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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Jun 11. 2019

저는 교수를 뽑는 사람입니다

보람도 크지만 극심한 자아 붕괴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교수를 뽑는 사람


나는 대학교에서 '교수를 뽑는 사람'이다.

매 학기 대학교의 방학 시즌이 되면, 어느새 나는 '교수를 뽑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나에게 있어 교수를 뽑는 일은 인사 업무의 한 가지일 뿐이지만

'교수를 뽑는 일'은 조직 안에서 내 정체성을 설명하는데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대학교에서 '교수를 뽑는 사람'이다.


교수를 뽑는 일, 대학의 가장 중요한 투자


'교수를 뽑는 일'은 대학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투자이다.

대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주체는 단연 학생이다. 학생을 위해 교직원이라고 불리우는 교수와 직원이 존재한다. 학생은 대학의 주인공이 되고, 교수와 직원은 주인공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적, 행정적으로 돕는다. 형태가 있는 재화를 제공하는 제조업과는 달리, 대학은 인적자원에 기반한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그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적자원이 매우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인적자원의 가치를 금전으로 따질 수는 없지만 통상적으로 우리는 교수님 한 분을 초빙할 때, 20~30억 정도의 투자로 인식하곤 한다.

'교수를 뽑는 일'은 대학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투자이다.


중요한 투자인만큼 리스크도 크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인적 자원의 탄력적 운영이 가장 어려운 집단이 바로 대학이다. 불체포특권, 의사에 반한 면직 제한 등 교원의 지위는 우리 나라 현행법으로 든든히 보장되어 있다. 일반 근로자들과는 달리 해임이나 파면 등의 징계 처분을 받았을 때, 소청심사위원회라는 조직이 1차적으로 학교의 판단이 옳았는지 검증을 한다. 소청심사에서 학교가 승소했다해도 끝난 것이 아니다. 법원으로 넘어가서 그 결과가 뒤집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즉, 대학의 경영자가 임의로 교원에 대하여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교원에게 있어 고용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해, 교수 초빙 시점에서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면 불량의 인적자원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같은 공간에서 모양을 달리하며 수십년을 고생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중요한 투자를 적재적소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사람 한 사람을 모셔오는 것이 학생들의 삶을 바꾼다. 그것이 대학이라는 공동체를 발전시킨다. 

'좋은 사람'이란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는 없다. 대학에는 연구를 잘 하는 분, 강의를 잘 하시는 분, 학생들과 소통을 잘 하시는 분, 보고서를 잘 쓰시는 분, 외부 사업을 잘 유치해오시는 분, 기업과 연계를 잘 해내시는 분 , 실무 경험이 많으신 분 등등 많은 유형의 교수님들이 필요하다. 물론 나 개인적으로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인격적인 리더 분들이 많이 찾아와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일에서 가지는 보람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 중, '교수를 뽑는 일'을 매우 귀하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대학의 교육과 행정에서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 한 사람의 학생이 입학해서 졸업하기까지 모든 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 중에서도 교수 채용 제도를 조금씩이라도 개선을 해 나가고, 우수한 인적 자원들이 더 많이 지원할 수 있도록 홍보하며, 채용 프로세스가 진행되는동안 어디선가 발생하고 있을 수 있는 도덕적 해이에 대해서 감시하고, 규정대로 채용 프로세스를 돌리는 일들을 하는 것이 힘들 때도 있지만 매순간 보람이 크다. 

특히나 신규 임용된 교수님을 통해 학생들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 보람을 배나 느끼게 된다. 나의 노력이 수치화되고, 양적으로 증명될 수는 없지만 선한 영향력으로 치환되어 어딘가에서 발휘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수는 어떻게 뽑히는가


물론 내가 교수를 뽑는 일을 한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뽑는 것은 아니다. 

내가 속한 대학에서 전임교원을 초빙하는 프로세스는 크게 5단계이다. 서류심사, 연구업적평가, 강의능력평가, 면접평가, 그리고 재단에서 최종 면접이 한 번 더 있다. 나는 각 단계에서 수많은 평가위원들과 지원자들을 중간에서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지원자들의 수십년의 노력의 결과들이 서류 봉투 하나에 담겨서 들어오면 나는 그것을 평가위원에게 심사를 의뢰하고, 그 결과들을 취합해낸다. 강의평가에서 지원자분들은 정해진 시간동안 자신의 강의력을 증명해야 하고 나는 그러한 '판을 짜는' 일을 한다. 학교 면접과 법인 면접을 통해서 나는 다소 경직되고 딱딱한 만남을 주선한다. 지원자들은 정량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자신의 진면모와 됨됨이, 각오 등을 이 자리에서 드러내어야 한다. 

내가 속한 대학에서 전임교원을 초빙하는 프로세스는 크게 5단계이다. 서류심사, 연구업적평가, 강의능력평가, 면접평가, 그리고 재단에서 최종 면접이 한 번 더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이 다가온다


채용 절차를 진행하고 있노라면 묘한 착각이 든다. 

