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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Nov 30. 2019

만화, 철학을 사유하다.

독서노트 #10 < 언플래트닝 >

'입체화(Unflattening)'란
다양한 관점을 동원해
새로운 방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행위다.



  < 언플래트닝 > 이라는 책을 2017년에 어느 다독가로부터 추천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저 읽어야 할 도서목록에 추가하고 1년이 지나서야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책을 펼쳤을 때 가히 충격적이었다. 위 사진에서 보듯, 이미지가 거의 80~90%를 시각적으로 압도한다. 만화를 통해, 저자는 하고 싶은 철학적인 이야기를 아주 쉽게 풀어낸다.



글로 옮겨 적을까 하다가 사진을 찍었다. 이것은 그림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플랫랜드'에 사는 정사각형이 그들의 2차원적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되면 '선'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라인랜드'에 사는 선은 서로를 바라보게 되면 '점'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3차원 세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구'를 만난 정사각형은 위치에 따라 구의 크기가 달라져 보임을 알아차린다. 구는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정사각형을 2차원 세계에서 벗겨내어 위에서 바라본 '플랫랜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차원의 관점을 사유한 정사각형은 정육면체가 되는데... 이것 이야기만 보아도 우리는 우리의 관점을 다르게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3차원에 살고 있는 난, 아무리 생각해도 4차원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머리가 나쁜 건지 관점의 한계인 건지, 아님 둘 다인 건지...!



  쿠바 출신의 이탈리아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성이 위협받는 것 같을 때마다 나는 늘 신화 속 페르세우스처럼 다른 공간으로 날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이성적 세계나 꿈속으로 도망치자는 말이 아니라 접근 방식을 달리 하자는 뜻이다. 과거와 다른 시각, 다른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고 새로운 방법으로 인식과 검증에 나서는 것이다." ...

  칼비노도 언급했듯, 색다른 관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는 보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사유에서부터 시작한다.
- p34

  색다른 관점의 발견은 보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사유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우리는 단순히 '본다'라고 하면 그저 눈에 보이는 그 모습을 얼마나 정확하게 인지 하느냐를 쉽게 떠올린다. 사실은 그 '정확함'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하나의 물체를, 하나의 현상을 보고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경험과 배경지식, 그리고 사고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사유를 통해 나름의 판단과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뇌의 메커니즘 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어렸을 때 연결되어 만들어진 생각의 통로, 혹은 자신이 겪은 경험의 길로만 생각의 흐름이 진행된다. 쉽사리 평소에 가던 길 혹은 평소에 하던 생각 이외의 것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그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늘 하던 방식에서 한 번이라도 벗어나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이지 않을까.


  전에 매일 출근하던 버스가 아닌 지하철을 타고 큰 깨달음을 얻은 적도 있었다. 지옥철은 정말 지옥이라는 사실!?

  점심 때 늘 가던 방식으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김밥을 싸들고 회사 근처 뒷산에 올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취해보기로 했다. 초가을이었던 그당시, 나는 모기에 발목을 왕창 뜯겨 종일 발목을 긁느라 자연을 즐기지 못한 서러움만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서울 도심 한복판 빽빽한 그 건물 뒤에 경치 좋은 산이 있다는 것을 가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직도 몰랐으리라.



우리의 경험에 질서를 부여하고 생각을 구체화하는 방식을 재고해보았다.

일렬로 줄을 세우는 방식도
나름대로의 강점이 있지만
그런 틀에 박힌 방식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전체적인 구도를 모두 감안해야
형태와 표현은 하나가 된다.

따라서 의미는 묘사뿐 아니라 구조를 통해서도 표현된다. 여기서 구조란 크기와 형태, 배치 그리고
요소들 간의 관계를 뜻한다.
- p74

  만화 형식의 호흡을 그대로 옮기고자, 문장 사이의 흐름을 다음 줄로 옮겨 최대한 저자의 어조를 흉내 내어 보았다. 만화의 호흡이 전해졌으려나?! 

  우리는 경험을 통해 사고하는 방식을 획일적인 틀에 박히게 놔둘 필요가 없다. 앞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옆, 위, 아래에서 보다 보면 평소엔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새로움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지금 평소와 다르게 저자 말투의 호흡을 최대한 느낄 수 있게 인용문을 띄엄 띄엄 쓰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본 것이다~! 별 것 아니지만 아주 작더라도 새로운 시도는 또 다른 생각을 연쇄적으로 불러오는 것 같다.



크리스 웨어(Chris Ware)는 괴테를 인용해 만화를 '동결된 음악'에 비유한다. 만화가 기억을 재구성하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갈림길에서부터,
해방되고,
분리되는 동시에 종속되고
각각의 층으로 나뉘면서
동시에 중첩되고
또 서로 교차하고,
한 순간에 또 다른 순간이 삽입되는,
만화의 이런 창의적인 속성 때문에 자유로운 사고가 펼쳐진다.

이처럼 만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을 재구성하기 때문에 보다 높은 차원의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 이 새로운 시각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만든 족쇄를 풀고 답답한 틀을,
상식의 틀을 벗어날 수 있다.
- p74

  어렸을 때 봐 왔던 만화책을 상상해보면, 수많은 프레임별 비슷하면서도 약간씩 변화하는 이미지들, 얼굴 표정과 그 밖의 꾸미는 요소 그리고 중간중간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이야기를 이해하고 재미를 느꼈었다. 만화를 많이 보면 보통은 놀기만 한다고 부모님께 혼나는 게 일상이지 않았나 싶다. 그런 만화가 이렇게 완전히 고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로운 관점과 경험을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매우 신선했다. 비주얼로 이 모든 것을 전달하는 저자는 정말 천재!


  예전에 이 책에 대한 내용과 특이한 기법을 대학원 동기에서 얘기해주었더니, 동기가 이렇게 만화 형식으로 졸업논문을 써보겠단다~! 언빌리버블!!



우리는 축적된 경험을 나침반 삼아 방향을 찾지만 때로는 이 경험의 무게가 여정을 짓누르기도 한다.

우리의 눈이 시선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통해 관점을 새롭게 하듯
사유를 촉발하고 전복하는 수단 역시 역동적인 관계 안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언플래트닝(Unflattening)'을 통해
세상을 향해 눈을 뜬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된다.
- p159

  영어로 '언플래트닝'이라고 했을 때, 사실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니, 입체화라는 관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지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에서 살짝 벗어나 보기'를 시도하는 것부터 우리의 새로운 관점 만들기가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한 발짝만 살짝 옮겨보아도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이 보일지 누가 알겠는가.




낯설게 보고 다르게 생각해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통념과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비주얼 싱킹의 세계



* 책 제목 : 언플래트닝

* 저자 : 닉 수재니스

* 출판사 : 책세상

* 출판 연도 : 2016년 9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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