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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Dec 13. 2019

당신은 삶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가?

독서노트 #23 < 힘 빼기의 기술 >

주삿바늘 앞에 초연한 엉덩이처럼
힘을 빼면
삶은 더 경쾌하고 유연해진다!


이 책 <힘 빼기의 기술> 제목만 처음 들었을 때는, 그저 예측 가능한 하나의 에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읽어보니 내용 하나하나가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석 같은 책이었다.



경북에 있는 어느 숙소에서의 일이다. ... 안주인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남편 얘기가 자주 나왔다. 남편이 집을 한 채 한 채 지을 때마다 얼마나 세심히 신경을 썼는지, 얼마나 부지런한지, 얼마나 보는 눈이 밝은지와 그 성품에 대해 탄복해 마지않는 것이었다. 부부 금실이 참 좋구나 싶었다. 다음 날은 그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 얘기 끝에 그분은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 부부는 30년 넘게 같이 살면서 부부싸움을 한 번도 안했습니더. 비결이 뭔지 압니꺼?"

내가 물음표를 담은 눈으로 쳐다보자 그분은 특유의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충고를 안 해야 돼. 입이 근질근질해 죽겠어도 충고를 안 해야 되는 거라예. 그런데 살다가 아, 이거는 내가 저 사람을 위해서,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꼭 한 번은 얘기를 해줘야 되겠다...... 싶을 때도 충고를 안 해야 돼요."

살면서 많은 충고가 '이게 다 너를 위해서다'라는 마음으로 오가겠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충고일 뿐, 직접 겪어 얻는 깨침만큼 큰 것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오지랖 넓은 잔소리꾼이라 원성을 듣곤 한다. 그래, 그 숙소의 남자 사장님도 실은 내게 충고를 하면 안 된다는 충고를 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그 말을 되새기고 있는 것 아닌가! 지금도 누군가는 누군가에게 "너를 위해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충고를 건넬 테고, 누군가는 그 말을 듣고도 한 걸음을 내디뎌 넘어지거나 새로운 곳에 가닿거나 할 것이다.

- p33

충격적이지 않은가!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꼬~~~~옥 한 번은 얘기를 해줘야 되겠~다 싶을 때도 충고를 안 해야 한다는 말. 웃음이 났다. 우리는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와 직장동료, 지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너무나 많은 충고를 의식하지 못한 체 하고 있다. 30년간 부부가 싸우지 않고, 아주 원만하게 지낼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한 사람의 엄청난 인내가 필요한 것일까? 둘 다 서로 해야 하지 않나 싶다가도, 그렇다. 그냥 한 사람만 현명하게 대처하면, 다 되는 건가 보다. 그렇다... 너무 가까울수록 충고가 아닌 다른 방식이어야 하지 않을까. 조금 먼 사이, 조금 덜 친한 사이에는 그래도 충고가 조금은 효과적이지 않을까. 저자가 그 숙소 남자 사장님의 충고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가까운 엄마의 '충고'를 가장한 잔소리가 아니라 조금 먼 의 충고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 후로도 나는 수많은 여행지에서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때론 작은 보답을 할 수 있었고 감사 편지를 쓴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럴 상황이 못 되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의 빚 따위는 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보답은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하는 거니까.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가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보답하면 되니까. 그렇게 해야 따뜻함의 순환이 생겨나는 것이다.

 - p39

살다 보면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고3 때가 생각난다. 집안 형편이 급격하게 어려워진 나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학원에 다닐 수 없었다. 물론 독학해도 잘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당시 괜찮다고 여겨지는 학원에 다니다 그만둬야 할 형편이었다. 나를 아끼던 나름 유명한 선생님은 무료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애써주셨다. 나는 그 대신 서울대에 합격하는 것으로 보답을 약속했지만, 결국 면접에서 떨어지고 말았고, 그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 이후 부끄러움에 한 번도 감사의 인사를 한 적이 없다. 너무나 어리숙했던 과거가 항상 마음의 빚이었고, 그래서 나는 대학 후배들에게 내가 받았던 도움처럼,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도와주려 애쓴다. 저자가 말하는 마음의 빚을 나는 너무나 오래 지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학교 후배 멘토링 자리에 가면 많지는 않지만 소정의 멘토링 비용을 받는다. 나는 그 돈을 입금받기 전에 이미 내 돈으로 상품권을 사서 모두 나누어 준다. 그것이 편하다. 어떠한 대가를 받지 않고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누군가에게 절실하다면, 있는 것들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 그것은 내가 받아봤기에 얼마나 소중한 지 알기에 그렇게 행한다. 돈도 없으면서 때로는 내가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몇 푼 더 갖는다고 나는 일확천금의 부자가 되진 않을 테니까. 그리고 후배들에게 말하곤 한다. 얼마 안 되는 지금 받은 그 돈과 경험을, 나중에 더 잘 돼서 나한테 갚지 말고 또 다른 후배들에게 베풀어달라고. 그러면 된다고 말이다.



