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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Nov 25. 2019

'불안'을 선택할 '용기'

독서노트 #4 < 미움받을 용기 >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 것이냐,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 것이냐.


<미움받을 용기> 책에서 나오는 아들러의 심리학 관점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변할 수 있다고 한다. 생활양식을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변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선택할지, 변하지 않아서 따르는 '불만'을 선택할지 말이다. 그래서 아들러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이라고도 한다.



인간은 과거의 원인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원인론이 아닌 목적론을 바탕으로 한다.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개념은 정통적인 심리학의 인과 법칙을 근본부터 뒤집는 개념이기 때문에 처음에 읽을 때는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해야만 했다.



아들러가 했던 말을 인용해보지.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
자네가 Y나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이 주어졌는가'에만 주목하기 때문일세.
그러지 말고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주목하게나.

  나는 흙수저다. 금수저도 은수저도 아닌, 어릴 때는 개천에서 용이 날까 말까를 언급했던 그냥 보통의 흙수저. 어릴 때는 내게 주어진 환경 즉, 때로는 아무것도 모른 체 많이 누리기도 했고, 때로는 불우하기도 했던 그 환경에 대해 불평을 했던 적이 없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세상을 알아갈수록, 내가 갖지 못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쉽게 갖지 못할, 그 시작점이 다른 사람들의 것들을 보면 그동안 많지 않았던 부러움과 불만의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주어진 환경은 내가 당장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도 주어진 최소한의 여건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앞으로의 내 인생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는 내 의지에 달린 것은 분명하다.



인간은 모두 인간관계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네. 이를테면 부모님과 형과의 관계일 수도 있고, 직장동료와의 관계일 수도 있지. 그리고 지난번에 자네가 말했지? 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내 제안은 이렇네. 먼저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를 생각하게. 그리고 과제를 분리하게. 어디까지가 내 과제이고, 어디서부터가 타인의 과제인가. 냉정하게 선을 긋는 걸세. 그리고 누구도 내 과제에 개입시키지 말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구체적이고도 대인관계의 고민을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아들러 심리학만의 획기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지.

  모든 문제는 인간관계로 귀결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지구 상에 두 명 이상의 사람이 존재하는 한, 없을 수 없는 인간관계의 문제.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르지만, 인간관계의 문제를 평생 고민하고 해결해가며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도 모르게 자꾸 상대방의 생각에 개입해서 자신의 생각처럼 바꾸려고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내 것이 정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통 나와 생각이 다르면 상대방이 틀렸다는 생각으로 내 것을 주입시키려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시키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인 것이다. '내가 먼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충고가 상대에게는 전혀 의미 없을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가끔은 내가 찾아낸 뜻깊은 무언가를 타인에게 공유할 때 조심스러워지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 받아들이냐 역시 타인의 과제이기에 나는 최선의 선의를 베풀고 그에 따른 타인 생각의 결과가 어떻든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겠지.



유대교 교리 중에 이런 말이 있네.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중 한 사람은 반드시 당신을 비판한다. 당신을 싫어하고, 당신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열 명 중 두 사람은 당신과 서로 모든 것을 받아주는 더없는 벗이 된다. 남은 일곱 명은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다." 이때 나를 싫어하는 한 명에게 주목할 것인가, 아니면 나를 사랑해주는 두 사람에게 집중할 것인가, 혹은 남은 일곱 사람에게 주목할 것인가? 그게 관건이야.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한 명만 보고 '세계'를 판단하지.

  어렸을 때는, 아니 성인이 되어서까지 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타인의 시선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세상 사람들의 대부분은 실제로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10명 중 1명은 나를 싫어하고, 7명은 내게 관심이 없고, 오직 2명만이 나를 지지해준다. 싫어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대신 나를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내 정신적인 행복을 위해 더 중요한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항상 타인과의 비교와 타인의 시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지인들을 자주 본다. 이들도 여덟 명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두 명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은 내 오지랖 일지 모른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다만 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변화를 택함으로써 생기는 '불안'을 감당할 용기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책 제목 : 미움받을 용기

저자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출판사 :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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