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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r 29. 2019

현실에 존재하는 '인터스텔라'

아이들의 시간은 어른들의 시간보다 천천히 흐른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은 과학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왜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질까? 

늘 느끼면서도 이유를 모르겠던 이 주제에 대해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다음은 3월 28일자로 한 신문에 실린 기사의 말미 부분이다.

영국 배스대의 수리생물학 교수인 크리스티안 예이츠는 마음시간을 대수 비례 함수로 설명한다. 우리가 감지하는 시간은 우리가 이미 살았던 기간의 비율에 좌우된다는 것. 즉 10살 아이에게 1년은 자신의 삶의 10%이며, 20살 청년에게 1년은 자신의 삶의 5%다. 2살짜리가 1년간 경험하는 것과 같은 비율로 20살짜리가 경험을 증가시키려면 30살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5~10세, 10~20세, 20~40세, 40~80세 구간이 각각 같은 의미를 갖는다. 5~10살의 5년 동안 겪는 경험이 40살부터 80살까지 40년간 겪는 경험과 같은 셈이다. 마음시간의 과학적 원리가 젊은 시절의 경험이 그만큼 소중함을 깨우쳐 준다고나 할까?

* 기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링크 참조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887719.html


이 기사에 등장하는 연구팀은 물리적 ‘시계시간(clock time)’과 마음으로 느끼는 ‘마음시간(mind time)’의 불일치를 가정하고 연구를 했다. 이들의 또 다른 가정은 ‘마음시간’이 일련의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이 이미지는 감각기관의 자극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신체가 노화하면 뇌가 이미지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속도가 느려진다. 즉 이 그림과 같이 되는 것이다.




5살 정도의 어린 아이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촘촘하다. 하루동안에도 무수히 많은 이미지를 처리할 수 있고, 그것을 기억의 저장소에 저장한다. 반면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은 세상을 자각하는데 있어 제한적이며 선택적이다. 노인 분들의 최근 기억은 이미지가 듬성듬성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분들에게 있어서도 젊은 시절의 기억은 촘촘하게 남아있다. 이것을 근거로 시간의 흐름을 자각하다보니 아이들의 심리적 시간은 더디게 가고, 어른들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근거로 시간의 흐름을 자각하다보니 아이들의 심리적 시간은 더디게 가고, 어른들은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의 '시간'과 부모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흐른다


논문에 실렸다고 모든 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필자는 경험적으로 이 가설을 지지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다섯 살인 필자의 아들은 같은 일을 경험하더라도 기억해내는 것들이 무수히 많다. 그는 지나가는 자동차의 디자인까지도 비교하며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에게는 모든 자극들이 새롭다. 처음 가보는 식당, 처음 보는 디자인의 자동차, 처음 맛보는 음식의 맛, 처음 느껴보는 강한 바람 등... 엄청난 양의 심상(image)들이 그의 뇌 속에 꼬박꼬박 저장된다. 만약 오늘 하루동안 그의 머릿 속에서 처리된 감각의 양을 따져보면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는 필자의 하루동안의 처리된 이미지를 분석하면 그리 많은 양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와 어린 자녀는 같은 물리적 시간을 살고 있지만 실제 느끼는 시간의 길이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와 어린 자녀는 같은 물리적 시간을 살고 있지만 실제 느끼는 시간의 길이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디게만 가던 유년 시절의 '시간'과 어른이 된 직장인의 '시간'


이는 각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보다 더 명확해진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보라. 그 때의 하루는 당신이 보내고 있는 지금의 하루와 같지 않았다. 해가 뜨고, 학교에 걸어가고, 조회를 하고, 수업이 시작되고, 쉬는 시간이 몇 번 반복되고, 점심을 먹고, 또 수업을 하거나 특별활동들을 하고, 종례를 하고, 오는 길에 친구들과 군것질을 하고, 친구네 집에 가서 게임을 하고, 숙제도 하고, 아무리 많은 일을 해보아도 해는 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해는 언제 떴는지 모르게 이미 지고 있다.  

