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후기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피터와 조이가 보면 아주 죄금 놀랄지도 모른다. 이런 후기를 쓰겠다고 말도 안 했거니와 오늘 이렇게 썼다고 굳이 알리지 않을 생각이다. 왜냐구? 부끄러우니까.
그래도 왠지 기록해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몇 자 적어본다. (몇 자가 아니라 꽤 길어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11월 13일 최초 미팅을 통해, 앞으로 함께 할 일들과 송년파티 준비에 대해 얘기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 후 우리는 어떻게 파티를 열지 기획하고, 하나씩 준비하기 시작했다.
피터의 작년 경험과 파티플래너인 조이의 아이디어로 나는 숟가락만 얹는 것 같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진행 순서와 큰 틀이 이미 잡힌 후, 세부 항목에 대해 조이가 공유해주었다.
시각적으로 직관적일수록 우리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준비하기 쉽게 리스트를 분류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시트를 고도화하는 작업이었다. (사실 요런 건 쫌 한다!)
그리고 내가 시간을 많이 투자한 부분은 스티커 제작과 포스터 만들기였다. 물론 기존의 디자인 소스를 활용해서 약간만 수정하고 색깔만 다시 입히고, 재배치하는 등의 작업이긴 했지만, 디자인물을 한 번이라도 만들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것이 생각보다 얼마나 디테일하고 오래 걸리는 작업인지를. 수많은 테스트 및 비교와 더 나은 결과물을 향해 수정의 연장선은, 마음먹고 그만두기 전까지는 그 끝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디테일에 집착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로 한다는 것을.
경험수집잡화점 스티커 완성!
이렇게 정해진 기간 안에 스티커가 완성되었지만, 나중엔 더 디벨롭시킨 근사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재밌겠다. ('나'를 위한 Art와 '남'을 위한 Design은 다르다.)
음식은 피터가 미리 준비해서 사 왔고, 조이는 파티 플래너답게 역시 철저한 준비를 해왔다. 풍선, 선물포장, 분위기 연출 등을 도맡았다. 조이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공간은 휑~했을지 모른다. 당일날 나는 만일을 대비해 일찍 강남에 도착하여 제작한 포스터를 출력했다. 다행히도 별 탈 없이 뽑았고, 파티 장소에 먼저 가서 스티커를 하나씩 모두 자르며 준비하기로 했다. 피터와 조이는 그 멀리서 엄청난 짐들을 들고 지하철을 타고 오는 과정, 그리고 이 추운 날 언덕길을 오르며 힘들었던 과정을 얘기해줬는데, 괜히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30분 동안 가위질을 하다 어깨 담 걸리겠다는 말은 괜히 한 것 같았다. 하지만 1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아직도 무거운 짐을 들 수 없고, 몸에 충격을 가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어, 그저 상황상 이렇게 지나가게 된 걸 다행으로 여겼다.
논현동 대관한 장소에 미리 도착한 우리는 부랴부랴 송년파티 준비를 진행했다. 할 일은 많은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일찍 도착한 까미엄마님과 하노마님이 있었기에 피터와 함께 맥주 및 음료를 제시간에 사 올 수 있었다. 역시 함께 준비하면 퀄리티가 높아지는 걸까. 조이의 철저한 준비 덕분에 파티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7시가 넘어 드디어 파티의 시작을 알렸다. 나는 안내를 하다 말고, 나의 작은 DSLR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사진 촬영 이제부터 시작이다.
역시나 피터는 수많은 강연 경험 덕분일까, 아니 원래 말솜씨가 청산유수다. 예전부터 느꼈다. 그리고 이런 자리일 때 재미나게 참 말을 잘한다. 그 덕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흐름 역시 자연스러웠다. 괜히 뿌듯했다.
피터는 어떤 모임을 하든 사진 찍는 것을 자주 잊는다. 습관이 안된 터라 생각된다. 그래서 항상 남이 찍어준 사진이 전부이다. 사진 욕심도 별로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항상 뒤늦게 찾아보려면 사진이 없는 아쉬움을 느낄 테지. 그래서 나는 작정하고 폰 카메라가 아닌, DSLR을 챙겼다. 고화질의 다수의 사진을 남길 수 있으니까.
첫 몇 장을 찍어보았다. 조명이 어두운 편이라, 설정을 이리저리 변경해봐도 괜찮은 설정값을 정하지 못했다. 어둡다 보니 분위기 있게 찍으려면 반응속도가 느려, 사람들의 빠른 움직임 포착이 안됐다. 결국 플래시 오프 모드에서 일단 최대한 '흔들림 없는' 사진을 찍는 것을 목표로 해야만 했다.
송년파티의 순서는, 초반 피터의 경험수집잡화점 소개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분위기 전환을 위한 KAHOOT 게임, 그리고 각자 1분 자기소개 및 대화의 만찬, 마지막으로는 시상 후 자신에게 메세지를 남기는 시간으로 기획되었다.
