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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Apr 09. 2020

사는 건 다 비슷한가봐.

인생이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일까

아침부터 친한 친구로부터 거의 1년 만에 연락이 왔다. 반가움으로 바로 화답했고, 생각보다 긴 시간 동안 아침에 진지한 이야기를 카톡으로 하게 됐다. 얼마 전부터 친했던 사람들에게 안부 연락 한 번 하지 않는 내가 좀 답답해 보였다. 항상 그렇듯 사람들은 자신이 자랑할 만한 거창이 일이 있지 않고서는 일상에 파묻혀 근황을 묻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상황이 이전보다 안 좋아졌거나, 마음이 힘이 들 때는 더욱 대인 관계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싫어서 회피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오랜만에 연락하더라도 스스럼없이 대하는 우리 관계에서, 이 친구 녀석은 다짜고짜 본론으로 들어갔다. 힘든 시기를 겪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친구의 프사 히스토리를 보며, 아 지난 시간 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싶었다. 가정에 여러 변화가 있었던 일에 대해 제대로 축하 한 번 못해준 나 자신이 미웠다. 사실 그 시기엔 나도 바쁘고 정신없었으니 내 주변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핑계일 테지만.


친구는 가족, 회사, 그리고 본인의 여러 상황을 이야기하며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았다. 가슴이 아팠다.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상황이기도 했다. 친구는 남자다. 나는 여자다. 어릴 때는 남녀 사이에 친구가 가능하니 마니 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오죽했으면 남사친, 여사친이라는 말들도 등장하지 않았던가. 결론은 나는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내 친구들의 다수는 남자들이니까. 친구의 고민을 듣고 있자니 정말 오만가지 생각과 함께, 한 편으로는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결혼 전에는 이성 문제에 관심이 많고, 고민이 생긴다. 결혼 후에는 가정과 육아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 그리고 직장에 다니거나 개인 일을 한다면 일의 문제 등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와 스트레스의 종류만 다를 뿐, 우리는 모두 고민거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건 비슷한 것 같다. 친구의 상황과 고민을 들었을 때, 5년 전 바닥을 쳤던 나의 인생과 빠져나오려 발버둥 쳤던 과거가 생각났다. 현재도 늘 같은 문제에 시달리지만,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약해지게 만들 수 있을 뿐, 익숙해지고 조심하며 그렇게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나의 삶이 투영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대해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을 나는 이 친구에게 들려주었다.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그렇고 세상 모든 이들이 그런 고충 속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감대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가 더 이상 작아지지 않길 바라며, 대학 시절 때 봤던 그 당당했던 모습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같은 여자끼리 만나면 할 수 있는 대화와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있긴 하지만, 반대로 남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여러 고충을 듣게 되니 내 생각의 시야가 좀 더 확장되는 기분도 들었다. 남녀 성대결로 모든 걸 나누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살다 보면 자연스레 알 수 있는 영역과 알기 어려운 영역들이 있는데, 남자 혹은 여자로서, 아내 혹은 남편으로서, 누군가의 아들 또는 딸로서, 직장에서 상사 혹은 부하로서,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빠로서 등 서로 다른 입장이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양한 관점을 갖게 도와주는 것 같다. 친구의 생각과 고민은 내 입장에서는 남편을 이해하는 것,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 오빠를 이해하는 것, 남사친을 이해하는 것에 모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내가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것뿐. 그리고 내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라도 위로를 전하는 것. 그럴듯한 좋은 말도, 좋은 책도, 좋은 충고도 해줄 수 없었다. 섣불리 이래라저래라 하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왜 그랬냐고 책망하는 것 역시 다시 낭떠러지로 미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냥 내가 찾은 나만의 해법을 알려주며 괜찮으면 너도 한 번 시도해보라고만 했을 뿐. 


결국은 모든 문제는 '관계'에 있는 것 같다. 가족과 나의 관계, 직장 내 동료와 나의 관계, 내가 알지 못했던 숨겨진 나 자신과의 관계 등... 친구의 구체적인 문제의 심각성보다는, 친구 자신의 자존감이 무너지고 있는 듯 보여서 무척이나 걱정이 되었다. 나에게 아침에 한 한풀이를 통해 친구가 어제보단 오늘 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걱정되는 마음과 한편으로 연락을 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끄적여본다. 




문득 떠오른 문구가 있었지만, 친구에게 전달하진 못했다. 혜민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 나오는 말 중, '세상이 바쁜 것이 아니고 내 마음이 바쁜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내 나는 나 스스로에게 사랑한다고 되뇌었다.

'친구는 위로해주면서

나 자신에게는 왜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지.

내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사랑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라는 혜민스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나에게 말해본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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