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초창기 방식을 거의 유지하곤 있지만, 앞으로 어떤 식으로 더 잘 운영해볼지 고민이 되는 요즘이다.
처음 독서모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매우 강제적이었다. 당시 참여하고 있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4명 이상이 모인 독서모임을 만들고 4회 이상 진행해야만 했다. 모임을 만들어본 적도 없던 나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당시 읽었던 <실행이 답이다> 책을 통해 두 가지 측면에서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바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배수진을 치라는 것. 그리고 용기 내어 요청하면 생각보다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나는 알고 지내던 대학 후배들에게 부탁을 했는데, 다행히 모두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독서모임. '소피나비'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참여 중인 교육에서 'OO나비'라는 이름으로 지어야 했는데, 처음에 어떤 이름을 붙일지 한참을 고민했었다. 자신만의 철학을 갖춘 삶을 살기를 원했던 나는 철학이라는 단어를 택했다. Philosophy (철학)에서 sophy를 따왔다. 그 어원은 그리스어 sophia, 바로 '지혜'라는 뜻이다. 여기서의 지혜는 일상의 지혜나 지식이 아닌, 인간 세계를 관조하는 지식을 말한다. 즉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을 뜻한다. 이 어원의 뜻처럼 각자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가지고 목적 있는 책 읽기를 하자는 의미로 '소피나비'로 짓게 되었다.
처음에는 학생 신분이던 후배들 덕에 2주에 한 번 독서모임을 진행했었다. 나중에는 점차 한 달에 한 번으로 바뀌었다. 모두 취업을 해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니 만나는 게 어려워졌다. 일하는 지역도 다르고, 주말에 출근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일정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점점 두 달에 한 번, 심하면 세 달에 한 번 독서모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로 경각심을 가지고 아무리 못해도 한두 달에 한 번은 꼭 진행하도록 일정을 조율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무려 36회의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이번 1월에는 37회가 예정되어 있다. 만 4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꾸준히 참여해준 소피나비 멤버들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독서모임을 꾸준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책을 어떻게든 읽게 되는 효과다. 정해진 날짜, 정해진 책, 정해진 장소에서 독서모임이 진행될 예정이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압박을 받고 책을 읽게 된다. 책을 읽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매번 실패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강제적인 장치는 생각보다 꽤 효과가 있다. 특히 우리 모임은 반드시 완독을 해 올 필요가 없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당연히 하나의 정해진 책을 모두 끝까지 읽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전제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운영방식상 전자책이 아닌 종이책이어야 하고, 준비해온 쪽수를 함께 펴서 한 명은 소리 내어 읽고 나머지는 눈으로 따라 읽어야 하기 때문에, 완독을 하지 않은 사람도 독서모임 참여만으로도 특정 부분을 읽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또 내용이 좋을 경우, 끝나고 꼭 읽겠다는 다짐이 생기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읽게 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요즘 같은 시대에 책을 읽는 깨어있는 멋진 사람'이라는 후광효과는 덤으로 얻을 수도 있다.
둘째는, 타인의 삶을 얻게 된다. 책 읽기 모임이지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다 보면 삶 읽기와 같다. 이러한 다른 사람의 삶 읽기를 통해 간접적인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같은 책을 여럿이 함께 읽고 그 생각을 공유하기만 해도, 한 책으로 함께 읽은 사람의 수만큼 새로운 경험을 얻게 된다. 내가 원래 알던 사람도 내가 알지 못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보게 될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또는 책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의 문제에 서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마지막 셋째는, 나를 위한 끊임없는 자극을 받을 수 있다. 먼저 책 자체가 자극제이다. 그 안에 담긴 지식과 지혜는 내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고, 나의 아픔을 확인하며 함께 고통을 나누는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또한, 독서모임에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는다는 것만으로도 독서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부담 없이 진행되는 독서모임이라지만, 혼자만 책을 읽지 않고 참여하게 되면 생겨나는 부담감과 미안함, 그리고 민망함은 본인의 몫이 된다. 그리고 같은 책을 읽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그 차이와 다름에 대한 수많은 새로운 자극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비슷한 생각을 통해서는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처음 독서모임을 만들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지속될 줄 몰랐다. 그리고 독서모임 자체가 내게 이렇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함께 해온 소피나비 멤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독서모임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함께 해온 멤버들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하는 것, 서로 어느 정도 잘 아는 지인과 독서모임을 하는 것, 회사 사람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것 등 각각의 모임은 성격과 분위기가 서로 많이 다르다. 그래서 소피나비는 소피나비만의 매력이 있는 것이다.
지금의 이 독서모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나는 모른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딱 4회만 같이 해주길 요청했고, 그 이후에는 원한다면 쭉 유지하기로 약속했었다. 그 약속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독서모임을 할 때마다 종종 말한다. 바쁠 텐데 이 모임이 부담되면 언제든 그만둬도 된다고. 부담 갖지 말라고 말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 모임을 통해 이렇게라도 책을 읽고 싶다'라는 것과 '같이 책 읽는 지금이 좋다'라는 답변이었다. 중간에 한 명이 늘어 지금은 5명이 되었다. 과연 '소피나비'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함께 더 성장할 것이다. 새로운 멤버들을 더 늘리거나, 혹은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최초 독서모임 이름을 지었을 때의 의미처럼, 지금 소피나비에 참여하는 멤버들은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그러는 나는...?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