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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동 Aug 11. 2023

손부터 '덥석'

참 몹쓸 습관


바쁜 출근길.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근 25년 전 처음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서로 사는 거 바빠

일 년에 한두 번 마주칠락 말락 하는 Y선배.


횡단보도 앞 신호 기다리며 마스크 위 눈인사를 한다.


"너무 반갑다. 정말 오랜만이다."

눈은 둥실한 반달이 된다.

뽀얀 피부에 큼직한 눈이 볼 때마다 매력적이다.

세월도 비켜가네. 이 언니, 늙지도 않는다.


순간, 자동 반사로 나가는 내 손.

잠시 허공 속에서 짝지 못 찾고 머물렀다.


"미안. 손은..."


아, 코로나-19.

어색하게 웃으며 횡단보도 건너자는 눈짓을 건네온다.

하는 일자체가 사람 대하고 많이 만나는 곳이라 더 조심한다고 했다.

이해한다며 함께 웃었다.

"언제 밥 먹자."

허공에 머무르던 내 손처럼 공허한 인사를 마쳤다.




기억이 남은 아주 어릴 적부터 손이 참 따뜻했다.


유독 시리 추웠던 어린 시절의 겨울.

벌게진 동생 손을 잡으면 녀석은 그저 좋아 배시시 웃었다.


장갑을 끼고 있다가 벗어 주기도 하고

예열해 둔 손 온기를 전하기 위해 두 손을 세게 꼭 잡기도 했다.

사실, 그말고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손의 온기는 갓 스물 넘어 시작한 직장생활에서 났다.

오피셜 하게 내민 손을 가볍게 두어 번 흔드는 '악수'를 통해

"손이 참 따뜻하네요."란 말을 듣기 시작한 것이다.


맺은 인연의 끈은 상대가 놓지 않아도 곧잘 잡고 가는 편이다.

출근길 가끔 마주치는 Y선배가 그렇고, 추위가 찾아오면 생각나는 들꽃선배가 그렇다.




갓 직장생활 시작했을 때 들꽃선배는, 꽤 경력 있는 직원이었다.


팩스 감열지를 정리하는 법부터

업무협조전용 사무언어 표현법까지 꼼꼼히 일러주었다.

참 섬세한 사람이다.

'들꽃'이라 부르는 이유도 거기서 온다.

불면 날아갈 만큼 가녀린 몸에도

일은 하고 지킬 건 지켜내는 강단이 있다.


자칫 밟히거나 흔들릴지언정

스러져 주저앉지 않는 '들꽃'과 같다.


수수하고 소박해 일상 속 늘 함께 있는 것 같은 사람.

함께 일하며 내 손의 온기를 느끼곤 겨울만 되면 두 손을 뻗어 달려온다.


"너무 춥다. 나 손 좀 잡아줘."

덥석. 달려온 손을 맞이한다. 얼음장처럼 차다.

그럼에도 내 손 온기가 더 세다. 손이 손을 파고든다.

어쩜 이리 따뜻할 수가 있냐고.

넌 손에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십수 년이 지난 요즘에야 답이 나온다.


"내 복이지요."



손의 따뜻함이 가장 강한 빛을 발한 순간은 단연, 강의할 때다.

아마추어로 시작한 소박한 내 강의 인생.


일면식 없는 날것의 인연들이 만나 마음을 나눈다.


어색함과 떨림에서 시작된 행동이었다.

30분 정도 먼저 도착한 강의장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첫인사는 늘 비슷하다. "식사는 하셨어요?"

누구를 막론하고 끼니 잇는 질문은 앞으로 50년은 더 지속할 듯하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 전에 손을 쓱 내민다.

자연스레 청하는 악수는 대부분 맞잡는 손으로 답해 준다.

그리고 기억한다. 허리 숙여 정중히 내민 깍듯한 손의 온기를.


이듬해 다시 얼굴 보게 되는 분들은 고맙게도 기억까지 해준다. 그 따뜻했던 손의 온기를 기억해 '손따'강사로  부른다.


그렇게 손 맞잡은 사람치고 웃지 않는 사람 잘 없다.

어린아이부터 구순 바라보는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과 세대를 만나며 먼저 손 내밀어 손해 본 일.

, 한 번도 없다.

사람 만나면 손부터 내미는 습관.




코로나-19 이후 참 몹쓸(?) 습관이 다.

손이 따뜻해서 '손따'로 불렸는데 희미한 별명이 되어 간다.

곧  찬바람 불 텐데 따뜻한 손 마주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다시, '손따'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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