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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Jan 21. 2019

인생에서 축구보다 가족이 중요하다는 벤투의 말

두바이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아시안컵이 한창인 두바이, 조심스러운 질문


아시안컵 기간이다.

한국 축구는 2002년 월드컵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으나

유독 아시안컵의 우승 트로피를 58년동안 들어올리지 못했다.


월드컵만큼은 아니더라도 

전 국민적인 관심사이다.

국민 모두의 눈이 두바이에 있는 감독과 선수들을 향하던 그 때,

한 국가대표 선수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훈련장에서 벤투 감독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감독님, 19일이 여동생의 결혼식입니다. 잠시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조직'의 일 VS '가정'의 일


오랫동안 국가 대표로 뛰었다는 그의 동료의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대표팀 생활 중 이런 상황은 처음 겪어봤다. 


대표팀 생활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가장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생소함'이다.

조직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사사로운 일' 따위는 고이 접어두는 것이 아직은 우리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일부 네티즌들은 '누군가 돌아가신 것도 아닌데 아시안컵 기간에 여동생 결혼식까지 가야 하나'며 비난을 가하기도 했다.


특히 남자들에게 있어 '가정적'이라는 말은 이중적인 잣대로 활용되곤 한다.

가정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저 워딩이 칭찬으로 쓰이지만

조직의 논리를 우선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저 워딩은 '개인주의'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조직의 생존과 발전보다 본인의 가정이 더 우선시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서가 

아직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사실 누구에게나 '가정'은 중요하다. 

조직의 생존과 발전을 목숨과도 같이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기성세대 분들에게서조차도 

마음 한 켠에 있는 가정을 향한 뜨겁고 애잔한 마음을 발견할 때가 많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글, '아빠의 자리'에서 언급한 바 있다.

사실 우리의 아버지들은 누구보다 큰 피해자이다. 직장에서 온갖 무시와 설움을 견딘 것이 다 누구 때문이었는가.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견뎌내고, 가장 깊고 어둔 새벽을 거리에서 맞이했던 것은 누구를 위함이었나. 눈 앞에 아른거리는 아들, 딸들을 생각하며 현관 벨을 누르려다가 잠이라도 깰까봐 한참을 멍하니 등을 벽에 기댄 채 주저 앉던 그 마음을 누가 안단 말인가. 사랑? 그걸 꼭 말로 해야만 아는가? 아빠의 고뇌가, 아빠의 야근이, 아빠의 늦은 회식이 사실은 사랑이었음을. 아이들의 재롱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 눈망울에, 아내가 해주는 밥을 허겁지겁 먹는 그 말없는 시간 속에 사랑이 깃들어 있었음을. 마치 인어공주가 사랑하는 왕자를 구하고 목소리를 잃은 채 바라만 보았듯이, 아빠들은 그렇게 가족들의 주변부에 남곤 했던 것이다.







꼭 '조직'과 '가정'을 구분해야 할까요?


몸을 두 개로 분리하지 않는 이상, 가정과 조직을 같이 돌아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더욱 그렇다.

때로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불효자가 되기도 하며, 

자녀의 졸업식조차 참석하지 못하는 비정한 아버지가 되기도 한다.

주어진 온갖 업무를 다 처리하고 나서야 갓 출산을 마친 배우자의 곁을 지킬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상황을 모두 바꿀 수 없다. 

모두가 여섯시에 칼퇴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다만, 조직과 가정의 가치를 '구분'하는 마음은 바꿀 수 있다.


조직의 발전이 내 가정을 세우는 기초가 된다는 믿음,

가정과 함께 하는 시간이 조직의 발전의 기초가 된다는 믿음.

그 믿음이 있다면 때로 가정과 함께 하는 시간을 희생한 야근을 하더라도,

그 믿음이 있다면 때로 조직의 중요한 일을 희생하고 가정을 선택하는 결정을 하게 되더라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인생에서 '축구'보다 '가족'이 중요하다는 벤투의 말


벤투 감독은 그 선수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쿨하게 대답했다.

 

그래. 걱정하지 말고 결혼식 잘 치르고 돌아와라. 


그는 21일 두바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단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축구란게 우리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하는게 분명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건 가족이고 친지고 지인이다.
그래서 귀국할 수 있게 허락했다.


나는 그의 심플한 태도가 인상 깊었다. 

그는 아시안컵의 여러가지 변수에 몰입하지 않고, '인생'을 생각했다. 


그는 생각했다. '과연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할까?' 


축구가 직업인 감독은 '축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감독이 축구를 '가볍게'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축구도 의미있는 활동이 된다'는 것에 더 가깝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여동생이 평생 함께할 사람과 결혼식을 올리는 것조차 

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축구'라면 그 '축구'는 그 선수에게 얼마나 '허망한 공놀이'겠는가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 선수는 19일에 있었던 여동생의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훈련장으로 돌아왔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그 선수와 함께 1월 22일, 카타르와 16강전을 치른다.


'허망한 공놀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 선수를 응원하련다.

'축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감독의 리더십이

선수들로 하여금 축구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게 만드는지 꼭 보여주었으면 한다.


이제 그 역설적인 움직임이 두바이에서 곧 시작된다.


P.S. 일의 성취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상사의 리더십이

부하직원들로 하여금 얼마나 일을 소중히 여기게 만드는지 보여주었으면 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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