힘을 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줄 힘이 처음부터 없으면 모를까, 힘을 줄 수 있는데 그 힘을 빼는 건 말이다. ... 하여간 힘 빼기의 기술은 미묘한 고급 기술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삽화로도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의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의 책 <안자이 미즈마루>의 부제는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이다.

과연 그의 그림은 아주 어설픈 듯하지만 바로 그래서 참 매력적이다. 잘 그릴 수 없어서가 아니다. 잘 그리지 않아서다. 힘을 줄 수 있는데 힘을 빼버렸기 때문에 생겨나는 매력이다. 매력은 '매혹하는 힘'이다. 이건 인간에게 미치는 힘 중에 가장 강력한 힘이기도 하다.

- p44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타이트하게 힘을 주며 사는 법만 배워왔다. 느긋하게 마음먹고, 너무 억지로 애쓰지 말고, 힘을 빼고 내려놓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얼마나 힘을 주고 살고 있는가.

나는 얼마나 힘을 빼고 살고 있는가.



'천재 각본가'라 불리며 쉴 새 없이 스케줄을 소화하는 사이사이 차기작 각본을 쓱쓱 써내는 구도 간쿠로에게 인터뷰어가 물었다.

"이렇게 바쁜 중에 각본을 그렇게 잘 쓰시는 비결이 뭔지 궁금합니다."

그의 대답이 내겐 충격이었다.

"일단 잘 쓰고 싶지도 않고요......"

잘 쓰고 싶지 않다니? 그게 바로 그의 작품들이 갖는 신기함의 원천 인지도 몰랐다. '잘하려고 한다'는 게 뭔가? 기존에 정해진 '잘함'의 기준이 있고, 그 기준에 맞추어 높은 성취를 이끌어 내기 위해 힘쓰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 힘을 빼버릴 때 '잘함'의 기준을 전복하는 전혀 새로운 매력이 생겨나기도 한다.

- p46

'잘함'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힘을 빼고 잘하려고 굳이 애쓰지 않는 것의 필요성과 그 효과를 천재 각본가는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힘을 뺄 수 있는 사람은, 그전에 이미 충분히 힘을 써서 '잘함'의 경지에 올라봤다는 말이다. 잘함의 경지에 올라보지 못한 사람이 과연 힘을 빼고 대충이라는 시도를 할 수 있을까? 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힘을 주는 삶'을 살아봤기 때문에, '힘을 빼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어떻게 다른지 아는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잘해'봤기 때문에, '대충'을 '잘'해내는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사를 맞을 때 엉덩이에 힘을 줘 봤기 때문에, 엉덩이에 힘을 빼면 어떻게 다른지 아는 것이다. (물론 나는 적당히 힘을 주는 게 더 안 아프다.)


모든 일에 힘을 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떤 일이나 어떤 상황에서는 반드시 힘을 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을 조절할 줄 아는 능력은, 결국 힘을 주는 법과 힘을 빼는 법을 모두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저자도 항상 힘을 빼라고 말하진 않을 것이다. 그저 그 필요성에 대해 알려준 것이겠지. 분명한 건 삶의 태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계획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떤 슬픔이 어떤 기쁨을 불러올지, 어떤 우연이 또 다른 우연으로 이어질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시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다 어느 순간에 모든 게 고맙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 p79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말을 듣고 나는 두 가지 영화가 떠올랐다.


하나는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인상 깊게 봤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에>다. 영화에서 주인공 Lucy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 딸에게 해 준 말이 있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영화의 가장 마지막 멘트 중 하나여서 사춘기 돌입하던 민감한 시기의 나에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는 것을 매 순간 실감한다.


또 다른 하나는 최근 개봉해서 칸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 최고상을 수상한 <기생충>이다. 영화 후반부에 아버지인 기택이 눈을 가린 채 누워있고, 아들 기우는 옆에 누워서 아버지에게 계획이 있는지 묻는다. 기택은 있다고 답한다.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그렇다. 송강호가 열연한 기택이라는 인물은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최우식이 연기한 기우는 마지막까지 계획하는 삶을 산다. 난 이 영화의  부분이 뇌리에 박혔다. 우리는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안다. 하지만 알면서도 우리는 항상 계획에 기반한 삶을 살아간다...


사람들은 각자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인생은 언제나 기회비용과 선택의 문제



비관적인 서퍼는 없다.

파도는 몰려오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큰 파도가 칠 때도 있고, 잔물결만 일 때도 있다. 오늘 좋은 파도가 없었다 해서 절망에 빠지고 우울해하는 서퍼가 있을까? 파도는, 계속 칠 것이다. 거기에 확신이 있다. 그리고 그 확신에서, 낙관이 비롯된다.

- p237

우리는 매일 삶이라는 파도를 맞닥뜨린다. 파도에 맞기도 하고, 파도 위에서 거침없이 서핑을 즐기기도 한다. 때로는 엄청난 크기의 파도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들을 즐기는 서퍼가 되면, 좀 더 유쾌하게 파도를 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책 제목 : 힘 빼기의 기술

* 저자 : 김하나

* 출판사 : 시공사

* 출판일 : 2017년 7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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