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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Aug 13. 2020

위, 구석구석 탐험하다

불시에 찾아온 비수면 위내시경 일기

두어 달 전쯤부터 몸이 이상했다. 밥을 먹고 배가 엄청 부른데, 배고픔을 느꼈다. 그래서 또 먹었다. 점점 살이 쪘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루 종일 배가 고픈 것 같기도 하고, 속이 쓰린 것 같기도 한 증상이 유지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속이 쓰려 못 일어나겠고, 밤에 자려고 누우면 속이 쓰려 잠이 안 왔다. 참다 참다 병원에 갔다.


"위염인 것 같네요."

의사의 말을 듣고, 알약과 물약을 처방받았다. 위산 억제제가 주를 이루었다.


1주일을 먹었다. 먹으면 나아질 줄 알고 기대했는데, 증상이 그대로였다. 속 쓰림, 명치 쪽 압박감과 누르면 여전한 통증. 정상이라면 배의 어느 부위를 눌러도 아프지 않은 게 정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명치 쪽 복부를 살짝만 압박을 가해도 나는 고통스러웠다. 1주일 더 약을 먹었다.


음식은 자극적인 것을 먹지 말고, 카페인 금지, 술도 금지. 1주일은 어떻게 참았는데, 매일 먹던 커피를 못 마시니 죽을 맛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가볍게 한 잔 마시던 와인을 못 먹으니 답답했다. 매운 걸 좋아하기보다 잘 먹는 편인데, 음식을 가려 먹으니 온통 심심했다. 2주가 지나도 여전했다. 3주차엔 약을 좀 더 강하게 지어줬다. 물약의 양이 늘어났고, 아침에 먹어야 할 약 하나가 늘어났다.


그렇게 3주를 채워가던 어느 날,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다 갑자기 몸 안쪽에서부터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또 시작이었다. 심장, 가슴, 복부부터 시작되는 근육 수축의 느낌. 온 몸통 전체를 조여 오고 있었고, 숨은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불안에 휩싸였다.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나타나는 호흡곤란. 숨을 크게 쉬어도 아무 소용없는 이 순간. 위염약을 3주간 먹어온 터라 불안은 더욱 커져갔다. 왜 갑자기?


평일 대낮. 응급실에 갈 것인가, 일반 내과로 갈 것인가. 몸은 위급하다고 알려오고 있었다. 저림 증상은 사지로 퍼져 나갔다. 손과 발의 근육이 수축된 느낌, 온몸이 저린 느낌. 피가 안 통하는 느낌. 하지만 느낌뿐 피는 잘 통하고 있었으리라. 동네 내과는 진료의 한계가 있다. 큰 병원 내과로 가면? 대기 시간이 길어서 진료 자체가 지연된다. 응급실로 가면? 바로 봐줄 가능성은 조금 올라가겠지만, 진료비가 5~6배는 더 나온다. 어쩌지? 머리가 하얘지고 있었다. 119를 부르는 게 빠를까? 택시를 잡는 게 빠를까? 콜택시를 부를까? 손은 떨렸지만, 핸드폰으로 얼른 검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지체되었다. 경험상 응급실에 간들 당장 치료할 수 있을 건 없으리라. 2년간 이상 증세가 나와도 검사하면 항상 정상이라 하지 않았던가. 동네 내과로 걸어갔다. 힘들게 뚜벅뚜벅. 도착하니 오히려 증상이 나아지고 있었다. 저림 증상이 풀리고 있었다. 의사는 복통이 여전한 걸 봐서는 위내시경을 권했다. 그리고 호흡 문제는 '과호흡'일 수 있다는 것. 과호흡이 되면 몸 안이 알칼리화 되므로, 심호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호흡을 멈추라는 것. 혈압 정상, 맥박수는 약간 빨라도 정상 범위. 응급실에 갔어도 해줄 게 없었을 거라는 소견을 받았다. 그리고 과호흡이 아니라면, 교통사고 이후 갖게 된 '공황장애' 증상일 수 있으니 나중에 상급병원에 가보라는 말과 함께. 일단 다행이다. 동네 내과를 택한 결과가.





3주 치의 약을 지어준 기존 내과로 가서 위내시경을 받기로 했다. 수면으로 하면 5만 원 추가라는 말에 비수면을 택했다. 한 6~7년 만에 비수면 위내시경을 다시 하게 되었다. 두렵긴 했지만, 한 번 해봤으니 할 수 있을 거라 큰 걱정 안 했다.


몸 안에 있는 가스를 내보내기 위해 어떤 약을 하나 먹었고, 목 부위 부분 마취를 위해 마취약을 입에 물고 있다가 뱉었다. 이상했다. 목이 마취되는 느낌이 아니라 입이 마취된 것 같았으니까. 드디어 왼쪽으로 누워서 위내시경 시작. 생각보다 굵은 호스가 눈앞에 보였다.


'저걸 내 목구멍에 넣는다고?????'

