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원래 그랬어

가난한 사고는 이렇게 유지된다

by 기쁨작가

직장에 어느 직원이 있었다. 그의 잘못된 업무처리를 보고 이의를 제기했을 때, 나에게 돌아온 말은 이랬다.


원래 예전부터 그래왔어요.

처음 시작은 정당했을지 모른다. 그 방식이 필요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분명 맞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같은 방식을 고집했다. 기존의 것을 바꾸려면 번거로움이 생기고,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고,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불편함을 “원래 그래왔어”라는 말 한마디로 덮어버렸다. 나는 이 말을 정말 싫어한다.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말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그 업무의 담당자가 바뀌고, 새로 맡은 사람 역시 기존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인지했다. 아직 잘못된 방식에 길들여지기 전이었기에, 지금은 바른 방법으로 하나씩 잡아가는 중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 말과 익숙함이 변화를 가로막고 있을까.



“원래 무서운 거 싫어.”

예전부터 해산물은 싫어했어.”


어렸을 때 무서웠고, 예전에 맛이 없었다는 이유로 앞으로 있을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무서웠어도 성장하면서 더 이상 무섭지 않은 것들도 있고, 그 음식점은 맛이 없었지만 다른 음식점은 충분히 맛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어느 한 시점의 경험을 이유로 앞으로의 모든 경험을 차단해 버린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계속 가두고 있는 셈이다. 나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어.”


잘한다는 강사들의 강의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기만의 분야에서 이미 성과를 낸 사람들이었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강의를 하고, 그곳에서 또 더 많은 돈을 벌었다. 그들의 강의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먼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학습되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꼭 그렇지는 않았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자신이 한 걸음 앞서 배운 것을 정리해 바로 가르치며 즉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차이는 실력보다 태도에 가까웠다.



되돌아보니 나는 배운 것을 실행해보는 데까지는 하지만, 그것을 정리해 형식지로 만드는 과정은 귀찮아하는 사람이었다. 배우는 것은 즐겁지만 배운 것을 다시 가르치는 일은 예전에도 지금도 나에겐 번거롭고 즐겁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늘 ‘수강생’의 자리에 머무르는 프로 수강러였다. 그 사실을 이제야 솔직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깨달음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원래 예전부터 그래왔어.”

이 말은 변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변화를 미루는 가장 쉬운 선택이다. 나는 이제 이 말 뒤에 숨지 않기로 했다. 완벽한 성과가 없더라도, 준비가 덜 된 것 같아도,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지금의 나로 할 수 있는 것을 정리하고 내놓는 쪽을 선택해보려 한다. 원래 그래왔던 방식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어쩌면 성장은 새로운 무언가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원래 그래왔어”라는 말을 하나씩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어떤 번거로움을 감수할 준비가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