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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Apr 29. 2019

지금까지 이런 세대는 없었다: 신인류(新人類)의 출현

우리는 그들을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른다

지금까지 이런 세대는 없었다: 신인류(新人類)의 출현


 '밀레니얼 세대'란 1980~2000년 출생의 현재 10대 후반~30대 후반 연령대를 지칭하는 전 세계적으로 정의된 세대 개념(generation concept)이다. 전 세계 25억명, 전체 소비 시장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연간 지출액만 해도 2조 4000억 달러(약 2807조 원)이 된다고 하니 전 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력도 어마어마한 셈이다.

'밀레니얼 세대'란 1980~2000년 출생의 현재 10대 후반~30대 후반 연령대를 지칭하는 전 세계적으로 정의된 세대 개념이다.


이러한 '밀레니엄 세대'들이 한국 사회의 전면에 나오면서 세대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이들의 등장에 기성 세대의 리더들은 많이 곤혹스러워 하고, 그들이 곤혹스러워 하는 것 이상으로 ‘밀레니얼 세대’는 사회생활을 버거워 하는 양상이 확연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어쩌면 전 세계의 기성세대와 인사담당자들은 하나 같이 '신 인류의 출현'에 당혹스러워 할지 모른다.

필자도 '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사회, 더 나아가 지구촌 안에서 벌어지는 세대 갈등 문제에 대해서 늘 생각하며, 고민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이러한 '밀레니엄 세대'들이 한국 사회의 전면에 나오면서 세대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employee' 또는 'customer'로서의 '밀레니얼 세대'


시중 서점에 나가보아도 '조직 구성원(employee)'으로서의, 혹은 '구매자(customer)'로서의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이해해보려는 책들이 줄을 잇는다. 매해 발행되는 ‘트렌드코리아’의 2019년 버전에서는 이머징하고 있는 ‘밀레니얼 가족’의 트렌드를 비중 있게 짚고 있다. 밥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주고, 남는 시간은 자신에게 투자하는 ‘밥 잘 사주는 예쁜 엄마’. ‘탈며느리’, ‘탈시부모’를 선언하고 부모-자식 간의 소통은 ‘단톡방’으로 이루어지는 세대. 어쩌면 ‘세대’의 특징이라기보다 ‘현대인’의 트렌드로 보이는 이런 현상들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매해 발행되는 ‘트렌드코리아’의 2019년 버전에서는 이머징하고 있는 ‘밀레니얼 가족’의 트렌드를 비중 있게 짚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조직생활에서 행복하면 안되나요


'밀레니얼 세대'의 장점은 무궁무진하지만(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유독 사회생활로 오면 이 세대는 힘을 영 못 쓰는 모양새이다. '브런치'에서만 보아도 30대(1980년대생)들의 ‘퇴사’ 글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성세대에게 있어 인생의 에너지를 조직에 모두 쏟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는데, 이 가치관이 요동을 치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정말 '밀레니얼 세대'는,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기성세대는 사회생활, 조직생활을 행복하게 할 수 없는 것일까.

'브런치'에서만 보아도 30대(1980년대생)들의 ‘퇴사’ 글이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 세계에 나타난 신인류(新人類), 그리고 그들을 향한 따가운 시선


'밀레니얼 세대'는 기성세대로부터 흔히 ‘자기애가 강하고, 집중을 못하며, 게으르다’는 사회적 편견을 한 몸에 받곤 한다. 이들은 리더십을 가진 어른들을 굉장히 혼란스럽게 한다. '무엇이 문제냐'고 물으면 ‘목적이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그들 스스로도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기성세대 역시 목적이 뭐가 중요하냐며 그냥 당위만을 강조하기 쉽다. 기성세대에게는 조직의 문제에 있어서 ‘왜’라는 질문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밀레니얼의 키워드: 부모교육, 기술, 조급함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의 저자이자 유명 TED 강연자인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은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 부적응 현상에 대하여 다음의 세 단어로 설명한 바 있다. 이 세 가지 키워드에 대해서 이번 글에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의 저자이자 유명 TED 강연자인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은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 부적응 현상에 대하여 다음의 세 단어로 설명한 바 있다

* 사이넥의 영상은 다음의 링크 참조: https://youtu.be/vudaAYx2IcE                                                  


기성세대 입장에서 바라본 '밀레니얼 세대'의 키워드(by 사이먼 사이넥):

부모교육, 기술, 그리고 조급함.



