누구보다 공동체에  열성적인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를 우선으로 하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만도 아닐 것이다.


다만 무대에 서지 않는 사람들이 무대에 서는 사람들보다 더 큰 저력을 발휘하는 이 놀라운 기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대에 서는 주연 배우도 중요하지만 배우를 돕는 조연들과 스탭들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객을 직접 대하는 현장에서는 직접적으로 보람을 느끼기가 상대적으로 더 쉽다. 성과를 직접적으로 내는 부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어떤 회사이든 뭘 해도 티가 나지 않는 부서가 있게 마련이다. 늘 구조적으로 소외되고, 예산 배정 받기도 어려우며, 성과를 내기도 어려운 조직들. 그들은 어떤 것에 보람을 느끼며 살아야 할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공동체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잘 알려주는 드라마 속 백승수 단장의 리더십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리더십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직업에 대한 소명감'을 유난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도 그렇게 무대에 서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에 여전히 무대는 빛이 난다. 관중들의 박수는 배우들에게 돌아가지만 감독과 스탭들은 그 박수를 받는 배우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고 감사하다. 마치 스토브리그의 '드림즈'의 프론트 사람들처럼 말이다.


도처에서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히 감당하고 있는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당신의 땀과 눈물 덕분에 여전히 세상이라는 무대가 돌아가고 있다고, 그러니 너무 상심하거나 지치지 말라고.

당신의 땀과 눈물 덕분에 여전히 세상이라는 무대가 돌아가고 있다고, 그러니 너무 상심하거나 지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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