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패를 읽고 전략을 짜다

by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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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OT은 아마 가장 많이 들어본 프레임워크일 거예요.

강점, 약점, 기회, 위협. 네 칸짜리 매트릭스.

대학 수업에서도, 취업 면접 준비에서도, 회사에서도 한 번쯤 해봤을 겁니다.

그래서 가장 대충 쓰이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강점: 성실함. 약점: 인내심 부족. 기회: 성장하는 시장. 위협: 경쟁 심화."

이런 식으로 적으면 안 됩니다.

아무것도 안 한 것과 같아요.

누구한테나 해당되는 말을 적어봤자, 나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SWOT의 진짜 힘은 네 칸을 채운 다음에 나옵니다.




여기까지 5개 챕터에 걸쳐, 꽤 많은 데이터를 모았습니다.

1장에서 5W1H로 하루를 기록하고, 패턴을 발견하고, 인생관을 읽었어요.

2장에서 삶의 빈칸을 찾았고, 회복이 0%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3장에서 에너지 지도를 그렸고, 구조화가 충전이고 방향 없음이 소모라는 걸 확인했어요.

4장에서 3C를 통해 나의 역량과 욕구와 세상의 기대 사이 갭을 봤고,

5장에서 내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등장인물을 매핑했습니다.


이 데이터가 각각 따로 있으면, 그냥 관찰 기록이에요.

SWOT은 이것들을 한 장에 올려서 전략으로 바꾸는 도구입니다.

회사에서 SWOT을 수십 번 했어요.

그런데 내 SWOT은 다릅니다.

"나의 약점은 실행이 느린 것"이라고 적는 순간, 그건 나를 직접 가리키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SWOT을 할 때 강점은 솔직하게 쓰면서 약점은 애매하게 적어요.

"조금 소극적인 편" 같은 식으로. 그러면 전략도 애매해집니다.




네 칸 채우기: Part 1~5의 데이터로

빈 종이에 네 칸을 그리고, 지금까지 모은 것들을 넣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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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강점) — 내가 가진 무기

4장에서 정리한 Company 칸을 가져왔어요.

그런데 직무 역량이 아니라, Part 1에서 발견한 진짜 역량을 넣었습니다.

구조화 능력.

복잡한 것을 정리하고, 프레임으로 만드는 것.

에너지 지도에서도 확인된,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핵심 활동이에요.

깊이 파는 성향. 넓게 아는 것보다 하나를 깊이 파는 것을 좋아하고, 그 과정에서 몰입을 경험합니다.

글쓰기. 아직 초기이지만,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작업 자체가 에너지를 줍니다.

그리고 이중 문화 경험.

영국에서의 10대와 한국에서의 직장 생활 — 두 세계를 아는 것은 시야의 폭을 줍니다.


W (약점) — 내가 인정해야 하는 한계

이게 어렵습니다.

회사 SWOT에서는 "경쟁사 대비 브랜드 인지도 낮음"이라고 적으면 되지만,

내 약점을 적는 건 다른 차원이에요.

실행이 빠르지만, 끝까지는 못갑니다.

새로운 관계 맺기에 소극적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약점을 "고쳐야 할 것"으로만 보지 않는 거예요.

어떤 약점은 강점의 그림자입니다. 관계에 소극적인 건 깊이를 추구하기 때문이에요.

비교 성향도, 뒤집으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약점을 없애려 하면 강점까지 함께 무너질 수 있습니다.

약점을 적을 때는 항상 "이건 어떤 강점의 그림자인가"를 같이 물어보세요.

O (기회) — 지금 나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

육아휴직이라는 시간.

이건 8년 만에 처음으로 온 '나를 위한 시간'입니다.

2장에서 삶의 빈칸을 발견했잖아요. 이 시간이 빈칸을 채울 기회예요.

콘텐츠 시대. 깊이 있는 자기탐색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있어요.

프레임워크를 개인에게 적용하는 시도는 아직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 이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가. "나는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묻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T (위협) — 나를 가로막는 외부 요인

금전적 불안. 육아휴직 중 소득이 줄어요.

이건 시간이 길어질수록 심리적 압박이 됩니다.

복귀 후 시간 부족. 육아휴직이 끝나면, 지금 같은 자유 시간은 사라집니다.




