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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동 Aug 27. 2023

이삐와 함께 한 시간

거 뭣이라고.



휴우...

한숨이 깊다.

내가 아는 이 아이의 발랄함. 지금은 없다.

어린시절, 유난히 볼록한 아기배가 우스워 '이티(ET)'라 별명 짓고 놀려댔었다.

그 별명은 어른이 되어서도 한 자리 차지했다. 어느 자리에서든 유쾌하고 그늘 없이 웃는 너였다.




2019년 라일락향에 머리가 어지럽던, 그해 봄.

너무도 갑자기. 세상과 이별한 연이 씨에 대한 슬픔이 뼛속 깊이 각인되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데 처리해야 할 '행정처리'는 너무도 많았다.

맏잽이 눈물샘은 거짓말처럼 싹 말랐다.

그 와중에 속울음만 우는 네 모습은 장례식장 식탁에 엎어진 벌건 육개장 국물처럼,

내 가슴속 얼룩으로 남았다.


깊은 네 한숨. 그 짧은 숨 한 자락에 온갖 사연이 다 느껴진다.

아이들 사춘기와 함께 코로나-19까지. 잠시 잠깐도 숨 돌릴 틈이 없다 했다.

가만히 들었다. 빌수 있는 신께는 다 빌었고, 온 우주의 진심이란 진심 기운은 다 담아 한마디 건네 본다.


"왜 나만 힘들어야 해? 왜 나만 배려해야 해?"

그런 마음 들 때 있지. 그럴 때 난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거 뭣이라고."

죽을병 걸린 거 아니고 억대 빚진 거 아니고 무엇보다, 우린 살아 숨 쉬고 있다고.


"거 뭣이라고."

이 한 마디에 동생은 화들짝 정신 든 기분이라 했다.

좀 우습긴 했지만, 인적 드문 카페 구석에서 각자의 가슴에 손을 포개 얹고 토닥토닥해 주었다.


"애썼어."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할 거야." 하면서.

그리고, 뜨겁게 울었다.


근 2년 슬퍼할 시간도 없이 지내온 상처를 씻어내 듯

한바탕 눈물바람을 하고 나니 저도 나도 속이 시원해졌다.


"이제 별명 바꾸자. 볼록 아기배 없잖아. 눈만 땡그래."

"언니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줘도 돼."

"이쁜 내 동생, 앞으로 '이삐'로 하자."


"우리, 잠깐 도망갈래?"

"흥.흥.흥. 어디로?"

"어디든!"


그리하여, 이제 막 '이삐'로 탄생한 그녀와

우리 앞에 놓인 시간의 아름다움을 소소한 여정으로 나눠 보기로 했다.


그 첫 장소로 우리는 '경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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