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만 있었으면, 그 모든 방정식은 풀렸을 텐데
수학 시간, 우리는 종종 이런 문제를 만난다.
"다음 연립방정식의 해를 구하시오."
두 개의 방정식.
두 개의 미지수.
그럴듯한 문제.
그럴듯한 풀이.
그런데 어떤 문제는,
풀면 풀수록 이상하다.
계산도 틀리지 않았고,
이론도 완벽했는데,
아무리 해를 구하려 해도
답이 없다.
그건 해가 없는 연립방정식이다.
조건은 있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서로를 모순시킨다.
겉으로 보기엔 관계가 성립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만날 수 없는 선과 선.
평행한 관계.
절대 만나지 않는, 냉담한 평행.
사람 사이도 그렇다.
때로는 아무리 애써도,
아무리 맞춰도,
내 편이 단 한 명도 없는 순간이 있다.
나는 그 순간을 ‘해가 없는 연립방정식’이라고 부른다.
중학교 2학년.
반 전체가 나를 따돌렸다.
정확히는 ‘대놓고 왕따’는 아니었다.
그저, 아무도 말 걸지 않았다.
같이 밥을 먹지 않았다.
내 자리를 슬쩍 피해 앉았고,
체육조 시간엔 늘 마지막에 남았다.
가장 충격적인 건
그 누구도 대놓고 미워하진 않았다는 거다.
단지, 존재 자체를 '불필요한 항'처럼 취급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한 번은 용기 내서 말했다.
“나도 같이 가도 돼?”
그러자 한 아이가 대답했다.
“…그냥 다음에 보자.”
그리고는 다 같이 웃으며 사라졌다.
그 웃음은 내게 '해 없음'을 증명하는 식처럼 느껴졌다.
고등학생이 되어선 조금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교실은 여전히 연립방정식이었다.
누군가의 편이 되려면,
누군가의 편을 떠나야 했고,
조용한 나는 항상 중간값처럼 끼어 있었다.
의견도 없고, 강요도 없고,
그저 모두가 하는 대로 따라갔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기준선 위에만 존재하는 항'이었다.
누군가의 필수조건이 되지 못한 존재.
그런 사람은 해를 갖지 못한다.
성인이 되면 달라질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았다.
직장에서 ‘무해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좋은 의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말엔 '영향력이 없다'는 함의도 있었다.
의견을 내도 귀기울이지 않았고,
회의에서 나를 빼먹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루는 동기들과 회식하고 있었는데
내 얘기가 나오자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걔는 그냥... 걔잖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연립방정식에 등장한 미지수처럼
필요하긴 한데, 없어도 성립되는 존재.
나는 그 자리를 조용히 빠져나왔다.
식은 이미 성립했지만,
나는 거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내 편 하나 없는 삶은
해가 없는 연립방정식이다.
관계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누군가
“넌 내 편이야.”
라고 말해줬다면
나는 해를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건 내 잘못일 수도 있고,
세상의 구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결과는 같다.
나는 늘 해를 갖지 못한 미지수였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해’가 생긴 순간이 있다.
결혼식 날.
축의금 봉투를 수백 개 받았지만
진짜 내 편은, 딱 한 사람뿐이었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이제, 우리 둘이 하나의 해를 만들어가요.”
딸이 태어났을 때,
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내게 안겼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이 아이는 나를 조건으로 갖는 방정식이구나.
내가 없으면 이 아이의 식은 풀리지 않겠구나.
그날 이후로
내 삶은 매일매일 해를 갖는다.
사람은 단 한 명만 있어도 살아갈 수 있다.
그 사람이 진짜 내 편이라면.
내 편 하나 없는 삶은
모든 조건을 갖추고도
결국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 연립방정식이다.
하지만
단 하나의 해,
단 하나의 조건,
그게 존재하는 순간
모든 식이 풀린다.
그리고 그 해는
누군가의 “나는 네 편이야”라는 한마디로 완성된다.
다음 편 예고
17화. 열등감은 로그함수처럼 천천히 무너진다
처음엔 미세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어진다.
처음엔 티 안 나지만, 언젠가는 무너진다.
그게 바로 열등감의 곡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