게임시간은 역시나 그렇듯, 분위기가 좋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앉아서 어색할 줄 알았는데, 다들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찍느라 게임에 참여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참여해서 1등 하더라도 나한테는 선물 안 줬을 테니 괜찮다고 위로해본다.
게임을 통해 분위기가 UP!
동영상을 테스트 게임 진행 시 1번, 중간에 1번 촬영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에 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이건 나만의 뿌듯함일지도 모르지만 훗.)
나는 거의 카메라 우먼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한 명 한 명 최대한 잘 나온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아무도 모르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조명과의 싸움, 참여자들의 움직임 속에 순간포착과의 싸움, 잘 찍어보겠다고 각도 찾아 헤매는 나와의 싸움 말이다.
각자 자기소개를 들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개개인의 특성이 드러나는 소개가 매우 흥미로웠다. 닉네임도 어찌나 다들 그렇게 기가 막히게 잘 지었는지 신기했다. 실명이 아닌 닉네임, 직업이 아닌 관심사를 소개함으로써 우리의 모임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익명성을 톡톡히 유지해줬다. 그 와중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은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대화의 만찬 시간은 사실 약간 걱정이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대화가 어색하지 않을까, 룰이 어려워서 이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팀을 바꾸긴 하지만 혹시라도 지루해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등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컸다. 하지만 조이의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사람들은 생각보다 말하기를 꺼려하지 않았고, 오히려 친해져서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들려주기도 했다. 나도 대화에 참여했다. 이제부터 90분간의 사진은 거의 똑같을 테니까. 나도 처음인지라 룰을 이해해야만 했고, 테이블마다 사람들의 성향과 주제가 달라 그에 맞게 이야기해야 했다.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온라인 채팅방에서만 이야기했던 사람들은 실제로 보고 이야기하니, 느낌이 새롭다.
원래 이런 모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 다수 참여해본 경험이 있기에 어색하진 않았다. 매번 이런 모임과 대화에 참여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새로운 사람을 통해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생각의 기회가 주어지며, 내가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더 많이 느끼고 얻어가느냐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번 모임의 경우, 주최 측의 일원으로서 사실 참여자로서의 기대를 하진 않고 있었다. 오로지 잘 준비해서 최대한 참여자들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하고 싶은 욕심뿐이었다. 대화에 참여하는 순간, 무장해제되어 잠시 할 말이 생각이 안나기도 했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2번의 로테이션 후 어느새 90분은 훌쩍 지나갔고, 마지막 종이 울리자마자 나는 다시 정신줄을 챙겨야 했다. 카메라를 들고 다시 시~작!
시상을 하는 과정도 재미났다. 포장을 해놓고, 골라 가라니. 이런 시상식이 어찌 황당하고 웃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크다고 좋다고 할 수 없는 선물, 작아도 실용적인 선물, 포장은 했지만 뭔지 뻔히 예측이 가능한 선물들을 앞에 두고 고르는 재미, 포장을 뜯는 재미, 모두가 함께 하는 재미를 느꼈다. 나는 내내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하곤 있었지만, 그 분위기를 함께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기뻤다.
이초님과 승민님은 경험수집잡화점의 가장 초기 단계부터 함께 해주신 분들이다. 그분들의 소감을 듣고 있는데, 왠지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했다. 나도 그 시점부터 함께 참여하면서 봐왔기 때문일까. 이 두 분은 나보다 훨씬 더 열심히, 꾸준히 하신 분들이라 더 대단해 보였다. 참여자분들 대부분 자신에게 도움되는 하나 또는 그 이상의 행동을 습관으로 자리 잡게 만들고 싶어 했다.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평소 느끼지 못한 깨달음을 얻길 원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한 메세지를 작성하고, 단체 사진을 찍으며 송년파티의 막을 내렸다.
나는 마지막 단체 사진을 민망할 정도로 마구마구 셔터를 눌러댔다. 몇 십장 찍는 와중에 하노마님은 표정과 제스처를 바꿨다. 대단함! 이렇게 단체사진을 많이 찍은 이유는 하나라도 건지기 위함이다. 단체사진은 사람이 많아 꼭 누군가는 눈을 감는다. 꼭 누군가는 가려진다. 꼭 누군가는 움직인다. 그래서 왕창 찍어놓으면 개중에 하나는 건지겠지 싶었다. 그리고 조명이 어두워서 사진의 선명도를 보장하기 어렵다 보니 정말 한 장 건지기 위해 양적으로 승부한 것이다. 왜 그렇게 많이 찍냐는 피터의 한 마디에도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나중에 누군가는 고르는 재미를 느낄 테니까. 여러 장을 보며 그 순간을 감상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