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연재]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년 3월호 -인생단상#10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처음으로 ‘감사일기’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던 그 날을 말입니다. 2018년 2월 말쯤이었어요. 당시 근무하던 회사에서의 퇴사를 앞두고 휴가를 다 쓰기 위해 나 홀로 호캉스를 떠났습니다. 그 당시 읽었던 책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에서 하루를 시작할 때 아침에 5분만 투자해서 감사일기를 적으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감사일기라는 것이 거창한 게 아니라 스스로 감사하게 여기는 것을 묻는 질문에 가볍게 한, 두줄로 답변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호텔에서 혼자 나를 알아가기 위해 무심코 적기 시작한 감사일기를 어쩌다 보니 3년이 지난 지금도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노트에 직접 손으로 썼습니다. 3개월이 넘게 손으로 쓰다가 나중에는 귀찮아지더군요. 결국 디지털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남겨진 기록에 의하면 그해 6월부터 시작했습니다. 매일 아침에 행하는 나만의 ‘모닝해빗’을 이때부터 만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구글 설문지에 오늘의 계획과 다짐, 그리고 감사한 일을 묻는 질문을 써놓고, 스스로 답하는 방식으로 기록을 유지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매일 아침 감사한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해는 감사한 일을 기록하면서 기쁜 마음이 절로 생기고, 가끔 미소도 지어지고, 아침을 상쾌하게 시작할 때가 많습니다. 올해는 운세가 좋아 잘 풀리려고 그러는 걸까요? 3년 동안 감사일기를 써 왔는데 왜 갑자기 올해 이렇게 느끼게 된 건지 의아했습니다. 3년 동안 써왔기 때문에 이제서야 감사일기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걸까요?
분석을 하고 바꾼 것은 아니었지만, 올해 감사일기는 과거의 질문 방식과는 아주 살짝 달리 해보았습니다. 그동안의 질문은 ‘내가 감사하게 여기는 것은?’이라는 질문이었는데, ‘오늘 감사한 일은 무엇인가?’로 바꿨습니다. 하루 중 1회 하던 질문을 3회로 늘렸고, 밤 습관에도 추가하여 하루에 총 6회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꾼 질문의 힘이 생각보다 컸던 것 같습니다. 감사일기를 쓰면 좋다는 주장을 하는 책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질문을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책은 많지 않습니다. 과거에 감사하게 여기는 ‘것’을 찾아야 할 때는 보통 가족이나 지인,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가 가장 많았고, 당시 공부나 일을 할 수 있던 기회와 나에게 주어진 혼자만의 시간에 감사할 때가 많았습니다. 아침의 차 한 잔에 감사한 적도 많았는데 이런 몇 가지의 기록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감사의 대상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질문에 ‘오늘’이라는 말이 들어가면서 정말 오늘에 집중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감사‘한’ 일을 찾는 행위는 특정한 대상보다는 그 순간을 느끼고 발견하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최근의 기록을 살펴보면, ‘풍요롭진 않아도 부족하지 않게 하루하루 보내는 것에 감사하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비록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잘못된 습관으로 힘들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매번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인드에 감사하다’, ‘이렇게 추운 한파의 날씨에도 따뜻하게 머물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감정 컨트롤 실패를 통해 내가 좀 더 성숙하게 생각해야 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 것에 감사하다’, ‘갑자기 연락해도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가 있음에 감사하다’ 등 아주 작은 행동 하나하나, 사소한 순간에도 감사함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예전과 달리 몇 가지로 카테고리화 할 수 없다는 게 느껴집니다. 특히 밤에 적는 감사일기는 그날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굉장히 다채롭고 구체적이어서 하나의 덩어리로 묶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입니다.
언제부터 세상에 이렇게도 감사할 일이 많았던 것일까요? 질문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피곤한 하루를 보내도 강제적인 질문의 힘을 빌어서라도 감사한 일을 생각해내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떨쳐 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여섯 번이나 반강제로 답변해야 하는 그 시간이 어쩌면 세상을 다르게 보도록 만들어주는 마법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네요.
본 글은 지역신문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2021년 3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