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음 Apr 27. 2020

'지구별 랜선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시대, 여섯살 아들과 시작한 새로운 여행

아이들과 시작한 '지구별 랜선 여행'


오늘은 무슨 요일이에요?
응. 오늘은 화요일인데?
그럼 이제 하루만 더 있으면 우리 여행가는 날이네요!


우리는 매주 수요일마다 ‘온 세계'를 '제 집'처럼 누비고 있다. 세계 여행을 매일 하면  즐거움이 다소 사그러들까봐 요일을 정한 것이다. 수요일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아들을 바라보며 녀석을 처음 만나던 그 순간 아련하게 생각이 났다.



'아빠'가 너무나 되고 싶었다


아내의 뱃 속에 아이가 태동하던 그 순간부터 나는 ‘아빠’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간절히 소망해오던 이름이었다. 초등학교 때 시집 간 누나 덕분에 첫 조카를 일찍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나는 더욱 ‘아빠’가 되고 싶었다. 자려고 누우면 천장에 조카 얼굴이 두둥실 떠올랐다. 조카도 이렇게 간절한 마음이 드는데 막상 ‘내 아이’가 태어나면 얼마나 가슴이 벅찰까? 나는 훗날 겪게 될 그 벅찬 순간을 자주 상상하곤 했었다.


첫 아이는 아들이었다. 수술실에서 간호사님이 나에게 아들 녀석을 처음 건네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태 중에서 막 나온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또랑또랑한 녀석의 눈빛을 마주하며 나는 비로소 ‘아빠’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아내가 멀리 처가에서 몸조리를 하는 기간동안 얼마나 아내와 아들을 기다렸었는지 모른다.

태 중에서 막 나온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또랑또랑한 녀석의 눈빛을 마주하며 나는 비로소 ‘아빠’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아빠'라는 이름의 서투른 시작


하지만 초등학교 때 첫 조카를 대하던 것과 아들을 키우는 것은 많이 달랐다. 부모는 아이를 예뻐만 할 수 없는 자리에 놓여있었다. 아이의 행복한 웃음 이면에는 잠이나 식사와 같은 기본적인 욕구부터 시작해서 사회적 단절을 기꺼이 감수해버린 엄마의 희생이 자리잡고 있었다. 자신의 온 마음과 사랑을 아이에게 다 쏟아 양육하는 아내를 보며, 나는 ‘아빠’로서 아이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사랑하는 마음보다 자기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던 그 시기에 막내로만 자라온 나는 그 필요를 잘 채우지 못했다. 갑작스런 신분적 변화에 나의 상태가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


아들과 함께 시작한 여행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이가 세 살이 되었던 때, 우리는 타이페이로 여행을 떠났다. 세 식구의 여행인 줄 알고 38도의 뙤약볕에서 꽤 고된 일정을 소화했었다.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귀국해서야 그 여행이  식구가 떠난 첫 여행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내의  속에 둘째가 들어선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아내는 첫째 아이 뿐 아니라 뱃 속에 있는 아이에게도 정성을 쏟게 되었고, 자연스레 내가 첫째아이에게 아빠로서의 역할을 할 기회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내의 사랑을 많이 먹고 자란 아들은 이제 벌써 엄마와 떨어지는 아픔을 조금은 참을  있는 어엿한 오빠가 되어 있었다.  즈음, 몸에 맞지 않는  같던 ‘아빠라는 옷이 마치 맞춤복처럼 느껴지는 변화가 생겼. 


나는 그 옷을 입고 아들과 틈틈이 이 곳 저 곳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아들이 좋아하는 여행지 중 하나이다. 여수의 이층버스를 타고 곳곳을 둘러보기도 했고,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기도 했다. 커다란 크루즈를 타고 돌산대교 밑을 지나던 여수의 밤 역시 잊을 수 없다. 서천의 국립생태원에서 다람쥐 버스에 함께 몸을 싣기도 했고, 서울의 남산타워, 롯데월드타워의 꼭대기에 올라 우리의 속세가 얼마나 장난감과 같은지 내려다보기도 했다. 부산의 송도해상케이블카, 태종대, 광안리.. 대구의 앞산케이블카.. 우리는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추억이 하나하나 쌓여갔다.


우리가 함께 하는 여행에서 가이드는 아들이었다. 물론 처음 가 보는 미지의 곳에서는 아빠의 도움이 조금은 필요했다. 하지만 어느새 베테랑 여행가가 된 아들은 어디를 가든 관광안내소에 가서 그 도시의 팜플렛을 펼치곤 했다. 그 때까지는 글씨  자조차 몰랐었지만 픽토그램과 사진만으로 아들은 우리가 가야할 곳을 골라내곤 했다. 는 아들이 고른 목적지들에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이동 방법만을 제공할 뿐이었다.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는 일, 매표를 하는 일, 길을 묻는 일, 감사를 표현하는 일, 심지어 사진을 찍는 일 모두 아들의 몫이었다.

