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이지만, 한순간 급변하는 감정의 그래프
대학교 2학년 봄.
나는 공대 과대표였고,
그 애는 신입생이자 과 후배였다.
학기 초 신입생 환영회 날,
그 애는 조용한 성격이라던 선배들의 설명과 달리
생각보다 활발했고,
웃을 때마다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첫인상부터 그랬다.
수업 중 잠깐 쉬는 시간,
내가 출석부를 들고 강의실 앞으로 지나가는데
그 애가 나를 부르더니 말했다.
“선배, 혹시 나중에 과제 좀 물어봐도 돼요?”
그 말에 나는 평소답지 않게 말끝이 버벅였다.
“어, 어… 어, 물론이지.”
내 안에서 무언가가 툭 튀어나온 순간.
그건 미분이 정의되지 않는 지점이었다.
그 전까지 평탄하던 일상이
갑자기 급격한 기울기를 가졌다.
우리는 종종 복도에서 마주쳤다.
나는 점점 눈치 없이 말을 걸었고,
그 애는 은근슬쩍 웃으며 받아줬다.
공강 시간에 도서관 앞 벤치에서
함께 시험 공부를 하기도 했고,
시험 끝나고 학교 앞 순댓국집에서 마주친 날엔
자연스럽게 나란히 앉았다.
그 애는 수학을 잘 못했다.
나는 수학에 자신있었다.
자연스럽게 ‘도와줄까?’라는 말이 나왔고
그날 이후로 종종 둘이 만나는 일이 생겼다.
후배에게 문제를 설명해주면서
나는 내가 쓴 글자보다
그 애가 쥔 펜 끝이 더 눈에 들어왔다.
집중해야 할 건 함수였지만,
자꾸 시선은 그 애의 손끝, 눈매, 목선에 머물렀다.
이건 공부가 아니라,
내 마음의 연립방정식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답은 없었고, 조건만 늘어났다.
고백을 고민한 건 중간고사 끝나고 나서부터였다.
같이 본 영화 티켓을 버리지 못하고,
전화를 끊은 뒤에도 통화 기록을 여러 번 다시 보고.
심장은 늘 뛸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입은, 늘 말을 망설였다.
“혹시... 그 애도 나를 좋아할까?”
“지금 이 흐름이 괜찮은 걸까?”
“고백하면, 뭔가 달라질까?”
고백은 감정의 그래프에서
단 한 점에서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다.
그 점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른 곡선이 된다.
접선은 존재하지 않고, 기울기는 갑자기 튀어 오른다.
그건 도함수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결국, 나는 말했다.
강의실 앞 복도.
그 애가 먼저 “오늘 과제 힘들었다”며 웃었을 때.
나는 농담처럼, 아주 가볍게 꺼냈다.
“…근데 너랑 있으면, 공부보다 설렘이 더 신경 쓰여.”
그 애는 눈을 크게 뜨더니
잠깐 나를 바라봤다.
숨소리가 멈춘 듯한 몇 초 뒤,
그 애는 말했다.
“선배… 그건, 그냥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는 거 아닐까요?”
내 머릿속 그래프는
한 점에서 찢어지듯 급격히 꺾였다.
이건 더 이상 미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다시는 둘만의 시간을 만들지 않았다.
다정한 말도, 긴 문자도, 더 이상 없었다.
흐지부지.
관계는 연속이었지만, 감정은 불연속이었다.
나는 그 애의 SNS를 몰래 들어가 보다가,
언팔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멍해졌고
과 모임에서도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의 복도, 그 말, 그 표정만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아직도 정의역 바깥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
고백은 용기였다.
그리고 동시에,
고백은 한 순간 모든 그래프를 바꿔버리는
‘미분 불가능한 점’이었다.
이제는 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점점 선을 그리고,
그래프를 만들고,
기울기를 올리고,
마침내 꺾이는 그 한 점을 만든다.
그 점이 꼭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
그 점이 꼭 사랑의 정답이 아니어도 된다.
고백이란,
내 감정의 정의역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설령 해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다음 화
16화. 내 편 하나 없는 삶은 해가 없는 연립방정식이다
조건은 많은데, 해가 없다.
그래서 더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