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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pr 15. 2020

'죽음'과 맞닿았던 투표의 '추억'

가족들과 투표장을 향하며

2007년 12월 19일, 나는 대학교 3학년이었고, 기말고사 기간이었다. 그 해 3월에 제대해서 제대한 날 바로 복학을 했다. 남들은 군대에서 정신 차려서 학점이 오른다는데 나는 머리가 굳어버린 2년의 시간을 메꾸기가 너무 힘들었다. 기업에서 수혜를 받고 있는 장학금이 있었는데 성적이 일정 학점 이하로 내려가면 박탈되는 터라 시험에 대한 압박감이 컸다.


그 날은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날이기도 했고, 오랜만의 휴일을 맞아 가족들끼리 모이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결혼해서 형들과 누나는 모두 분가해서 살고 있었고, 나는 나이가 많이 드신 어머니, 아버지와 셋이서 살고 있을 때였다. 아침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아버지는 선거 이야기를 하셨다. 내 앞가림 하기에 바쁜 대학생은 그 말이 귀에 잘 들리지 않았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남은 대학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지가 걸려있는 시험이 눈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장학재단에서 요구하는 학점이 나오지 못하면 나는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재원 조달을 할 수 있는 터였다.


아버지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제대로 된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집을 나왔다. 집에서 가까운 동사무소에 가서 투표를 했다. 아버지가 아침 내내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지만 투표를 하는데 적용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눈 앞에 있는 시련보다 나라의 안위가 더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었다. ‘시험 공부하느라 힘들지?’라는 한 마디를 기대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막상 듣지 못하니 서운한 마음도 조금 들었다.


휴일이라 그런지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 저녁에 식구들이 모이기로 했던 터라 신경이 많이 쓰였다. 밤까지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생각하니 규모가 큰 범위에 푹 빠지기가 힘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져 갈 때 쯤, 핸드폰이 울렸다. 누나였다. ‘누나가 벌써 왔나?’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은 너무 의외였고, 처절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하셨어. 여기 OO대학교 병원인데 빨리 와야할 것 같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들려오는 숨결과 목소리의 톤이 이미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보니 수술실로 이미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급하게 연락을 하다보니 막내인 나에게는 다소 늦게 연락을 한 것 같았다. 아버지는 저녁에 모이기로 한 시간까지 기다리시기가 무료하셨는지 자전거를 타고 나가셨던 것이다. 동네를 한 바퀴 도시다가 횡단보도에서 트럭에 치여 머리를 땅에 부딪히고 쓰러지셨다. 외상이 없어서 트럭 운전사도 심각성을 못 느꼈겠지만 머릿 속에서는 피가 터져서 뇌가 한 쪽 방향으로 심하게 기울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와 다른 어눌한 모습을 본 어머니가 큰 형에게 전화를 했고, 낌새를 챈 큰 형이 바로 차로 아버지를 모시고 간 곳이 동네에서 가까운 한 대학 병원이었다.


의사는 생존확률을 30% 정도로 이야기했다. 그것은 내가 아침에 하는둥 마는둥 했던 인사가 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가 될 가능성이 70%라는 것을 의미했다. 수술의 결과와 무관하게 후회가 몰려왔다. 매일 반복되어 귀한 줄 모르던 아버지의 정치 이야기가 가장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기 직전에 했던 일이 바로 투표였다. 아마 동네에서 1등으로 가서 투표를 하셨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새벽 6시의 투표소가 어떤 색인지, 어떤 공기가 흐르는지를 느껴본 적이 없지만 아버지는 이른 새벽에 어머니와 함께 부지런히 가셔서 투표를 하셨다. 그래서 나는 어려서부터 투표를 ‘선택’의 개념으로 받아들여본 적이 없다. 서로 다른 시대 환경을 살아온 식구들에게 정치에 관한 토론은 늘 밥상머리에서의 주제가 되곤 했다. 서로가 살아온 세월이 다른만큼 좀처럼 의견이 한데로 모여지지는 못했지만, 막내인 나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이 되어 각자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우리 식구들이 살던 그 좁디좁은 방은 그렇게 다양한 세상을 볼 수 있는 창구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2007년 12월 19일, 우리 식구들은 아버지의 큰 사고를 시작으로 기약을 알 수 없는 병원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그 때 처음 알았다. 인간의 ‘뇌’는 미지의 영역이자 신비의 영역이라는 것을.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때마침 선거날이라 수술실에 대기가 밀려있지 않았던 점이다. 뇌출혈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인데, 큰 형이 바로 움직여 주신 덕분에, 그리고 아버지가 선거날 다치신 덕분에 지체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수술은 머리에 고여있는 피를 빼내는 일이었고, 물리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 생명을 건졌다는 데에 모두가 감사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깨어나신 아버지는 우리가 알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뇌의 전두엽 부분에 미세한 자극만 주어져도 사람의 감정이나 인격적인 부분까지 달라진 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렇게 귀하게 여기던 식구들을 아버지는 전혀 알아보지 못하셨다. 우리는 사고 때 미처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 식구들은 못 알아보는데 찬송가를 불러드리면 따라 흥얼거리시기도 했고, 기도를 하면 ‘아멘’을 하셨다. 그 때, 과연 진짜 아버지는 어디에 계셨을까?     