호스가 들어가기 쉽도록 입모양으로 만들어진 플라스틱이 내 벌어진 입에 물려 있어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의사는 미리 알려줬다. 두 번의 고비가 찾아올 거라고. 목을 넘어갈 때 한 번, 십이지장으로 넘어갈 때 한 번.


"꿀꺽 삼켜보세요~!!!!"

의사가 여러 번 외쳤지만, 나는 내시경의 굵은 호스를 입에서 목으로 넘기지 못했다.

"우에엑~~ 꺽, 꺽... 웩... 헉...."

나는 헛구역질만 반복했다.


'아니 안 삼켜지는 걸, 어떻게 삼키라는 거야!!!'

나는 열심히 소리쳤다. 속으로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생각했다.

'아, 도저히 못하겠다. 망했어. 이번 위내시경은 틀렸어. 오늘은 절대 못해. 난 못해. 아, 집에 가야겠다. 못해. 와 진짜 눈물 나. 못하겠다. 켁켁, 힘들어. 흑흑.'


"자, 다시 한번 갑니다. 목 넘어갈 때, 힘들어요. 침 삼키듯이, 꿀꺽 삼키세요! 꿀꺼~~억!"

의사는 내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하니, 나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며 내게 외치고 있었다. 난 집에 가고 싶다니까 왜 또 한다는 거야. 의사의 압박에 못 이겨 강제로 들어온 내시경 줄에 삼키기는커녕 목에 최대한 힘을 풀고 어떻게든 벌려보려 애썼다. 그러다, 이제 됐다며 들어갔다는 의사의 말이 들렸다. 와, 어쩌다 넘어갔네 라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바로 목에 힘이 들어갔다. 목 전체에 힘이 실려 그 긴 호스 전체를 꽉 잡아버린 듯했다. 목 안쪽은 아마 다 쓸렸으리라.

"웨~~~엑, 헉헉...우억... 꺽..꺽...."

목구멍에서는 평소 들을 수 없었던 구토할 때나 나올 법한 괴상한 소리가 나왔다. 숨도 잘 안 쉬어졌다. 힘을 빼라는 간호사의 말이 들렸다. 어떻게 힘을 주고 빼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해봤다. 그렇게 다시 카메라는 내 위에 도달해 있었다.


짧으면 5분, 길면 조직 검사 시간까지 더 걸릴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5분이 5분으로 느껴지지 않을 거라는 의사의 말 또한 머리에 깊이 박혀있었다. 나도 안다. 한 번 해봤으니까. 한 6년 전쯤에. 5분이 5시간처럼 느껴질 텐데 어떡하지?


시작하기 전에 간호사에게 카메라로 내 위를 볼 수 있는지, 그런 화면이 어딨는지 물었었다. 간호사는 모니터 화면을 가리키며 저기서 실시간 볼 수 있지만, 나중에 다 끝나고 의사 선생님이 보여주며 설명해줄 거라고 걱정 말라했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순간이 실시간으로 궁금했던 나는 저걸 봐야겠다 생각했었다.


카메라가 내 위를 휘젓는 그 시각, 나는 내 위 안쪽이 궁금했다. 그래서 최대한 흘겨서 째려보면 보이는 저 화면을 향해 눈을 돌렸고, 레이저를 쏘아댔다.


'아, 내 위가 저렇게 생겼군. 동굴 같네. 좁아졌다 넓어졌다. 아, 근데 저긴 어디지? 궁금한데...'

나는 뚫어져라 화면을 응시했고, 집중 또 집중했다.

"굳이 안 보셔도 돼요. 나중에 선생님이 설명해 주실 거예요."

아까 그 간호사가 다시 말해줬다. 하지만, 내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5분을, 5시간처럼 느끼는 그 5분을 버티기 위해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배가 아닌 눈에 보이는 어떤 것에 집중함으로써 내 고통을, 내 구역질을, 내 뱃속의 이상한 꿈틀거림을 잊어야 했다. 그리고 그 화면에 집중하는 일은 시간을 빨리 날려 보내기에 아주 최적의 선택이었다. 옆에서 뭐라 하거나 말거나 나는 화면에 몰두했다.


'저긴 뭐길래 저렇게 좁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의사가 갑자기 한 번 더 아플 거란다.

"윽....."

십이지장으로 잠깐 넘어가는 순간이었나 보다. 한 번 더 나는 우웩을 여러 번 외치며 헛구역질을 해댔다. 의사가 말한 두 번째 고비인 듯싶었다.


"찰칵! 찰칵! 찰칵!"

십이지장에서부터 역으로 나오면서 촬영이 시작된 것 같았다. 계속 찍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나는 더 화면을 보면서 뭘 찍는지 집중했다. 저걸 왜 찍는지 알 수 없지만, 찍는 화면을 보면서 나는 온갖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시간은 빨리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멈추었다.

'뭐지? 왜... 더... 안 빼지? 왜 사진을 안 찍지?.... 뭐지?..... 혹시... 설마, 조직검사?'

시간이 멈춘 듯했다. 간호사가 옆에서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무언가를 뜯고 있었다. 더 얇은 호스처럼 생겼다. 마음이 급했는지 잘 안 꺼내지는 걸 옆에서 보고 있었다.

