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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동 Aug 12. 2023

내 마음 엎어지면서까지 해야 할 중요한 일인가?

레알??



평소 S와 관계가 삐딱한 건,

'그 탓이다. 내 탓이다'를 따지기 전에 업무 성격과 개인 스타일 문제라 해야겠다.


나는 '내 일 내가 하자' 주의고,

S는 '내 일도 네가 좀 해주고  일은 네가 라' 주의다.


그날 역시, 아침에 내려놓은 커피 싸늘히 식을 때까지 목도 못 축였다.

눈을 부릅뜨고 바쁜 업무에 정신이 없었다.

와중에,

무심하게 메신저 알림이 깜빡인다.  

하던 일 마치고 보려는데 두 번 세 번 계속 깜빡인다.


"이거, 해달라네요. 그 사람들한테 가진 자료 전달 좀 해주세요."

하아. 한숨이 새어 나온다.

당신 일이에요. 엄연히 업무 분류돼 최종 업무보고서에 당신 이름 똭 박아 올리는 당신 업무.

자료라는 것도 본인이 만들어 뿌려 놓고는 참조 넣어둔 나한테 보내주라니. 내가 보험이니?

마음속 진심 문장들이 메아리를 친다.

심호흡을 한번 해본다.




성격상, 직설적으로 거절 잘 못하고 웬만하면 안 한다.

그런데 이번엔 경우가 좀 다르다.

하던 일을 오전 중 마치지 못하면 예산 편성에 문제가 생긴다.  

더구나, 오전 내내 '이거 있어요?', '저거 있어요?'  

건 별로 들어온 전화 문의에 이미 진도 빼기는 더 어려워졌다.

손가락 풀고 정중히 타이핑 쳐본다.


"제가 오늘은 도저히 힘들어요.

예산 편성안 작성 때문에 지금 당장 도와 드릴 수 없을 것 같아요. 보낸 메일 찾아서 해결하셔야 할 듯요."

"네, 알겠어요."

의외로 쿨한 대답에 안도했다.


점심시간 끝나자마자 전화가 불이 난다. 자료 요청이다. 친절히 담당자를 알려 주니 황당하단다.

"어, 여기 전화해서 받으라던데요."

하아. 어쩌면 좋니...

"S. 자료 요청 들어오는데 제 번호 알려 주셨어요?"

"아, 그게,.. 전 이메일 보낸걸 못 찾겠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단가? 할 말이?




뒷덜미가 서늘하다가 정수리에 불붙은 듯 열불이 터져 올랐다.

한 번만 참자. 싫어도 매일 보는 사람. 나보다 삼 년이나 밥숟가락 먼저 든 사람. 직급으로도... 까라면 까야지...

열불 내서 깐들, 뭐 할래.


최대한 차분하게 내 상황을 다시 설명했다.

"아, 네.네.네. 미안해요. 네.네.네. 일하세요. 네.네.네.네."

아놔. 한 번만 하라고. 그 '네'


급한 예산 편성안은 무사히 결재 올렸다.

한숨 돌릴 찰나, 또 전화가 울린다.

평소 업무상 서로 도움 주고받는, 이제 신입이 티 살짝 벗은 후배 W였다.

늘 예의 바르고 조심성 있는 친구다.

'선배님 바쁘신데 죄송합니다'가 인사라 웬만하면 열일 제쳐놓고 도와 주려 애쓴다.


"선배님, 자료 요청 좀 드리려고요. 안 그래도... 너무 바쁘시죠?

S님되게 기분 안 좋으실 거라 하시더라고요.

그게... 저도 제 일이 아닌데 돌고 돌다 젤 짬 안 되는 제게 내려온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 친구 역시, S에게 전화했다 도매급으로 넘겨진 내 이름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연락한 것이다.


마음이 걸레짝이 되어 얼룩덜룩한 바닥에 내쳐졌다.

내가 오늘은 어렵다했고, 내 상황도 설명했건만...

결국 짬 안 되는 막둥이 시켜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속이 시원했냐.

내 기분까지 싹 판단해 졸지에 치졸한 사람 만들어 놓을 거면 그냥 시원하게 성질이라도 한번 낼걸 그랬다.




후배 W는 연신 고맙다 인사를 했다.

작성하다만 보고서는 잠시 던져두고 1층 로비 밖을 나갔다.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숨을 들이켜 본다.

20년 지기 내 친구 벚나무를 처연히 바라보고 섰다.


'친구야, 넌 좋겠다.

그러고 서서 가만있다가

해 뜨면 햇살 먹고 목마르면 비 마시고

때 되면 꽃 피워 푸르고 이쁘다가 이파리 좀 무거우면 내려놓고 가벼워지니까.'


'장난하냐?

열받는다고 세상 쌍욕 하며 나무 밑동 연타로 차대는 인간.

시간마다 내려와 담배 뻑뻑 피우곤 시원하게 가래까지 뱉어 주는 인간.

오토바이는 왜 이리 많냐. 노상 좁은 길 쳐들어왔다 처박아대는 인간.

내가 이 자리 붙박이라서 얼마나 이상한 꼴을, 뵈기 싫어도 봐야는지. 넌 아냐?'


'아... 미안타. 친구야.'

이쯤 되면 미쳐가는 거지. 20년 지기 벚나무와의 속대화라니.




남의 자료 찾아 보내는 일이, 내 마음 엎어지면서까지 해야 할 중요한 일인가?


구체적이고 확실히 거절하지 못한 내 탓인가?

지금 누구 탓이 중요하나.  엎어진 내 마음이 중요하지.


퇴근 전, 팀장님과의 짧은 면담으로 엎어진 내 마음에 화해를 청했다.

'이번만 참는다. 다음에 또 그러기만 해 봐라.'하고 주저앉으면 '네가 그렇지.' 했을 텐데...


선빵 했네. 내 마음도... 뭐, 괜찮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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