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버스가 시속 120킬로로 달리는데, 갑자기 충돌하거나 갑자기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생각하며 미리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마인트 컨트롤해야 했다. 사고는 어차피 내가 막는다고 막아지진 않는다.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에만 집중하면 된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 대처할지만 생각하고 나서, 그 불안감을 떨쳐내야 했다.
오늘 집으로 가기 위해 광역버스를 탔다. 버스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몇 분 후에 알아차렸다. 2층에 있어서 잘 몰랐는데, 기사분이 욕설을 내뱉고, 차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짜증을 내는 것 같았다. 한 할아버지 승객분이 고장이냐고 물었다. 고장은 아니라는데, 명확히 말을 못 했다. 타려는 승객에게 승차거부까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순간 불안감에 휩싸였다.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 이 버스에 만약 문제가 있다면?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면 아직 여러 정류장이 남아 있었다. 나는 바로 한 정거장 가서 내렸다. 이번에는 버스 기사가 우르르 타는 승객들에게 승차거부를 하지 않는다. 나는 그와 상관없이 내렸다. 너무나 가슴이 떨렸다. 쿵쾅쿵쾅.
2018년 12월 13일 목요일.
지금으로부터 1년 전 그 날은, 평소와 다르게 유독 갑자기 눈이 많이 온 날이었다.
나는 세 가지 일정이 잡혀 있었다. 하나는 가족과 관련된 일, 하나는 내가 타인에게 서비스하는 일, 하나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커뮤니티의 한 강연이었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마음이 급했다.
늘 써왔던 7년 된 5단(당시 5단짜리로 유명했던 매우 작게 접히는) 우산을 펼치고 집 앞을 나서며 발길을 재촉했다. 미끄러운 눈 길 위에 부츠를 신어 종종걸음으로 조심 또 조심히 걸었다. 집 앞 버스 정류장까지는 평소 걸음으로 대충 1~2분 거리다. 바로 앞 아파트 단지 구역으로 건너서 코너만 돌면 되는 거리.
눈이 거의 앞에서 흩날리는 바람에 우산을 거의 방패처럼 막다시피 시야를 가리게 썼다. 대충 아래쪽으로 앞에 뭐가 있는지 볼 수 있을 정도로 시야는 확보되어 있었다.
맞은편 아파트 단지와 우리 아파트 단지 사이에 차가 나가는 길이 있어 대략 작은 사거리처럼 보이는 구간이 있다. 두 대의 차가 단지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기다렸다. 차들이 지나간 뒤 그 구간을 평소처럼 건너고 있었는데, 갑자기 "빵~!" 울린다.
'아, 깜짝이야!!!!!!!!!!!!!!!!' 정말 간 떨어질 뻔했다. 발을 멈추고 우산을 드니, 차가 눈앞에 있었다. 차량 두 대가 모두 지나간 줄 알았는데, 두 번째 차량 SUV 뒤에 세 번째 차가 연이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차와 부딪칠 뻔한 거리는 불과 1미터도 채 안되어 보였다. 차는 그대로 빠져나갔고,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종종걸음으로 코너를 돌아 버스 정류장 앞에 섰다. 정말 놀라서 1분 동안 계속 '와, 정말 놀랐네. 휴~'만 계속 반복했다.
시간은 흐르는데 버스가 너무 안 왔다.
한 대가 왔는데, 서는 둥 마는 둥 나를 지나쳤다. 하지만 2미터 정도 벗어나 세워줬지만, 이 동네 버스 기사들은 워낙 난폭운전을 많이 하시기에, 나도 기분이 상해서 안 탔다. 네이버 지도상으로 이 버스 뒤에도 2대의 다른 버스가 올 거니까, 이 버스가 아니어도 되었다. 기분이 나빠서 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 버스를 탔었어야만 했다...
다음 버스가 왔다. 손을 흔들고, 차도로 내려가도 버스는 인도쪽 차선으로 옮기지도 않고 나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이 정류장은 차도가 넓어지는 구간이라 인도가 아닌, 차도에서 버스를 세우고 타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세 번째 버스가 왔다. 이것마저 놓치면 일정에 큰 차질이 생긴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더 차도로 다가가 손을 흔들었다. 버스는 대략 5미터 정도 아니, 그 전 정류장부터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나를 못 볼 수가 없는 구조다. 그런데 이 버스도 차선조차 안 바꾸고, 속도도 안 늦췄다. 짜증이 나면서 간절히 손을 흔들며 눈앞을 지나가려는 버스를 애타게 쳐다보다 '쿵!'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바로 정신을 차렸다. 나는 길바닥에 앉아 있었다. ... 차에 치였다.
