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fe Designeer Jun 15. 2020

앞만 보고 달려가는 당신에게

뒤를 돌아보며 나를 마주하다

"한국인들은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거 같아..."

재작년, 대학원에서 만난 동기들 중 생각이 통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나보다 어리지만 나와는 다른 세계의 경험을 가진 눈으로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친구였다. 한국에서 살아온 시간보다 필리핀과 미국에서 살아온 시간이 훨씬 긴 친구였다. 대학원 생활, 과제, 디자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 친구가 한 말이다.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때로는 뒤도 돌아보고 천천히 가도 될 텐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친구의 말에 공감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많은 시간 외국에서 주로 살아온 이 친구의 눈에는 왜 그토록 한국인들이 앞만 보고 살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난 단 몇 마디로 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없었기에 그저 웃으면서 "그래, 그러게 말이야."라고 일단은 공감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한마디를 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는 꽤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너도 한국인이야.. 한국에서 살지 않은... 나도 현대사를 청산유수로 설명해줄 순 없지만, 지난 몇십 년간 이렇게 빨리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면서 생길 수밖에 없었던 하나의 부작용이기도 해... 우리 모두가 원치 않았지만,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었을 피해자이기도 하지... 나도 앞만 보고 살고 싶진 않지만, 앞만 보고 살 수밖에 없기도 해. 나도 너처럼 부유하게 자랐다면 가끔은 뒤도 돌아보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동기의 말에 분명 공감이 되었지만, 동시에 지금 이 순간을 고군분투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한국인들 중 하나로서 그 이유를 대변하고 싶기도 했다. 앞만 보며 달려가는 것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럴 수밖에 없기에 그러는 것이라고... 그것이 합리화로 비춰질지라도 말이다. 




얼마 전 우연한 계기로 다음 사이트의 계정으로 오랜만에 로그인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몇 년 만인지 기억나질 않는다. 비밀번호 역시 새로 만든 후에야 접속할 수 있었다. 네이버 계정을 쓰게 되면서 다음 계정은 버려둔 지 오래였는데, 이 기회에 계정 삭제를 하면서 폐기 처분할 수도 있었지만 혹시 몰라 계정 속 메일을 살펴보았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내 과거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00년도부터 남겨진 내 생각의 흔적.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생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심지어 그 당시 유행했던 하두리 캠사진까지. 10대의 내 모습이 눈에 선했다. 마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 있는 듯했다. 어린 내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함께 찍은 친구들의 모습도 전혀 변함없는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았다. 


여러 통의 메일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내가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의 이름이었다. 지금은 기억이 희미하지만, 대략 중학교 1학년 때 다녔던 학원에서 만난 국어 선생님이다. 그땐 어려서 잘 몰랐는데, 어른도 사람인지라 완벽한 성품을 지니기 어렵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 따뜻한 선생님, 돈만 밝히는 선생님, 의무적으로 할 일만 하는 선생님 등 다양한 교사와 강사를 만났지만, 내 기억 속에 나의 생각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람은 다름 아닌 그 국어 선생님이었다. 나는 수학을 잘하는 편이었고, 국어 과목은 잘 못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매료시킨 건 수학선생님이 아닌 국어 선생님이었다.


어렴풋이 기억하기론, 아마도 그 2000년도 초중반 즈음에 그 국어 선생님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주고받은 이메일의 수가 많지는 않지만, 2001년, 2004년에서 2005년 몇 통 남아있다. 심지어 2001년도에 내가 발송했던 그 선생님의 메일 주소는 천리안이다. 세월의 흔적을 발견하니 새삼 놀랍다. 대략 15년에서 20년 전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기분은 꽤 묘했다. 그리고 그때의 어린 나에게 인생에 필요한 말들을 해주었던, 지금 내 또래의 그 선생님의 입장은 어떠했을지 상상해본다. 나라면 10대의 제자에게 혹은 인생 후배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구나.  고2로구나.
 난 중3 끝나고 났을 때 다 살은 거 같은 느낌이 들었더랬었다 ^^
 길지 않은 세상을 살았는데 마치 다 살아버린 느낌이 들었랬지 후훗
 근데 그건 내 느낌이었구. 내가 어떤 것을 느낀 것이었구. 있는 그대로의 세상은 무한하게 새록새록하더구나. 사람들이 30이 되구 40이 되구....70이 되구...80이 되어두 새록새록한 게 삶인 거같아. 

 지금 네가 서 있는 곳에서 네가 느끼는 느낌들이 이렇구나~
 입시공부는 숨막히게 돌아가는 시간들이긴 하겠지만 어차피 지나올 길이라면 너답게 너로서 느껴가면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겹다고, 숨막힌다고 하지만 OO이는 어떻게 보내고 싶으니?
 너의 바람이 무엇인지 느껴보고 그 바람을 살아내면 어떨까? 그리고 나서의 결과는 결과대로 기꺼워하구말이야. 

 웃음을 잃어버렸다는 게 쓸쓸하구나.
 웃음을 잃을 때도 있지. 한데 웃어도 좋지. 수능공부하고 입시공부하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뭔가 바쁘고 힘들고 해야한다는 거 통념인 거같구. 난 그리생각하지 않아.
 샘은 여기서 학생들 가르치면서 목표하고 있는게 쉽고 재밌게 하자는 거란다.
 난 힘들게 했어. 한데 힘들게 하지 않아도 되었겠다는 깨달음이 있었거든.
 힘들게 하건 재밌게 하건...혹은 어떠하게 하건 맘먹은 걸 하는 건데 난 어떻게 하고 싶은가 를 보았더니...난 쉽고 가뿐하게 잘 하고 싶더구나. 그리고 그런 내 마음을 내가 품고 있으면 그리 하루하루를 살더구나. 물론 마음을 그리 먹어도 배우러 오는 학생들이나 배움의 장이라 는 곳의 분위기가, 느낌이, 그들의 실감이 그렇지 않아서 또 나도 그런 시간을 보냈었어서 내 마음을 다시금 보고 그 마음을 살리곤하는데 이게 재미인거 같아. 

