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마음을 담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기도 하고, 톡 내용을 읽기도 하며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러다 잘 알지 못하는 이름으로 톡이 왔다는 알림이 왔다.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메세지는 2년 전에 만났던 학과 후배라고 자신을 밝혔다.
한 달 전쯤이었을까. 2년 전에 만났다고 소개한 또 다른 후배에게서 연락이 온 적이 있었다. 대기업에 지원하기 위해 쓰는 자소서를 검토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그때 한 1분 생각했다.
'내가 자소서 피드백을 해줄 수 있을까?'
'나 대기업 자소서 쓴 지 10년 넘었는데...'
'내가 일했던 분야가 아닌데 조언해 줄 수 있을까?'
'요즘 인사 트렌드를 알아야 하는데...'
그리고... 다시 다른 생각도 떠올랐다.
'근데 실무 경험이나 사회 경험을 토대로 좋은 신입의 모습을 전달해줄 수는 있지 않을까?'
'이직과 세미나를 통해 인사과에서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어깨너머로 알게 된 것들도 있잖아...'
'신입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를 덜 하게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동안 크고 작은 기업에 자소서 쓰고, 면접 보면서 그 차이점들도 발견한 것들이 좀 있잖아...'
나는 바로 오케이 했다.
남편에게 과 후배 자소서를 피드백해주기로 해서 시간이 필요하니 저녁에 잠깐 혼자 아이를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몇 학번이라고?? 자소서를?? 할 수 있겠어??"
남편도 아마 맥락적으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졸업한 지도 오래되었고, 대기업 자소서를 이제 와서 피드백해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해주고 싶었다. 내 경험과 노하우가 누군가에게 지름길이 될 수 있고,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나를 흥분시켰다.
그날 초집중 모드로 최대한 할 수 있는 말들을 문서에 담아냈다. 후배의 상황과 성격, 장단점, 지원 회사 및 직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말들을 적었다. 100%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모르는 피드백과 조언이지만, 분명 어느 한 부분은 작게라도 도움이 될 거라 믿었고 그렇게 진심을 전했다.
얼마 후 후배는 정말 감사하다는 메세지와 꼭 감사의 표시를 하겠다며 톡을 통해 과일 선물을 보내왔다.
'앗! 나는 대가를 받으려고 한 건 아닌데...'
'내 피드백이 도움이 되었나 보다! 거절하면 마음이 불편할 수 있으니 그냥 받아야지.'
고마움을 전하며 선물을 수락하면서 배송지까지 입력 완료했다.
황금 같은 주말 저녁이었고, 육아를 함께 하는 남편에게 30분만 봐달라고 했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난 뒤여서 미안한 마음에 남편에게 '나 과일 선물 받았어.'라고 말했다.
"후배한테 그런 걸 받으면 어떡해? 그것도 한참 어릴 텐데..."
'아차!!!!!! 나보다 열 살은 어리겠구나......'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어쩌지? 난 너무 뿌듯하기도 하고 기쁜 마음에 그냥 넙쭉 고맙다고 하고 받았는데? 근데 이거 선물 거절도 되는 거야?"
"배송지 입력 안 하면 아마 일정 기간 후에 취소되지 않아?"
남편도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난 이미 배송지 입력까지 마친 상태.... 그냥 후배가 그걸 토대로 그 회사든 다른 곳이든 원하는 곳에 입사해서 좋은 소식을 들려주기만을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한 마음의 표시를 내가 받기 미안하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것도 도리가 아닐 테니 말이다.
오늘 온 연락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여성공학도 선배와의 멘토링 주제였다. 이력을 찾아보니 2년 전이 아니라 작년에 했었다. 2019년, 2017년, 2015년도에 참여했던 걸로 기억한다. 졸업을 한지도 10년이다. 이제 막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한창 공부하는 재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 경험을 토대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취업을 목적하는 하는 후배들에게 나는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시대는 계속 빠르게 변한다. 나 역시 10년간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 공부하는 대학생들에게 피부에 와 닿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그동안 벌려놓은 일들도 많고, 앞으로 시도해야 할 일들도 많았다. 나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거절의 의사를 보냈다. 실제로 해야 할 일들 때문에 시간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어쩌면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 전하고 싶은 말이, 이전의 경험과 소중한 생각들이, 이제는 자칫 꼰대의 언어로 바뀌어 버릴까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더 정확히는 지금의 내가 내 의견을 말하기에 부족한 위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 더 당당해지는 순간이 오면 그때 다시 해야지'라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졸업한 지가 좀 되었는데도, 이런 연락이 오는 것에 정말 감사함을 느낀다. 나의 이야기가 아직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일 테니까. 반대로 말하면 연락을 취할 같은 학과 여자 선배의 풀이 너무 적다는 뜻일 수도 있다. 참여하고 싶지만 너무 바빠서, 아니면 굳이 후배들을 만날 이유가 없어서 등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모쪼록 후배가 꼭 멘토링해 줄 좋은 선배를 찾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