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23 < 힘 빼기의 기술 >
주삿바늘 앞에 초연한 엉덩이처럼
힘을 빼면
삶은 더 경쾌하고 유연해진다!
경북에 있는 어느 숙소에서의 일이다. ... 안주인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남편 얘기가 자주 나왔다. 남편이 집을 한 채 한 채 지을 때마다 얼마나 세심히 신경을 썼는지, 얼마나 부지런한지, 얼마나 보는 눈이 밝은지와 그 성품에 대해 탄복해 마지않는 것이었다. 부부 금실이 참 좋구나 싶었다. 다음 날은 그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 얘기 끝에 그분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부는 30년 넘게 같이 살면서 부부싸움을 한 번도 안했습니더. 비결이 뭔지 압니꺼?"
내가 물음표를 담은 눈으로 쳐다보자 그분은 특유의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충고를 안 해야 돼. 입이 근질근질해 죽겠어도 충고를 안 해야 되는 거라예. 그런데 살다가 아, 이거는 내가 저 사람을 위해서,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꼭 한 번은 얘기를 해줘야 되겠다...... 싶을 때도 충고를 안 해야 돼요."
살면서 많은 충고가 '이게 다 너를 위해서다'라는 마음으로 오가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충고일 뿐, 직접 겪어 얻는 깨침만큼 큰 것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오지랖 넓은 잔소리꾼이라 원성을 듣곤 한다. 그래, 그 숙소의 남자 사장님도 실은 내게 충고를 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그 말을 되새기고 있는 것 아닌가! 지금도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너를 위해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충고를 건넬 테고,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도 한 걸음을 내디뎌 넘어지거나 새로운 곳에 가닿거나 할 것이다.
- p33
그 후로도 나는 수많은 여행지에서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때론 작은 보답을 할 수 있었고 감사 편지를 쓴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럴 상황이 못 되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의 빚 따위는 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답은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하는 거니까.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가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면 되니까. 그렇게 해야 따뜻함의 순환이 생겨나는 것이다.
- p39
힘을 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줄 힘이 처음부터 없으면 모를까, 힘을 줄 수 있는데 그 힘을 빼는 건 말이다. ... 하여간 힘 빼기의 기술은 미묘한 고급 기술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삽화로도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책 <안자이 미즈마루>의 부제는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다.
과연 그의 그림은 아주 어설픈 듯하지만 바로 그래서 참 매력적이다. 잘 그릴 수 없어서가 아니다. 잘 그리지 않아서다. 힘을 줄 수 있는데 힘을 빼버렸기 때문에 생겨나는 매력이다. 매력은 '매혹하는 힘'이다. 이건 인간에게 미치는 힘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 p44
'천재 각본가'라 불리며 쉴 새 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는 사이사이 차기작 각본을 쓱쓱 써내는 구도 간쿠로에게 인터뷰어가 물었다.
"이렇게 바쁜 중에 각본을 그렇게 잘 쓰시는 비결이 뭔지 궁금합니다."
그의 대답이 내겐 충격이었다.
"일단 잘 쓰고 싶지도 않고요......"
잘 쓰고 싶지 않다니? 그게 바로 그의 작품들이 갖는 신기함의 원천 인지도 몰랐다. '잘하려고 한다'는 게 뭔가? 기존에 정해진 '잘함'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맞추어 높은 성취를 이끌어 내기 위해 힘쓰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 힘을 빼버릴 때 '잘함'의 기준을 전복하는 전혀 새로운 매력이 생겨나기도 한다.
- p46
인생에서 계획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떤 슬픔이 어떤 기쁨을 불러올지, 어떤 우연이 또 다른 우연으로 이어질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다 어느 순간에 모든 게 고맙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 p79
인생은 언제나 기회비용과 선택의 문제
비관적인 서퍼는 없다.
파도는 몰려오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큰 파도가 칠 때도 있고, 잔물결만 일 때도 있다. 오늘 좋은 파도가 없었다 해서 절망에 빠지고 우울해하는 서퍼가 있을까? 파도는, 계속 칠 것이다. 거기에 확신이 있다. 그리고 그 확신에서, 낙관이 비롯된다.
- p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