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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동 Aug 13. 2023

닥.스.

진짜로 닥치고 ○○만 하나요?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


'피터 드러커' 할아버지의 7가지 지적 경험에 매료되어 '경영학'에 입문했다.


이후 쭉 맵가지 치듯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뭔가 계속해오고 있다.

그렇게 '공부하는 직장인'으로 살아오며 언제 어느 때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그거 해서 뭐해요?

그거 하면 좋아요?

결정적으로... 돈 요?"




20년 넘게 이 질문을 받아오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번듯하게 뭔가 이뤄 놓은 성과다운 성과가 없어 보인다는 것과

 늘 바쁘 사는 내가 퍽 가여워 보인다는 '보는 이'들의 일방적 결론을 게 되었다.


맞다. 번듯하게 뭔가 이뤄 놓은 게 없어 보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이 '보인다'에 있다.


표면적으로 아직 아침 8시 출근시간 어김없이 나타나고

오후 5~6시 퇴근시간 회사 정문을 뛰쳐나간다.

여전히 나는 '매인 몸'인 것이다.  


자기계발과 공부를 하며 핑크빛 미래를 꿈꾼다.

그 핑크빛 미래는 직장을 벗어나는 '퇴직'으로 방점을 찍어야 성공이라 믿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난 퇴직을 위해 공부하는 부류는 아닌 듯하다.

그저 업무가 아닌 것 중 내가 하고 싶은 그냥, 해왔다.  


공부에 한이 맺혔나 물으면 '한' 맺혀하는 게 맞는 듯하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없었으니 할 수 있을 때 한다는 말이 맞겠다. 


창한 행시나 고시 공부 하는 것은 아니고

소소하니 평소 관심 가졌던 분야에 자격이나 전문서적을 본다.


도전해보고 싶은 국가기술자격은

기본 경력이나 학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필요에 따라 학사편입을 하고 자격시험을 준비했다.


그저 슬렁슬렁. 노느니 장독 닦는다는 심정으로.




최근, 이 이유 있는 삽질에 깊이 깨달은 바가 있었다.


표가 안 나더라도 조금씩 매일 멈추지 않고 하다 보니

누군가의 눈에 '확' 드러나지 않아도

내 속이 촘촘히 채워진 느낌이 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언제가부터 "요즘은 뭐해요?" 묻는 사람이 생겼다.

'그냥 놀아요' 할 때도 있고, '보건환경학 학사 중이에요' 할 때도 있었다.


학사 마무리가 되며 '보건교육사'시험 준비를 위해 원서를 냈다.

원서를 내고 보니 시험이 머지않았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후배들 중에서도 워라밸 덕분에 저녁시간대 학원 다니는 친구들 많다.

게 중에는 스터디 카페 정기권을 끊어 일정한 시간 가서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다.


반응은 두 가지다.


'대단하다. 독하다. 독해.'

'뭘 저렇게까지...'




내가 한번 해보니 정말 합격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으면

저렇게라도 해서 일정 시간을 써야 합격 확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언젠가 내게 합격 비결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난 신문에나 날법한 대답으로 원성을 산적이 있다.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있는 만큼 나오는 것 같아요.'


이 심파적이고 교과서적인 대답에 '에이~'하던 사람들 중

아직까지 학원이나 학사 편입 상담만 받은 이들이 더 많다.


찬바람이 살랑살랑 불면 또 묻는다. '편입하고 싶은데...'  

있는 그대로 답하고 친절히  원서접수 기간까지 일러준다.


시작했다는 이를 만나면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한다.

결심에서 행동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았던 탓에

그 만남이 기쁘다는 것 역시 아주 최근에서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당시, 코로나-19로 얼굴 보고 함께 모여

공부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직장생활 중이지만 내년 봄 공무원 시험 볼 요량으로

공부하는 후배와 후배 친구까지 다섯 명 팀을 짰다.


이름하여 '닥스'

닥스 = 닥치고 스터디


어디 근무하고 어디 사는지 소개할 필요 없다.

심지어 이름도 실명 거론하지 않는다.

닉네임으로 ZOOM 입장하고

정해진 시간 동안 자리 이탈 없이 공부한다.

날것 그대로.

정해진 그 시간 공부하고 '다음 시간 만나요' 인사로 헤어진다.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하는 후배네 부서

중년의 직원이 합류했다.


닉네임 '집돌이'.


화면 켜고 공부를 시작한다. 중간중간 말을 건다.


'저기요... 언제 쉬어요?'

채팅창에 친다.

'쉬고 싶을 때 쉬세요.'

'그럼 언제 다시 시작해요?'

다시 채팅창에 친다.

'쉬고 와서 다시 하세요.'


숨 막히는 3시간이 끝나고 집돌이님이 마이크를 켰다.


"언제 한번 만나서 맥주 한잔 안 합니까?

진짜 여기서 닥치고 공부만 합니까?"


"네. 여기서는 딱 정해진 시간, 공부만 합니다."


어색한 침묵은 약 5초 이내였지만,

'너네 다 x라이 같아.'라는 주름진 얼굴 속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집돌이님 다시는 입장하지 않았다.


다행히 5명 닥스 멤버들은 소기의 목적을 모두 달성했다.

난 보건교육사에 후배는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예외를 두는 순간 본질은 흐려진다.

본질이 흐려지면,중심이 흔들린다.

할 때는, 그냥 해야 된다. 닥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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