네 칸이 끝이 아니다: Cross SWOT

여기서 멈추면, 이것도 "성실함, 인내심 부족"과 다를 바 없어요.

정리는 됐지만 전략은 없는 상태.


SWOT의 진짜 힘은 네 칸을 교차시킬 때 나옵니다.

Cross SWOT이라고 해요.


강점과 기회, 강점과 위협, 약점과 기회, 약점과 위협을 각각 만나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 네 가지 전략이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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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전략 (강점 × 기회) — "이걸 지금 밀어야 한다"

구조화 능력 + 콘텐츠 시대 + 육아휴직이라는 시간.

→ 프레임워크 기반 자기탐색 콘텐츠를 지금 만든다.


WO 전략 (약점 × 기회) — "약점을 보완하면 잡을 수 있는 기회"

실행이 빠르나 끝을 보기 힘듬 + 육아휴직이라는 시간.

→ MVP 방식으로 작게, 빠르게 시작하고 여러가지를 끝내본다.


완벽하지 않아도 내보내는 연습.

브런치 첫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WO 전략의 실행이었습니다.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았지만 발행 버튼을 누른 것. 그게 3년간의 약점을 기회로 전환한 순간이었어요.


ST 전략 (강점 × 위협) — "강점으로 위협을 버틴다"

글쓰기 능력 + 복귀 후 시간 부족.

→ 지금 콘텐츠 자산을 최대한 쌓아둔다.

복귀하면 이런 시간이 없을 거예요.

그래서 지금 쓸 수 있는 만큼 쓰는 것.

콘텐츠는 쌓이면 자산이 됩니다. 시간이 없어져도, 쌓아놓은 건 남으니까요.


WT 전략 (약점 × 위협) — "여기는 피해야 한다"

완벽주의 + 나이 압박 + 비교 성향.

→ 완벽하지 않아도 내보내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5장의 ②번 사분면 — 비교 대상이 되는 사람 — 과의 거리를 의식적으로 둔다.

WT는 "공격" 전략이 아니에요. "방어" 전략입니다.

기업 전략에서도 WT 영역은 "진입하지 않는다"가 답인 경우가 많아요.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조합에서는 싸우지 않는 게 전략이에요.

완벽주의와 비교 성향이 만나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방법은 "기준을 낮추는 것"이에요.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완벽이 아니라 완료를 목표로.



약점을 고치는 것이 항상 정답은 아니다

Cross SWOT을 다 적고 나서, 하나가 보였어요.

네 가지 전략 중 세 개가 강점을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SO, ST는 강점을 직접 쓰는 것이고,

WO도 결국 약점을 보완해서 강점이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였어요.

약점을 직접 고치는 전략은 WT뿐이었고,

그것도 "고치는" 게 아니라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좋은 전략은 약점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강점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요.

그동안 저는 약점에 투자하고 있었어요.

끝까지 가지 못하는 걸 고치려고 의지력에 의존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고 무리하게 모임에 나가고,

매니저 역할에 적응하려고 리더십 책을 읽고.

전부 W를 줄이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S를 키웠으면 어땠을까.

대신, 구조화 능력을 극대화하고(SO),

그걸 지금 할 수 있는 시간에 최대한 쏟고(ST),

실증이 올 때 알아차리고 "끝내고 나서"를 되뇌는 것(WT).

이게 나에게 맞는 전략이었습니다.



SWOT은 진단이 아니라 설계 도구입니다.

네 칸을 채우는 건 현재의 나를 정리하는 것이에요.

Cross SWOT까지 가는 건 앞으로의 나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강점과 약점을 아는 건 시작이에요.

그걸로 뭘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게 전략입니다.

Part 2가 여기서 끝납니다.

돌아보면 이런 여정이었어요.

나를 관찰하고(Part 1),

나와 세상의 관계를 읽고(Part 2),

그 모든 것을 한 장에 올려서 전략까지 짜봤습니다.

데이터가 있으니 전략이 나왔고, 전략이 있으니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방향이 보인다고 갈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가려면 선택해야 해요.

그리고 선택 앞에서 우리는 또 멈춥니다. "진짜 이게 맞아?" "다른 길은 없어?" "실패하면 어떡해?"

Part 3에서는 이 선택의 순간으로 들어갑니다.

의사결정에도 기술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술의 핵심은 "좋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기준을 세우는 것"이에요.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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