'아... 빨리 좀... 제발... 으... '

그 새로 꺼낸 작은 줄을 내 몸 안에 들어간 호스 안으로 넣은 것 같았다. 의사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집어 넣었다. 아주 얇은 무언가가 들어가는 걸 보았고, 그 끝에는 뾰족한 무언가가 달려있는 모양이었다. 멈춘 그 위치에서 내 위의 아주 작은 일부를 살짝 떼어내는 듯 보였다. 피가 보였다. 다시 그 줄을 꺼냈고, 물처럼 액채로 보이는 세척제 같은 걸 집어넣는 게 보였다. 몸속에 타고 내려가는 게 느껴지더니 조직을 떼어낸 부분의 피가 흩날려 떠내려가는 게 보였다.

'아, 이제 진짜 끝이겠지.'

의사는 빠른 속도로 역으로 올라오면서 나머지 부위를 사진을 찍고, 그렇게 위내시경을 끝냈다.


"와, 생각보다 정말 잘하셨어요~!"

끝나고, 간호사가 말해줬다. 빈 말이었을 것이다. 환자에게 으레 하는 말일 것이다. 그래도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정말 좋았다. 왜냐하면, 난 정말 처음 실패하자마자 집에 갈 생각이었으니까. 정말 포기하려고 했으니까 말이다. 의사가 강제로 계속 집어넣겠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난 안 하겠다고 의사표현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끝까지 해냈다. 다행이었다. 아무리 빈 말이어도, 나에겐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눈물, 콧물, 침 다 흘리는 게 맞다. 그런데 나는 6년 전에는 나왔던 콧물이 나오지 않았다. 비강 어딘가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었다. 그래서 첫 시도에 실패했을 때, 가망이 없다고 느낀 것일지도 모른다. 숨을 쉬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나는 온전히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했다.


끝나고 의사를 다시 만나 촬영한 결과를 같이 보며 설명을 들었다. 십이지장에 있는 혹을 보여줬다. 양성으로 보이지 않아 조직검사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위로 넘어와서, 벌건 부위를 보여줬다. 염증이라고. 그리고 조직 검사를 하기 위해 떼어낸 부위를 보여줬다. 너무 평평하다는 것. 내가 너무 의아해하자, 다른 사람들의 정상적인 케이스를 보여주며, 이렇게 주름이 많은 게 정상적인 위의 형태라고 알려줬다. 그걸 보고 내 것을 보니, 놀라웠다.

'잉? 내 껀 왜 이렇게 평평하지???????'

그게 이상해서 검사를 해보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목이 여전히 아팠다. 아무래도 목은 전혀 마취가 안 된 것 같았다. 입만 마취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의사와 대화를 나누는데, 글자가 안보였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신을 차려보려고 애썼다. 눈을 감았다 떴다. 근데 글자가 흐릿해 보였고, 어지러웠다. 몸 안에 있는 가스를 빼기 위해 먹은 그 약 성분 때문에 나오는 부작용일 수 있다고 했다.





일주일 뒤에 검사 결과가 나왔고,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다. 특별히 추가로 검출된 균도 없고, 염증 소견 이외에 특이한 점이 없었기에 기존에 받은 약을 더 먹는 것 이외에는 추가 처방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약을 5주간 먹었지만, 나는 완치가 되지 않았다. 물론 속 쓰림은 나아졌다. 하지만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다시 재발한다. 명치 부근도 처음에 비해 좋아졌지만, 통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불시에 찾아온 비수면 위내시경은 막을 내렸다. 시작 전부터 큰 병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진 않았다. 늘 그랬듯, 항상 검사하면 멀쩡하다는 결과를 맞이해야 했으니까. 꾀병 전문가가 된 기분이다. 항상 몸은 아픈데, 검사하면 과학적인 데이터로는 '정상'소견이니까. 그래도 검사를 하고 나니 후련하다. 아마 위내시경을 하지 않고 5주 내내 약만 먹었더라면, 내 뱃속이 어떤지 모르면서 괜찮을 거라고 최면만 걸어야 했을 것이다. 추측으로 진단하느니, 돈 좀 들이고 고생하더라도 내 눈으로 위를 직접 본 게 나았다. 비록 원인이 되는 확실한 무언가를 잡아낸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큰 문제는 없다는 걸 알고 나니 좀 후련했다. 조금이라도 아는 것이, 아예 모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나는 오늘도 추측해본다. 교통사고 이후 후유증으로 몸 안에 있는 모든 근육이 이제는 수축 상태를 디폴트 값으로 인지해버린 것 같다고. 명치 부근 통증은 위 염증도 염증이지만, 아마도 근육 수축이 통증 원인 중 절반 정도의 지분은 차지했을 거라 치부해 버렸다. 어느 누가 알겠는가. 의사도, 그 어느 누구도 모르는 것을. 이젠 과호흡 증상이 오면 익숙하게 기다린다. 그저 지나갈 것이라고.


그리고 이젠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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