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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세정 Sep 16. 2024

밤의 등산은 낮과 다르다

산에 가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 도전이다. 탁 트인 길과 달리 숲 속은 어두컴컴고 중간에 길을 잃어 조난될 위험도 있다. 혼자 산을 갔던 사람이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낮에 가는 산이 이러할진대 밤에 하는 등산은 어떠할까? 그 깜깜한 밤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 속을 스스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왜 이런 짓을 하냐고? 안 가보셨다면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잘 들어보시라. 일단 대낮의 등산은 너무 덥다. 여름에 등산이란 땀만 줄줄 흘리다 오는 고행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강렬한 태양빛에 온몸이 타버린다. 얼굴에 기미는 용납할 수 없다. 온몸을 둘러다 해도 손등이 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지만 밤에는? 태양이 없다. 은은한 달빛만이 내 몸을 감싸줄 뿐. 크으 이 낭만.


그리고 야경. 도시의 야경을 보는 방법. 차를 타고 고지대에 가거나 돈을 내고 전망대에 올라간다. 울스카이타워의 입장료는 3~4만 원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야경을 보는 더 고생스러운 방법이 바로 야간등산. 차 타고 서울 팔각정이나 남산타워 케이블카를 타는 방법도 있는데 왜 굳이 고생을 해야 하냐고? 고생한 만큼 우리 뇌는 보상심리 때문에 야경이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편한 패키지여행보다는 손품, 발품 팔아가며 떠난 자유여행이 훨씬 기억에 오래 남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 좋다. 야경이 아름다운 건 알겠는데 오밤중에 산 어떻게 오르냐고? 낮등산과 준비물은 같고 거기에 추가로 손전등만 있으면 된다. 휴대폰 플래시로도 가능하지만 다이소 천 원짜리 손전등이 더 편리하다. 드랜턴은 굳이 비추이다. 상대편에서 오고 있는 사람에게 눈부심을 준다. 그리고 야등은 야등으로 오를만한 코스가 정해져 있다. 능선이어야 뷰가 좋고 길 대부분이 계단코스여야 안전하다. 서울의 대표적인 야등코스로는 관악산(사당역 코스), 인왕산, 아차용마산 정도. 인천에 있는 계양산도 좋다.


이중에 가장 추천하는 곳은 관악산. 사당역에서 시작하니 교통의 접근성도 좋고 길도 어렵지 않다. 대부분 계단 길이라 힘들지 않다.(그래도 산이니 당연히 운동은 된다.) 오르고 내리는 내내 시야가 트여있어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과, 도시의 수많은 불빛, 롯데타워의 위용, 남산 등 서울 남부 쪽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초행길이라면 낮에 한번 체험해 보고 올라가는 게 안전하다. 길 외우기도 쉽다. 관음사에서 시작하여 연주대로 가는 표지판만 따라 쭉 가다가 헬기장이 나오면 그대로 온길 따라 내려가면 된다.


혹여 중간에 길을 잘 못 들어도 워낙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 올라갈 때는 연주대 푯말만 잘 보면 되고 내려갈 때는 사당역 푯말만 잘 보면 만사오케이다.


사방이 캄캄하기 때문에 남들의 시선 신경 쓸 것도 없고 오로지 나와 산 둘만의 시간이다.(물론 혼자 가는 것은 권장하지는 않는다. 인천의 계양산 같은 경우는 산세가 깊지 않고 워낙 많은 사람이 가기 때문에 혼자 가능해 보인다. 관악산은 그 정도는 아니라서 강심장이라면 말리진 않겠다) 동반자와 묵언수행 합의를 보았다면 세상에 오로지 나의 발걸음, 숨소리만 가득을 느낄 수 있다. 시야가 차단되기에 다른 감각이 살아난다. 평소 잘 들리지 않던 소리, 감각이 돼 살아난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숲길을 플래시 하나 들고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우리네 인생과도 같다.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간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깜깜한 길을 걷고 있으면 편안함이 몰려온다. 속세에서의 모든 짐은 내려놓고 오로지 이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 금방 다시 속세로 돌아가지만 잠깐의 휴식만으로도 당분간 살아갈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산으로 간다. 한밤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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