버스에 눈이 멀어 코 앞에 있던 차가 움직이는 것도, 아니 사실은 그 존재 자체도 인지하지 못했다.
흰색 승용차의 운전석 앞바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길바닥에앉아있는 나는 이게 뭔가 싶었다. 내 핸드백과 에코백, 그리고 우산은 근처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주 잠시 '살았다! 죽지 않고 살아있어!'를 속으로 외치고,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눈물이 나는 것을 애써 달랬다.
우리 집 근처 이 정류장은 그 이전 정류장이 지하철역 부근부터 내리막길로 연결되어 있고, 왕복 4차선이지만 내리막길 끝자락 이 정류장 부근이 점점 더 넓어지는 구조다. 그래서 지하철역부터 내리막길에 불법 주, 정차 차량이 늘 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나를 친 그 가해 승용차는 아마도 주, 정차되어있던 차였을 것이고, 이내 출발하려는데 내가 버스를 잡으려고 서 있는 것을 미처 못 보고(못 볼 수 있는지 이해는 안 가지만) 출발했다가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엄청난 눈발에 미끄러지는 것을 어떤 방법으로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가해 차량 주인은 내 또래의 젊은 남성이었고, 둘 다 사고가 처음인지라 침착했지만 어찌할 도리를 잘 모르기도 했다. 그래도 인성 나쁜 차주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고, 감사하게 생각했다.(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나보다.)
나는 정말 가볍게 툭 부딪친 줄 알았다. 나중에 병원에서 곰곰이 사고 이동 경로를 생각해보니, 보닛에 왼쪽 무릎부터 팔, 어깨, 얼굴까지 전신을 치이고 굴러서 앞좌석 앞바퀴에 떨어져 앉아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도 한 5일이 지난 뒤쯤.
병원에 한 8박 9일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화병 날 뻔했다. 정말 돈만 밝히고 환자를 돈으로 보는 병원은 치가 떨리게 싫다.
거의 한 달 넘게 먹었던 약
그 후로 몇 개월간 안 해본 검사가 없다. 평생 동안 병원 진료 과목 중 이렇게 다양하게 검사를 받아본 것도 처음이었다. 정형외과, 신경외과, 순환기내과, 흉부외과, 안과, 이비인후과를 전전하며, X-ray는 우습고, MRI 3번, CT 2번, 핵의학 검사, 초음파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해도 이상소견이 발견되지 않았다. 다행히.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는 아팠다.
퇴원과 동시에 호흡곤란이 왔고, 퇴원했던 병원에 갔더니 안내데스크에서 진료 접수를 거부당했다. 그 이유가 오늘 퇴원했다는 건 '괜찮다'는 뜻인데, 퇴원 당일에 병원을 다시 오는 게 말이 되냐는 게 직원의 거부 사유이다. 그 말을 듣고 꼭지가 돌아버렸다.
아, 오늘 퇴원한 사람은 다시 아프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런 거였다. 그런 거였어. 그렇구나....
뚜껑이 열린 나는 주차하러 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다른 병원 알아봐 달라'라고 했다. '여기 병원 접수를 안 해준대, 이런 거지 같은 병원이 어딨냐'고 엄청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그랬더니, 바로 다른 직원이 약 1분 뒤 접수를 해줬으니 진료실 앞으로 가란다. 뭐 이런 욕 나오는 경우가. 순환기내과에서 심장초음파 검사를 했지만 이상소견 없음. 신경정신과에 가보라고 말하는 의사의 말투를 들었을 때 얼굴에 침을 뱉어주고 싶었다. 이 병원의 정형외과 주치의였던 의사나 힘없는 간호사, 접수 거부하는 안내 직원, 그리고 불쾌한 순환기내과 의사까지. 정말 토할 것 같았다.
그렇게 2018년 12월은 정말 끔찍하리만큼
잘 안 풀렸다.
교통사고 환자에게 외과 진료는 보험이 되면서 내과 진료는 보험 적용이 안된다. 자동차보험 담당자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내과 진료를 진행하게 될 경우, 일단 내 돈 내고 나중에 청구할 때 증명해야 한다. 심장초음파만도 20만원이 넘었다. 신경정신과에 가면 내가 예민해서 숨을 못 쉰다고 말하려나? 흉부 근육이 이완이 덜 되어서 내가 깊은숨을 쉴 수 없는 것이 내 정신적 문제로 몰아가면 그만인 것일까. 짜증이 확 났다. 사실 이미 짜증은 9일 동안 그 병원에서 극에 달해 있었다. 그래, 만약 보험이 되었더라면, 나는 그동안 약 8년간 스트레스 때문에 힘들었던 내 정신을 이 기회에 치료했을지도 모른다.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병원에 있는 게 싫었다. 시간상 위치상 그 병원밖에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게 싫었다.