전주의 한옥마을은 아들이 좋아하는 여행지 중 하나이다.
여수의 이층버스를 타고 곳곳을 둘러보기도 했고, 케이블카를 타고 바다를 가로지르기도 했다. 커다란 크루즈를 타고 돌산대교 밑을 지나던 여수의 밤 역시 잊을 수 없다.
우리가 함께 하는 여행에서 가이드는 아들 녀석이었다.


여행은 아빠라는 자리를 놓고 막연히 방황하던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되어주었다. 반복되던 일상을 벗어나 기차나 버스를 타면 바쁜 일상을 사느라 하지 못했던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꺼낼 수 있다. 속이 깊은 아이라 서운했는데도 미처 아빠한테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기차에 나란히 앉아 들을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집에서는 내가 아내보다 특별히 잘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집안일도 청소도, 책을 읽어주거나 놀아주는 것조차 아내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했다. 이제서야 집 안에서 조금 더 노력했더라면 하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들곤 한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집 안에서의 일들을 잘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다소 시시하게 여기지 않았나 싶다. 바깥에서는 조금만 노력해도 인정과 칭찬이 주어지는 반면에 집안에서의 활동은 묵묵한 자기와의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와 단둘이 떠난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아이와의 시간을 소중히 보내는 법을 알려준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여행에서 아이는 아빠를 전적으로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집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기 영 힘들던 아빠도 나와서는 꽤나 힘을 쓰곤 했다. 여행은 그렇게 나와 아들 사이의 관계 형성과 추억 쌓기에 좋은 통로가 되어 주었다.


코로나 위기,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다


이제 녀석과 함께 누볐던 추억들이 이 곳 저 곳에 서려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생하였다. 봄이 되면 예쁜 아내와 여섯 살이 된 아들, 세 살이 된 딸과 함께 야구장에 가서 목이 터져라 응원도 하고 싶었고, 여수에 가서 아들과의 둘만의 추억이 깃든 케이블카랑 유람선도 다같이 타 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들은 추억이 조금이라도 쌓여있는데, 이제 걷고 뛰어다닐 수 있는 딸과 아내가 집안에 갇혀버린 현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현실 속에서 불현듯 생각난 아이디어가 바로 지구별 랜선 여행이다. 이미 온라인에는 지구를 화면으로 띄워내서 우리가 클릭하는 곳 어디든 실사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나는 해외 출장을 갈 때에나 켜보던 프로그램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그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매주 수요일로 날짜를 정해 세계 여행을 누리고 있다. 수요일이 아닌 나머지 요일동안 아들은 세계 여러 곳에 대한 책을 읽으며 가보고 싶은 곳을 공책에 메모를 해둔다. 수요일이 되면 녀석의 리스트에 적힌 곳을 차례로 여행한다.


스페인에서 플라멩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요!
아프리카의 사바나 초원에 데려다주세요!
몽골에서 보는 하늘과 별들은 어떤지 궁금해요!
호주에 가서 캥거루를 보고 싶어요!
그린란드나 북극에도 갈 수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도 가고 싶어요. 그런데 들어갈 수는 없어요?


아들이 가보고 싶다는 곳을 찾아 지구를 몇 바퀴씩 돌다보니 제트랙이 발생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주요 관광지 입구까지는 갈 수 있는데 동물원 같은 경우 안에까지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북극의 차가운 공기도 아프리카 사막의 뜨거운 공기도 마시지 못했다. 자주 찾아뵙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뵙지 못하니 로드뷰에서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다는 녀석의 이야기가 너무 딱하게 들렸다.

아들이 가보고 싶다는 곳을 찾아 지구를 몇 바퀴씩 돌다보니 제트랙이 발생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실제로 가보는 것보다 추억은 덜 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랜선 여행의 추억이 쌓이고 있다. 그 곳에는 코로나가 터지기 전, 세계인들이 누리던 일상의 단면들이 모여있다. 중요한 것은 나와 우리 식구들이 함께 사랑하고 그 사랑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빠라는 자리에 처음 섰을 때, 그리고 여행을 처음 시작했을 때, 그 여행의 방법이 바뀌고 있는 지금까지 우리는 아빠로서, 엄마로서, 아들로서, 딸로서의 자리를 잡아가며 서로를 더욱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


새로운 시작을 가능케 하는 힘


이 모든 것들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만약 아빠라는 자리를 끝까지 어색해했다면? 여행을 시작한 것이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열어주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우리는 그리 두렵지 않을 것이다.

상황이 어려워진다면 또 다시 새로운 것들을 찾아 나설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다름 아닌 사랑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본질을 잃지 않으면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그렇게 매주 수요일을 기다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雪)에 관한 육아 로망 실천기(實踐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