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경험이 만든 평생기준
같이 식사하던 직장 동료가 별일 아닌 듯 말했어요.
그녀는 닭다리를 슬쩍 피해 가슴살 쪽을 조용히 집었죠.
“어? 왜요?”
내가 물었을 때 그녀는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은 식구가 많거든요. 닭다리는 2개밖에 없잖아요. 보통 아버지나 동생들이 먹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뭉클했어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때의 기억과 감정으로 만들어진 '나는 닭다리를 먹어선 안 되는 사람'이라는 보이지 않는 신념이 느껴졌거든요.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조심하는 말이 있어요.
“안 돼!"
그 말은 어느 날 갑자기 아이의 입에서 이렇게 돌아오더라고요.
“어차피 안 될거잖아."
"그냥 안 할래."
그때 알았어요.
내가 던진 말이 아이의 ‘기준’이 되고 있었구나.
내가 만든 말의 틀이 아이의 자존감과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었다는 걸요.
저는 지금 돈이 많은 부자는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필요한 만큼 돈이 들어온다”는 믿음이 있어요. 그리고 그 믿음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무언가 배우고 싶다고 할 때,
“그건 비싸니까 안 돼”보다는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까?”를 먼저 묻습니다.
“엄마가 방법을 찾아볼게.”
“두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해볼까?”
“지금은 안 되지만 나중에 꼭 해보자.”
이런 말들이,
아이 마음속에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남는다고 믿어요.
‘나는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감정 지도가 아이 안에 그려지기를 바라면서요.
닭다리 하나 앞에서 움츠러든 그 동료의 말처럼 어린 시절의 기억, 그때의 감정은 지금의 나를 만든 신념이 되곤 해요.
아이에게 전하는 말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흘러가도, 그 말은 언젠가 아이의 식탁, 선택, 통장과 자존감에 조용히 남겠지요.
“정말 하고 싶으면, 방법은 반드시 있어.”
“엄마는 널 믿어.”
“돈은 엄마가 필요할 때마다 들어오더라.”
그 말들이 내 아이 안에 새로운 기준이 되고, 세상이 아닌 자기 자신이 정한 기준으로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는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 말은 순간이지만, 그 감정은 오래도록 남아요.
오늘, 나는 아이에게 어떤 감정을 남겼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