의사 선생님들은 자신들의 할 일은 이제 다 마쳤으니 이제 나머지는 ‘신의 영역’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병원에서 지내는 수 개월동안 그 신의 영역에 매달렸다. 그리고 거짓말 같이 아버지의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알아보시기도 하고, 못 알아보시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들의 설명에 의하면 뇌에 피가 굳어있던 것이 혈류에 의해 녹으면서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회복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뇌를 다친 경우, 반신불수가 되거나 정신이 되돌아오지 못한 채로 계속 살아가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에게 신이 베푸신 기적이었다.       


정신이 돌아온 아버지는 지난 시간동안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마치 긴 터널을 통과한 느낌이랄까. 아버지의 기억은 2007년 12월 19일에서 멈춰있었다.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에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시던 것조차 그 분은 그저 흥미롭게 듣기만 하셨다. 엄마가 아빠 없으면 못 산다고 눈물을 펑펑 쏟으시던 것도 아버지에겐 그저 신기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시자마자 나에게 물으셨던 것은 다름 아닌 선거결과였다. 평소 같았으면 또 그 정치 이야기냐고 핀잔을 드렸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기쁘게 그 결과를 알려드릴 수 있었다. 나는 다시 아버지와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 시간을 함께 통과하지는 않았지만 결혼 후 간접적으로 경험한 아내는 그 다음 선거날, 서프라이즈로 선거만이 이날의 주인공이 아닌 아버지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날로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투표의 의미는 나에게 그렇게 새롭게 다가왔다. 정치의 색깔과 사상을 넘어서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전쟁의 폐허 위에 대한민국이라는 강국을 세워내던 그 어른들에게도, 자유를 되찾기 위해 독재 타도를 외치며 머리에 띠를 두르던 그들에게도, 그리고 이제 제 앞가림 하고 살기에 바쁜 현대의 젊은이들에게도 모두 한 표씩이 주어진다. 어떤 이들에게 그 한 표는 목숨값이었다. 나라의 대표를 국민들의 손으로 뽑는다고 하는 그 보편적 일상을 쟁취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항거했고, 목숨을 잃기도 했다.      


오늘, 우리는 그 보편적 일상을 다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사전투표날, 아이들 둘을 모두 데리고 투표장을 향했다. (미취학의 아동은 기표소에까지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손에는 비닐장갑을 꼈다. 아이들에게 우리는 오늘이 어떤 날인지를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도장을 찍는 곳까지 데려가서 나라의 일꾼들이 어떻게 뽑히는지를 직접 보여주었다.      


나는 정치를 믿지는 않는다. 어떤 특정한 세력이 나타나서 우리 대한민국을 구원할 것이라는 기대도 없다. 다만, 투표에 대한 기대는 있다. 유권자들의 표에는 사표가 없다. 선출되지 못하는 후보에게 던져진 한 표도 의미가 있다. 당선이 되는 후보에게 상대 후보의 표는 회초리 역할을 할때도있다. 군소정당에게 던져진 한 표에도 의미가 있다. 그 모든 의견들이 모여서 거대한 균형을 이룬다. 투표율이 높다는 것은 정치인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아버지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살아계시다. 아버지 덕분에 나는 아버지의 소중함과 참정권의 소중함을 같이 깨달았다. 우리 가족은 모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국민 모두가 소신껏 분변하여 한 표씩을 던진다면 그 섭리 안에서 나라의 일꾼들이 균형 있게 선출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역사의 현장에 서 있다. 그리고 다음 세대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다음 나라를 꿈꾸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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