이는 각자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보다 더 명확해진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보라. 그 때의 하루는 당신이 보내고 있는 지금의 하루와 같지 않았다.



'마음시간'이 느리게 흐를수록 살아가는 '하루'의 중요성은 커진다


5살~10살의 경험의 양과 40살~80살까지의 경험의 양이 물리적 관점에서 보면 8배의 시간 차이가 나지만 ‘마음시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같은 수준의 시간과 중요도를 지닌다는 사실은 특히나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유의미한 결과를 갖는다. 

즉, 아이의 하루는 부모의 8일 정도의 중요성을 갖는다고 해석해도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아닐 것이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부모는 본인의 입장에서 시간이 너무나 빨리 가기 때문에 그러한 관점에서 아이를 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는 매번 새로운 일들의 연속이며 그 과정들을 부모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분명 부모와 어린 자녀에게 있어서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감각의 차이만큼이나 하루하루의 중요성을 느끼는 감각도 차이가 날 것이다. 부모에게는 휙 지나가버리는 하루가 아이에게는 그 어떤 날보다 중요한 하루일 수 있다는 것.

부모가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춘다고 할 때 반드시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부모에게는 휙 지나가버리는 하루가 아이에게는 그 어떤 날보다 중요한 하루일 수 있다는 것. 부모가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춘다고 할 때 반드시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아이의 '시간 흐름'에 발 맞추어 걷기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자. 어른들의 눈이 무심하게 흘려보낼 정보들을 놓치지 않고,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해서 표현하는 아이들. 그들의 눈망울은 오늘도 ‘맑음’이다. 그리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 어제는 닫혀있었지만 오늘은 열려 있는 상점과 가게의 문,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전화하면서 하는 말들, 해질녘의 붉은 하늘과 구름, 밤에 차 안에서 바라볼 때 마치 우리를 따라오는 것 같은 둥근 달. 이것들 모두 아이들에게는 중요하고, 신기하며, 부모와 마음을 나누고 싶은 재료가 된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바쁜 부모들은 아이의 느린 시간에 맞추어 반응해줄 여력도, 시간도 없다. 현대인의 '빠른 시계' 덕분에 아이들의 '느린 시간' 속에 발생하는 일들은 쉽사리 묻히고, 그러다가 어느덧 아이들도 부모처럼 빠른 시간의 궤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같은 2차원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 이미 당신은 ‘인터스텔라’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쏘아놓은 화살과 같은 시간을 살더라도 느리게 가고 있는 아이들의 시계를 꼭 챙겨보자. ‘마음의 알람시계’를 맞추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쏘아놓은 화살과 같은 시간을 살더라도 느리게 가고 있는 아이들의 시계를 꼭 챙겨보자. ‘마음의 알람시계’를 맞추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별할 것 없는 삶 VS 모든 것이 특별한 삶


연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은 거의 모든 감각 자극이 뇌에 이미지로 남는데 반해, 어른들은 그 중 일부만 선택적으로 남는다. 이것이 어른과 아이의 시간의 속도가 다른 이유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어린 아이에게는 모든 경험이 특별하지만, 어른에게는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이라는 말이 된다. 모든 것이 특별한 아이들의 시간은 천천히 가고, 특별할 것이 없는 어른들의 시간은 빨리 간다.

하지만 자녀를 둔 부모라면 아이들의 시계를 빠르게 맞추는 것보다 부모의 시계를 느리게 맞추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다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도, 모든 것이 특별한 삶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신체가 느끼는 시간에는 가속도가 붙더라도 자녀와 함께 공유한 시간은 마치 박제된 시간처럼 우리의 기억 속에 남지 않을까?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지만 기억을 붙잡을 수는 있다. 그런 소중한 기억들을 찾아서 오늘도 자녀의 느린 시간에 함께 발맞추어 걸어보는 것은 어떠할지. 


때마침 함께 걷기에 더 없이 좋은 선선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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