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 그리고 선택
선생님! 저 여기 평생 다닐 거예요!!!
한 아이가 8살 인생 첫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날, 나와 만난 첫날에 한 말이다. 나는 그저 웃으며, 그 말을 되묻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텐데…
과연 저 말을 언제까지 들을 수 있을까?
과연 저 말을 지속할 수 있도록 내가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과연 저 말을 계속할 수 있을 만큼 학원의 커리큘럼이 저 아이와 잘 맞을까?’
얼마 전 넷플릭스에 인기가 있다는 말과 함께 추천을 듣고, [레이디 두아]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이야기는 명품에 대한 선망과 욕망을 다루는 주제로 주인공의 심리가 잘 표현된 작품이다. 주제 자체는 내 관심사와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인간의 섬세한 심리를 다루는 부분은 언제나 몰입도가 좋다. 내용 자체는 차치하더라도 가슴속으로 콕콕 들어오는 주인공의 대사 몇 가지가 있었다.
“저는 이곳에 뼈를 묻을 거예요.”
주인공이 백화점 명품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선배에게 하는 말이다. 이 말은 실제로 우리가 종종 사용하는 말이다. 정말 마음에 드는 곳, 원하던 직장에 들어갔을 때, 남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계속 있고 싶을 때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하곤 한다.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제일 빨리 그만두더라.”
그 말을 들은 드라마 속 선배는 답한다. 우리는 현실에서도 똑같이 답한다. 정말인 경우가 많으니까. 왜일까? 왜 뼈를 묻겠다는 사람이 가장 빨리 나가게 될까?
아마도 엄청 좋을 거라는 기대치 때문이지 않을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니, 가려졌던 실상을 알게 되는 순간 더 이상 이상적인 곳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그 드라마 속 주인공도 역시 힘든 상황을 겪고 결국 아주 쿨한 복수를 하며 로망이었던 직장을 떠난다.
평생 다닐 거라고 학원에 등원할 때마다 큰 소리로 외쳤던 그 아이는 두어 달이 지난 뒤에는 더 이상 그 말을 반복하지 않았다. 나름 집중을 잘했던 그 아이는 어느 순간, 단어를 공부할 때, 지난 시간 배운 내용을 복습할 때, 심지어 오늘의 내용을 새롭게 배워야 할 때에도 집중하는 태도를 잃어갔다. 안방 침대에 눕듯 누워버리는 자세로 앉기, 손에 쥔 연필을 갖고 놀기, 벽에 붙은 종이만 뚫어지게 쳐다보기, 말하기 연습을 할 때 입 꾹 다물고 아예 딴 세상에서 멍 때리기.
초등학교라는 공간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에 몰입한다는 건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이 모두 집중하며 큰 소리로 말하고 퀴즈에 신나게 답하며 적극 참여할 때, 혼자 딴 세상에 있는 모습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내가 첫 회사를 나오기 전 3년 차가 된 시점에 내 대학 동기가 입사했다. 난 오래 다니지 않을 결심을 한 터라 우리 회사에 입사하는 걸 말렸지만 내 동기는 진심으로 원했고, 나는 면접 준비를 열정적으로 도왔다. 끝내 같은 층 사무실로 오게 된 내 동기는 이렇게 말했다.
“나 여기에 뼈를 묻을 거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뭐 뼈를 묻어, 묻기는~ 기회 되면 더 좋은 곳으로 빨리 가~!”
물론 지금 생각하면 결코 회사가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회사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외부에서 악명 높은 곳이었고, 실제로 내부에서도 그러했기 때문에, 과연 이런 곳에서 버틸만한 정신력이 있느냐와 또 그만큼 본인과 잘 맞느냐가 관건이었다. 그 당시 참으로 어렸던 나는 그저 가장 젊을 때 가장 잘 팔릴 때 가장 좋은 기회를 더 잡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동기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답했다.
“아니, 내 영어 점수를 받아주는 곳은 여기밖에 없어. 난 여기에 뼈를 묻을 거야.”
내 동기의 말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그리고 느꼈다. 어쩌면 이 친구는 정말 오래 다닐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그렇게 말한 내 동기도 어렸던 건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동기는 13년이 지난 지금도 승승장구하며 여전히 그 회사에 잘 다닌다. 그리고 난 여전히 내 길을 찾기 위해 기나긴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평생 다닌다는 그 말이 대기업이라는 환상과 이상에서 온 것이 아니라 현실을 기반으로 한 말이었기에, 그 친구는 자신의 말을 지켜낼 힘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확실히는 그 속마음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쉽게 첫 직장을 떠날 결정을 한 것은, 애초에 환상은 없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삶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한참 멀었기에 그랬던 것은 아닐까 뒤늦게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학원에 온 지 6개월 정도 흐른 어느 날, 떠나갔다. 그만둔다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통보에 놀랐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왠지 그런 날일 올 거라 예상이라도 한 듯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다 그만두는 경우는 많고, 또 그 이유 역시 다양하다.
아이의 의사가 중요한 가정도 있지만, 부모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집도 많다. 특히 저학년의 경우, 아이들의 의지보다는 부모의 의지가 훨씬 크게 작용하니까.
그 아이의 어머니는 학원에 찾아와서 나와 대면하고 웃으며 떠나갔다. 학원 커리큘럼은 좋지만 아이의 수준과는 맞지 않아서 더는 따라가기 힘들다고 하시면서,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사와 함께. 아이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엄마가 실내화를 챙겨 오래서 가져가야 한다고 챙겼던 모습이 기억난다. 뒤에서 다른 이야기를 들으신 건지 원장님은 그 아이가 나중에 돌아올 가능성을 말씀하시다가 시간이 흐르니 흐지부지 되었고, 결국 그 아이는 그렇게 잊혀졌다.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은 그 이후로도 3개월이 넘도록 다른 요일 반으로 계속 학원에 다니는 걸로 착각하며 지냈다.
무언가를 지속하지 않는 데엔, 한 가지의 커다란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오로지 하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평생 다닐 거라는 그 아이가 학원을 그만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숙제가 많아서인지, 난이도가 올라가는 상황을 못 따라가서인지, 아이가 흥미를 잃은 건지, 숙제를 도와주는 엄마가 지쳐서인지, 다른 더 좋은 대안을 찾은 건지, 학원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퇴사하는 사람들도 사실 따지고 보면 이유가 딱 한 개만은 아닐 것이다. 쌓이고 쌓인 여러 가지 이유들이 거대해지며 어느 순간 결정하게 될 테니까.
무언가가 좋아서 평생 지속한다는 것은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평생 살 집, 평생 다닐 직장, 평생 유지할 직업, 평생 함께 할 친구, 평생 함께 하기로 서약을 맺은 배우자, 그리고 평생 끊어지기 어려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평생이라는 단어는 사실 그 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쓸 수 있는 묵직한 책임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아이들은 자주 가볍게 표현한다. “이거 평생 간직할 거예요”, ”평생 다닐 거예요”라고. 나는 이렇게 받아들이곤 한다. “오래도록 잊지 않을 거예요!”, “이거 진짜 좋아요!”라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말해준 아이들을 나는 평생 잊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