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연재]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년 5월호 -인생단상#12
전자책이 나오면서 종이책이 곧 사라질 것이라 예측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코 전자책이 종이책의 시장을 완전히 잠식할 수는 없었죠. 글자의 시대에서 동영상의 시대로 바뀐 요즘은 책이 아닌 컨텐츠를 소비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오디오북으로 책을 듣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책을 통해 지혜를 얻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은 무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책을 혼자 읽는 것보다는 타인과 함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때로는 훨씬 큰 가치를 얻을 수 있기에 사람들은 독서모임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같은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모임, 또는 각자 다른 책을 읽고 타인에게 자신이 읽은 책을 소개하는 모임, 더 나아가 논의할 주제를 선정하여 사고의 확장과 깊이 있는 토론을 요구하는 모임 등 다양한 독서모임이 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으로도 활발히 진행되는 시대가 되었지요.
2015년부터 종종 모르는 사람과 독서토론도 해보았고, 회사 사람들과도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학교 후배들과 독서모임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남들과는 책 이야기를 자연스레 잘하는데, 왜 사람들은 가족과 독서토론을 잘 안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재작년 가을 무렵부터 남편에게 책을 같이 읽어보면 어떨지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떨떠름한 반응을 예상한 것과는 달리 아주 흔쾌히 책을 같이 읽자고 동의하더군요. 저도 엄청난 다독가는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책을 더 많이 읽은 제가 책을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가족독서 모임은 <자존감 수업> 책을 함께 읽는 것으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내용이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책 읽기 자체가 습관이 안되면 완독이 힘들다는 것을 잘 알기에 두 번째는 좀 더 쉬운 책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로 토론해보기도 했지요. 단순히 가족 독서라는 명칭이 아닌, 우리만의 독서모임에 의미를 부여하고 애정을 불어넣고자 몇 주간 고민 끝에 ‘다독 익선’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사자성어 ‘다다익선’에서 두 번째 ‘다’를 ‘독’으로 바꾸어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좋다’는 뜻으로 결정했지요. 그 후 <거절당하기 연습>, <원피스식, 세계 최강의 팀을 만드는 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미움받을 용기>, <미움받을 용기2>, <부자아빠 가난한아빠>, <더 해빙>, <에고라는 적>,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 <다가오는 말들>, <더 사랑하면 결혼하고, 덜 사랑하면 동거하나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책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함께한 소설책은 넷플릭스에 영화도 있어서 책과 영화를 함께 보고 생각을 나누니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더군요.
생판 모르는 남과 독서토론을 하는 것이 가족과 함께 독서 토론을 하는 것보다 더 쉬울지도 모릅니다. 부부끼리 성향이 잘 맞지 않으면 취미생활도 함께 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책을 읽고 토론하는 행위는 어쩌면 더 고달픈 일일 수도 있거든요. 이런 가족 독서가 15회를 넘어가다 보니 나름 좋은 점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일단 어떻게든 한 달에 한 권의 책을 반강제적으로 읽는 효과가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9년 성인 독서실태를 보면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포함하여 1년에 7.5권 읽는다는 현황을 발표했습니다. 몇 권을 읽는지 권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책은 최소한 세상을 보는 관점을 넓혀주고, 다양한 간접 경험을 통해 수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평생 독서를 습관화할 생각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매달 책을 통해 저자의 새로운 관점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장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둘째로, 부부간의 대화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2013년 기준이긴 하지만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설문에 따르면 부부 10쌍 중 3쌍은 하루 평균 대화시간이 30분에서 1시간, 3쌍은 10분에서 30분, 1쌍은 10분 미만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기혼 부부 중 약 70%가 하루에 1시간도 말을 섞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결과라는 것인데요. 요즘같이 컨텐츠가 많고 휴대폰만 보는 시대에 대화량이 이전보다 더 늘어났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깊이 있게 나누다 보니, 보통 부부가 자녀의 건강과 양육 얘기만 주로 한다는 설문의 슬픈 결과를 마주하지 않게 되어 좋습니다. 함께 살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같은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듣게 되면 상대방을 얼마나 모르고 지냈는지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될 수 있는 태도를 점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가까운 사이에는 말이나 행동을 나도 모르게 서슴없이 하게 되는데,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제때 치유하지 않으면 계속 곪아 마음이 멀어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독서토론 시간만큼은 가족이 아닌 ‘OO님’이라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마치 가족이 아닌 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듯 하곤 합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평소에 지나치게 선을 넘어 과격하게 표현했던 나 자신을 깨닫게 되고, 더 조심하고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존중하는 태도를 자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이 ‘다독익선’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커서 책을 함께 읽을 수 있게 되면 다독익선의 멤버가 늘어나겠지요. 그런 식으로 가족 간의 대화 시간을 늘리고 서로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겠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는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타인과의 적절한 거리감 유지와 존중하는 태도가 어쩌면 내 소중한 가족에게 더 절실히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여러분은 독서, 누구와 함께 하시나요?
본 글은 지역신문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2021년 5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