 1) 부모교육


'밀레니얼 세대'들은 실패한 부모교육의 안타까운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 사이먼 사이넥의 입장이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너희들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복돋웠던 전 세계의 엄마들의 전략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현대 사회를 '밀레니얼 세대'는 부모의 필터를 차용하여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늘 자신의 성과에 비해 과도한 칭찬을 들으며 살아왔다. 그 칭찬은 실제로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주지도 못했을뿐더러 정작 객관적인 자신의 사회적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 더욱 좌절감을 느끼는 기제로 활용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부모가 20대까지는 그들의 자존감을 지켜준다고 치더라도 직장생활은 다르다. 부모는 자녀를 승진시킬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자존감과 자아상에 큰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너희들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복돋웠던 전 세계의 엄마들의 전략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2) 기술


사이넥이 말하는 '기술'은 '소셜 네트워킹(SNS)'을 근간으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많은 경우 ‘스마트폰 중독’이다. 인간관계를 맺는 패러다임 자체가 온라인으로 바뀌었다. 온라인에서 나누는 채팅이 ‘도파민’과 같은 호르몬을 만들어내며 중독성이 강한 일시적 행복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깊고 의미있는 ‘진짜’ 관계를 형성할 줄 모르는 이들이 늘어났다. 페이스북 친구는 많고, 일상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많을지 모르지만 서로 진심으로 의지하지는 않는다. 함께 공통의 관심사를 즐길 수는 있지만 진심으로 교류하지는 않는다. 무교류 동호회가 늘어나고, 관계의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자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존의 인간관계의 기준으로 볼 때, 그런 피상적 관계에 깊이 있는 인격적, 정서적 교류는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들이 스트레스를 잘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해소하던 기성세대의 패러다임과는 달리, '밀레니얼 세대'는 장치(SNS)에게로 돌아간다. 하지만 장치는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해소해주지 못한다. 일시적인 도파민만을 제공해줄 수 있을 뿐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족에게 인사하기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밀레니얼 세대'에게 이 부분은 진정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이넥이 말하는 '기술'은 '소셜 네트워킹(SNS)'을 근간으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3) 조급함


'밀레니얼 세대'는 ‘지연(delay)’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자라났다. 단적인 예로 TV프로그램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디지털로 변환된 콘텐츠를 앉은 자리에서 누릴 수 있다보니 재미 없는 부분은 스킵하고, 본인이 원하는 것만 골라서 빠른 시간 안에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드라마 결말을 보기 위해서는 몇 시즌을 건너뛰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 생활과 인간 관계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관계라는 것은 진전도 느리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늘 존재한다. 종잡을 수 없고, 불편하며, 복잡하다. 근면하고 똑똑한 아이들이 회사에 입사해서 잘 다니고 있냐고 물어보면 많은 경우 그만 둘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사회 초년생들은 산 정상에 있을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만, 그 과정이 되는 ‘산 자체’를 잘 보지 않으려 한다. 드라마를 스킵하는 것처럼 그 산 자체를 오르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다면 모르지만 현실의 사회생활은 점진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

직업 성취, 기쁨, 삶에 대한 사랑, 자신감. 이런 것들은 무엇보다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그러한 것들을 기다릴 만큼 인내심을 연습하지 못했고, 그래서 쉽게 좌절할지도 모른다.

'밀레니얼 세대'는 ‘지연(delay)’를 경험해보지 못하고 자라났다.


'사이넥'의 관점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밀레니얼 세대'는 기성 세대가 가지지 못한 엄청난 지식과 지적 추구, 잠재력, 목적 의식과 삶의 가치의 균형을 갖추고 있다.


다만, 사이먼 사이넥의 시선을 빌린 이 글을 통해서 기성세대 독자들은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지난 날의 사회변화, 기술 변화의 맥락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겠다. 특히나 기성세대가 기술 변화를 선도했지만 다음 세대에 미칠 부작용을 예방하지 못한 점, 소셜미디어의 세계에 이들을 방치시켜둔 책임, 육아에 있어 왜곡된 자존감을 심어준 부분들에 대해서는 조심스레 반성적인 관점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들은 자신의 삶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현상들'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곰곰이 역추적해볼 필요가 있겠다. 물론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진리’는 아니다. 필자도 '밀레니얼 세대'이지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장치'로 회귀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말 그대로 '경향성'이다. 다만, 우리가 자라나는 시기에 전 세계적으로 비슷했던 환경변화를 생각해보며 그것이 ‘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를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거시'와 '미시'의 관점을 아우르는 노력이 있을 때, 비로소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을 뿐더러 이해되지 않던 '다른 세대'의 특성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 들어서며


저는 늘 중간자적 시선에서 고민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서울 사람으로서 지방에 살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 밖 세상과 소통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직업적으로도 서로 특성이 다른 집단을 이어주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남성과 여성 사이, 때로는 젊은 사람과 기성 세대의 중간에서 마음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제 필명인  ‘이음’은 ‘잇는다’는 뜻으로써 어떠한 갈라진 영역에든지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이해해보려는 노력에서 탄생한 이름입니다. 또한 '좋은 생각'들을 '삶'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성장에만 몰두한 나머지 서로의 세대적 특성을 이해하고자하는 시도가 적었습니다. 이번 시리즈를 통해서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자신이 속한 세대에 대하여, 혹은 다른 세대에 대하여 한 번 씩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셨으면 좋겠습니다.

2019. 4. 29.
작가 이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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