나는 그 후로 그 병원 근처에도 안 간다.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이지만, 난 아무리 응급상황이어도 그 병원에는 다시는 안 갈 것이다. 나는 내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그 병원만큼은 절대 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번 사건 말고도 그전에 여러 번 실망했던 전적들이 있었다. 어쨋거나 지금도 그 교통사고 일을 생각하면 치가 떨리는 걸 봐서 나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정말 있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쓴 글을 내가 봐도 분노가 느껴진다. 이렇게라도 표출하고 싶다.)
교통사고 자동차 보험 구조를 좀 더 명확히 잘 알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이번 교통사고를 통해 보험사와 병원 그리고 심사평가원 사이의 돌고 도는 눈치 싸움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고, 그 와중에 아무런 혜택을 못 받은 그런 희생양 중에 하나였다. 적절한 시기에 올바른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것을 알았을 때 스스로 너무 바보 같고 한심해서, 그리고 무지로부터 오는 무력감 때문에 너무 억울해서 한없이 울었다. 나는 누구보다 건강했는데, 다시 돌아가는 길이 너무나 버겁다.
좋은 경험 했다. 다음번에는 교통사고가 나면 안 되지만, 만약에 사고가 나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현명하게 더 스마트하게 그리고 더더더 영악하게 행동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이 치열한 세상에서.
한방병원과 정형외과, 그리고 마취통증의학과를 전전하며 한약, 추나요법, 침, 찜질, 전기치료, 초음파 등의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증상은 끝내 완치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여전히 왼쪽 전신 중에 무작위로 특정 부위가 간헐적으로 떨림 증상을 보인다. 매우 불규칙해서 부위를 특정할 수도 없고, 원인을 알 수도 없다. 얼굴에서부터 발바닥까지 거의 왼쪽 부위에서만 증상이 나타난다. 왼쪽을 치여서 그런가.
의사들은 늘 완치에 대해 장담 못하지만, 꾸준히 물리치료받으라는 말만 했다.
병원 캘린더
5월까지는 나름 병원을 열심히(?) 다녔고, 6월부터는 일하느라 병원을 자주 못 갔다.
참고로 양쪽 팔을 제대로 들어올릴 수 있을 때까지 약 4~5개월이 걸렸고, 견갑골 통증은 사고 후 9개월이 지나서야 서서히 잦아들었다. 겉은 멀쩡한데 몸을 제대로 쓰기까지 6개월은 넘게 걸린 것이다.
교통사고, 그 후로 1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 나를 놀라게 하거나 자동차 경적소리가 나를 놀라게 하면 가슴을 쓸어내린다. 흉부 안쪽 근육이 지나치게 놀라기 때문에 통증이 온다.
나는 지금도,
도로 위의 평평하지 않은 부위나 방지턱을 넘을 때, 혹은 급브레이크를 밟을 때 가슴 통증을 느낀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와 부딪쳐 몸에 충격을 흡수하게 되면 가슴 통증을 느낀다.
나는 지금도,
심호흡을 크게 하면 가슴 통증을 느낀다.
물리치료사가 말해줬던 그 당시가 떠오른다.
'환자분처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고를 당한 경우가 가장 최악의 경우예요. 수축된 근육이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 꽤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나는 이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우울한 나날에 많이 시달렸다. 그게 우울증이었을지도 모른다.
겉은 멀쩡한데, 속이 아프다. 그런데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다. 알 수도 없다. 공감 자체가 불가능하다.
1년 동안 혼자만 이 통증을 안고 생활하는 그 슬픔이란.
가족도 지인도, 겪어보지 않고서는 절대 모른다.
이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우울한 일인지를.
한 달 전인가 보험사와 합의했다.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싶지만, 완치가 될지 의문이다. 그리고 더는 병원에 가지 않고 있다. 나을 수 있다면 가고 싶긴 하다.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나만의 숙제다.
도로 위를 다닐 때마다,
눈 감고 모른 척 해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감은 내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오늘처럼 말이다.
내가 내렸던 그 버스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다른 버스를 타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리고 가족과 대화를 통해 안심을 하고, 심호흡을 하고 다시 정신줄을 잡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