지원 서류들을 몇 번씩이나 검토하다보면 내가 정말 지원자들과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면접을 보기 위해 대기실에 계신 분들을 보면 왠지 모를 반가움마저 생기곤 하는 것이다. SNS에서만 보던 사람들을 실제로 보면 아는 척을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도 그런 애매한 감정을 느끼지 않는가? 나는 지원자들과의 만남이 그렇게 반갑고도 어색하다. 나는 그들의 사진을 수십번 보았지만 그들은 내가 처음이지 않은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반가움의 표시는, 얼굴만을 보고 이름을 불러주며 명찰을 건네드리는 것이다. 긴장감에 휩싸인 그들은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 자리에 멈추어서 순간 내 눈을 바라보곤 한다. '어떻게 알았지?'하는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생면부지 처음 보는 젊은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안다는 것이 처음에는 의아스러울 일이다. '저는 서류로 수십번 선생님을 만나뵈었거든요.' 이 말 한 마디에 지원자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밴다. 그렇게라도 잠시 긴장을 멈추고, 사람과 사람과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반가움의 표시는, 얼굴만을 보고 이름을 불러주며 명찰을 건네드리는 것이다.



교수 초빙에서 경험하는 자아 붕괴


하지만 '교수를 뽑는 일'에 '정체성'이나 '보람'과 같이 이상적인 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의 채용 프로세스가 진행이 되면 나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사실상 '자아 붕괴'를 경험하게 되곤 한다. 온갖 민원을 받아내느라 일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질 수 있는 위기도 자주 경험한다. (이러한 상황을 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야근 밖에 없다.) 지원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는 항상 시간과의 싸움을 벌여야 한다. 합격자 발표를 약속한 날에 실제로 합격자 발표를 하기 위해서는 모든 자료를 실수 없이 만들 뿐 아니라 이를 교무처장님과 학교의 장인 총장님께까지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내 입장에서는 이 일이 너무나 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총장님의 일정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저 속절없이 비서실에만 정중한 독촉을 보낼 뿐... 그렇게 지원자들과 함께 애타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나 아니면 다 부적격자'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제일 힘든 건, '내가 최고', 또는 '나 아니면 다 부적격자'라고 생각하는 유형의 지원자를 탈락시켰을 때이다.

교수 채용은 일반 채용과는 많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지원자들은 어찌 됐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모자라다'거나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학창시절에 1등을 한 번도 놓쳐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학사졸업자들보다 기본적으로 자존심이 굉장히 셀 수 밖에 없는 그룹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2017년 초, 평년과는 다르게 많은 인원을 채용하고 있던 때였다. 강의능력평가에 대한 합격자 발표를 마친 직후였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제가 왜 탈락이죠? 저는 다른 지원자들보다 모르긴 몰라도 2~3배의 연구실적을 가지고 있을 텐데요. 이 분야에서 저를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제가 강의평가 때 누가 왔는지 다 보았는데요. 다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왜 떨어져야하나요? 이런 교수 채용이 투명한 채용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에게는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전화 속 상대방은 속사포처럼 자신을 떨어뜨린다는 건 '부정 채용'이라는 논리를 계속 펴 나갔다.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답변 기회 속에서 나는 강의능력평가라는 것은 연구실적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 오로지 현장에서 하신 강의의 능력을 평가한 것이라는 점, 그 평가에서 선생님은 5배수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탈락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2년이 훌쩍 지난 올해의 어느 봄 날, 나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비실명이긴 했지만 주장하는 논지를 보니 그 때 그 분이 분명했다. 그 당시 채용된 교수님의 그 후의 행적까지 조사하여 국민신문고에 채용된 지원자가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황당한 논리를 제기한 것이다. 민원의 내용은 초빙공고의 필수 조건과 우대 조건조차 구분하지 못한 수준이어서 어쩌면 다행이었다. 하나하나 짚어서 답변을 달아 회신해주었고, 그렇게 그 민원은 말끔히 정리되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자신이 최고라고 믿고 사는 거야 '자부심'이라고 치더라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은 어디서 근거한 것일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자신이 최고라고 믿고 사는 거야 '자부심'이라고 치더라도,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자격이 없다'는 생각은 어디서 근거한 것일까.




올 하반기의 교수초빙, 그 힘찬 항해의 시작


나는 지금도 교수를 뽑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3일에 공고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이번 여름을 불태울 또 다른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마치 배를 타고 출항을 하는 것과 같다.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묵직하고 커다란 배를 탄 느낌이다. 멈출 수 없는 이 큰 배에 탄 이상, 육지에 이르기까지 나는 쉼 없이 달릴 것이며 달릴 수 밖에 없다. 

멈출 수 없는 이 큰 배에 탄 이상, 육지에 이르기까지 나는 쉼 없이 달릴 것이며 달릴 수 밖에 없다.


오늘의 출근


이번 채용에서도 누군가는 합격을 할 것이고, 누군가는 탈락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고맙다고 할 사람도, 욕할 사람도 없다. 어찌보면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만큼이나 나의 일은 외로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고독한 항해의 끝에는 생명들이 뛰노는 육지가 있듯이 나의 초빙 프로세스 끝에도 좋은 분들과의 만남이 있으리라 믿는다. 

늘 그래왔듯 나는 다음 주에도 수많은 지원서와 논문들을 상대할 것이고, 또 다른 설레는 만남들을 준비할 것이며,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인생을 마주할 수 있다는 건 나에게 큰 영광이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단번에 마주한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지원자 수'나 '경쟁률' 같은 차원에서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귀하고 값진 것이다.


부디 우리 학생들을 귀하게 대할 수 있는 분들이 우리 대학을 찾아 주시기를...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며 오늘도 힘차게 출근을 한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단번에 마주한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지원자 수'나 '경쟁률' 같은 차원에서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귀하고 값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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