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동 Aug 31. 2023

하는 김

그거 어디 팔아요?


하루 평균 30여 통 이상의 전화를 받는다.

대부분 업무 관련, 지원 요청에 대한 연락이다.

부서 미션상 협업이 절실한 위치다. 

그런 위치에서 오랫동안 기획/지원 업무를 하며 한결같이 느낀 건,


'호의가 지속되면 둘리가 된다.' (호이~~호이~~)


물론,

'둘리가 된 건 둘리처럼 굴며 둘리처럼 당해 둘리 네 탓이야.'

라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업무든 인간관계든, 이 모든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일을 하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 

지켜져야 할 무언의 '적정거리'가 참 중요한 듯하다. 

그 거리 잘 지켜야 건강한 정신줄 유지에 좋다.




별스럽지 않은 회계 업무 한 건이 생긴 건,

폭폭한 거품 위 시나몬이 듬뿍 얹어진 카푸치노 한 잔이 생각나는

오후 2시쯤 걸려온 전화 한 통에서다.


부서 간 업무 경계에 교집합처럼 어중간하게 걸쳐지는 업무가 꼭 있다.  

대부분 선량하게 자기 일 자기가 잘하는 차칸 대장을 만나면

'회사일이고 거기서 처리가 어렵다고 하니 수고 좀 해주어.'로

일이 내려온다.


처음엔 항변도 해보고 반항도 해봤다.


하지만, 반항 좀 해본 들만 아는 '똥 누고 뒤 안 닦은' 듯한 그 찜찜한 기분이 너무 싫다.


결국 1박 2일에 등장하는 커피를 가장한 '까나리 액젓' 먹기처럼,

꾸역꾸역 그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차칸 우리 대장 결정이라면 요즘은 토를 안단다.  

그냥 한다.


엄연히 요청이고 부탁받은 입장이다.

그러나, 우리 대장 허락이 떨어지고 나면

그들의 요구는 점점 대담하고 당당해진다.


"거, 통화했어요.

전산처리해서 하는 김에 그 부서에서 저쪽 부서로 서류 좀 보내요."


'어~~~랏?'

흠. 이미 *조타 능력 상실이다.

*배의 키를 조종함


보내라니. 완결 나면 니님 부서에서 출력하는 건데?

그럴라고 비싼 돈 들여 시설투자해서 전산개발 하좌놔좌놔요~


마음속 요동치는 막말은 잠시 접어 두고, 정중히 말해본다.

"완결본은 부서에서 조회 가능합니다. 후속조치는 해당 부서에서 진행해 주세요."

"에이~ 정 없게. 하는 김에. 하는 김에 그냥 좀 보내줘요."


'에이, 칭구야아. 그러지 말고오. 친하게 지내자아.'

라며 억지로 엉겨 붙는 얼굴 모르는 동기를 만난 기분이랄까.


"제가 우리 대장님과의 정을 생각해서, 선행 조치 손 안 가게 완벽히 해두었습니다. 후속 조치 진행해 주세요.

날 더운데 수고하시고요^^"


버터 한 스푼 밀어 넣어 정중히 발라 말하곤 쿨하게 전화 끊는다.




'하는 김'은 어디서 파노?

그 김... 나도 좀 사놓고 싶다. 

쫌. 갈쳐주라...

작가의 이전글 이삐와 함께 한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