 남들이 하는대로 하는 거니까 그리하는 거말고, OO이 자신이 진심으로 살떨리게 바라는 거 그렇게 공부 하면서 보내도 고3은 잘 간단다.
 죄스러운 마음 내려놓으면 어떨까?
 음~
 우리 아빠가 아프셔서 응급차 타고 병원간 적이 있단다. 상황은 분명 걱정스러워해야 하는데 샘은 하나두 걱정이 안되는 거야. 그리구 119타고 가는게 재밌기두 하구 무척 냉철해지기두 하더구나.  순간 '내가 이러면 안되는데...이거 뭐지...'싶기두 했다. 그래서 걱정스러워하려구 해봤던 거같다. 근데 여전히 걱정이 안됐다. 지나고 보니까 걱정하지 않아두 되는 상황이었어. 물론 지나서 알았다. 아빠는 수술 잘 받으셨구 가족들도 함께 그 시간을 잘 보냈단다.
 문득 이 순간이 생각났단다. 걱정이 안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걱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다면 난 걱정을 하기 시작했을 거구. 첨에는 걱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시작했겠지만 나중에는 진짜 걱정하고 있었겠지....그랬다면.그 시간이 힘들었을 거같다.
 자기 느낌에 충실하면 되는 거같아. 고등학교 생활이 왜 숨막히니? 너의 경우는 말이야?
 스스로 숨막힌다고 느껴지는게 어떤 건지 잘 느껴보고 생각해보고 대책을 세워보고 숨 쉬어가면서 하려므나. 공부하는 거...건너 뛰고 무시할 건 그리할 필요도 있단다. 그리구 수능은 연구하는 게 아니구 테크닉이나 노하우가 있으니까 수능 잘 보는게 목적이면 좀 쉽게 하려므나. 생각따라서 고등학교 공부는 중학교 공부보다도 쉬울 수있단다.
 아무도 네 인생을 살아주진 않아. 네 자신에게 솔직해보렴. 

 내 머린 지금 허리가까이 내려오고 굽슬한 웨이브가 있단다. 맘에 들어. ^^
 조만간 아주 짧게 자를까도 생각하고 있다. 요즘 샘은 자꾸 비우고 가벼워지고 싶은가보다.
 난 그때보다는 좀더 편안해지고 여유로웁게 느끼고 있단다.
 내겐 수재학원에 다닐 때가 참 힘든 시기였단다. 학원생활이 힘든건 아니었구. 

 잘못 된 건 없단다, 잘못될 것도 없구, 세상에는 말야. 어떤 것을 함이 있는 거구. 그것을 하면 이정도고  또 저것을 하면 저정도고....한 것이 있지요.
 나두 네가 반갑구나.
 난 학생들이 나보다 덜 살기는 했지만 친구처럼 느껴진단다.
 친구에게 편지쓴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하렴. 나는 그럴련다. ^^
 안녕.


내가 발송한 메일은 남아있지 않지만, 정황상 아버지 사업이 망한 뒤 꽤 많이 마음이 힘들었을 당시에 의지할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국어샘과 헤어진 지 거의 3년 만에 메일을 보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답장을 바라지도 않고, 그저 어딘가에 푸념할 곳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그때 그 선생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던 것일까.


나보다 인생 경험이 많은 인생선배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그런 듯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정작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아이.

좀 더 당당할 필요가 있는 아이.

자기 합리화가 많이, 꽤 많이 필요한 아이.

강하지만 스스로 강하다는 것을 모르는 아이.

다른 사람과 교류를 원하는 아이.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아이.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난 이런 아이였던 듯싶다. 2000년에 그 선생님은 책의 중요성을 이미 나에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내가 책을 진정으로 가까이 하게 된 것이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뒤였다. 좀더 일찍 책을 가까이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늘 남아있다.


찬찬히, 주고받은 메일을 살펴보았다. 남겨진 건 내가 발송한 메일보다는 받은 메일의 수가 조금 더 많았다. 자연스레 그 당시 선생님의 입장에 대입해보게 되었다. 당시에는 내 삶이 가장 고달프고 힘들기만 한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으로서, 선생님의 입장을 이해하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었을까. 지금에서야 보인다. 그 선생님 역시 다른 삶을 꿈꾸는 하나의 멋진 인격체이자 도전하는 삶을 사는 개척자였다는 사실이. 사진 공부를 하시고, 나중엔 유학 준비를 하셨다는 그 선생님은, 지금쯤 40대 후반 정도 되어 있지 않을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인생의 좌우명을 '최선을 다한 뒤에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뜻의 "진인사대천명"으로 삼고 꽤 오랜 시간을 살아왔었다. 그리고 인생의 진리로 바쁜 와중에 한가함을 뜻하는 "인생은 망중한"이라는 말도 자주 썼었다. 이게 모두 중학교 때 만난 국어 선생님의 인생 모토와 관점이 나에게 투영되었다는 걸 이제야 새삼 깨달았다...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한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 의미 있었던 과거의 그 순간과 소중했던 사람을 떠올리는 지금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한 걸음 나아가게 해주는 힘이 되는 것 같다. 그 선생님의 말씀처럼 20년 전에 하던 그때의 내 고민은 나이가 들어도 계속 끝나지 않을 고민이라는 말, 맞는 모양이다. 

지금 나는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그리고 나는 앞으로 어떤 유형의 사람이 되고 싶은가.

때로는 과거의 나와 마주할 필요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