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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Dec 22. 2019

생각의 도구

독서노트 #32 < 생각의 탄생 >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 물리학자 아르망 트루소


이 책 <생각의 탄생>은 455페이지에 달하는 얇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당시가 약 3년 전이다. 그때 2주에 걸쳐서 아주 꼭꼭 씹어먹었다. 책에 색색별로 밑줄을 과감히 치고, 내용 사이사이 볼펜으로 꾹꾹 눌러썼던 흔적이 여전하다. 다시 재독을 해도 그간 놓쳤던 중요한 맥락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정신'들의 경험을 둘러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고, 또한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는지를 알려준다. 특히 창조적인 일을 할 때 사람들은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의 도구'들을 사용한다. 이 책에 소개되는 13가지의 도구들이 본질적인 관점에서 창조적 사고가 무엇인지에 대해 알려준다. 이 방법들은 특정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 즉, 과학, 예술, 인문학, 공학기술 사이의 놀라운 연관성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있어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구는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르게 태양 주위를 돈다. 그리고 태양계의 중심은 지구가 아닌 태양이다. 사진, 드로잉, 글 같은 것들은 잉크나 은으로 얼룩져 있는 종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이 그 이름에 값하는 하나의 실재로서 다시 태어나는 곳은 우리들 마음속이다. 그리고 그것의 탄생은 이것들이 상징하는 감각적이고 정서적이며 경험적인 느낌들을 재창조해낼 수 있는 우리들의 기술에 달려 있다. 그것들은 진실의 반지를 끼고 있는 허구다. 이 진실이란 우리가 우리 내부에 받아들여야만 '진실'이 되는 어떤 것이다. 생산적인 사고는 내적 상상과 외적 경험이 일치할 때 이루어진다.

- p47

모든 과학과 예술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한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인 내적 상상과 외형적으로 실재하는 외적 경험이 만나야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낼 수 있는 것 같다.



< 창조를 이끄는 13가지 생각도구 >

창조성이 뛰어난 사람들은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 방법을 알려준다. 그들이 각자 발견한 것들을 한 군데로 모은 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생각의 도구들'인데, 이것이야말로 창조적 이해의 핵심이다.

이 도구들은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 만들기, 놀이, 변형, 그리고 통합이다.

- p48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말을 빌리면, 창조적 발상의 근원은 '무엇을 끄집어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끄집어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창의적은 무언가를 떠올리는 과제를 받았을 때, 여전히 우리는 '무엇'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13가지의 생각도구 방식을 꿰차게 된다면, 아니 단 한 가지라도 비슷하게 해낼 수 있다면 창조성 발휘 연습을 시작하게 될 것 아닐까.



벽의 복잡한 문양 속에서 형상들을 발견하는 것은
시끄러운 종소리 속에서 우리가 아는 이름이나 단어를 찾아내는 일과 같다.

-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패턴을 알아낸다는 것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패턴에서 지각과 행위의 일반원칙을 이끌어내어 이를 예상의 근거로 삼는다. 그런 다음 새로운 관찰 결과와 경험을 예상의 틀 안에 끼워 넣는다. 이 관찰과 경험의 틀을 흔드는 무엇인가가 일어나게 될 때 우리는 또 다른 패턴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발견은 이런 순간에 이루어진다.

- p137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새로운 아이디어는 패턴인식에서부터 나왔다고 한다. 평소에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기하학적 무늬의 반복이라던가, 하나의 형태를 보고 기상천외한 모양의 일정한 패턴을 찾아내는 것은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반복되는 음운을 맞춰 최고의 시를 창조하기도 한다.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가 주장한 바에 의하면 음악가에게 음표는 3차원 물체와 같다고 했다. 음표 사이사이에 관심을 갖고, 음을 재배열하면서 음악적 패턴을 찾기도 하고 만들어가면서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수학자들 역시 관계의 패턴을 인식하는 데 능하다고 한다.


사람마다 자라오면서 어릴 때 어떤 것에 관심을 많이 가졌는지에 따라 사고하는 방식이 어느 방향으로 특화되는 것 같다. 나의 경우, 사실 패턴을 읽어내는 것에 굉장히 친숙하고 또한 재미있기도 하다. 옛날 시골 할머니 집 천장에 그려진 이상한 무늬들의 반복적 특성을 관찰하고, 창호지 사이사이 십자 모양의 반복되는 나무 기둥들을 관찰하고, 집 화장실 타일의 불규칙하면서도 규칙이 있는 무늬를 관찰하면서 하나의 패턴 찾는 것은 그저 무의식적 습관처럼 굳어졌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별로 흥미 없는 일이었겠지만, 이런 패턴 찾기 놀이를 마음속으로 하다 보니, 커서 도형추리 문제에 유추능력이 많이 발달해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만의 강점을 다시 찾은 기분이 든다. 마치 오랜만에 꺼낸 코트 주머니 속에서 오래전에 넣어놓은 5천원 짜리 지폐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우리가 '자신'이 아니고 '자신이 이해하고 싶은 것'이 될 때 가장 완벽한 이해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시스템 내에서 특정 부분을 맡아 기능하고 연기한다는 것은 이해를 '축조'하는 일이다. 사실 '감정이입'에 관해서라면 세상 전체가 그 대상이 되는 무대인 셈이다.

- p264

13가지 도구 중 감정이입에 관한 부분이었다. 사람들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겠지만, 많른 사람들이 타인의 입장에 감정을 이입하여 함께 울고, 웃고, 대화하며 공감하며 살아간다. 배우를 보면 특히 연기력을 대중으로부터 인정받는 배우의 경우, 극 중 인물에 굉장한 몰입을 하고 완전한 이입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인이 되어 보는 것, 되고 싶은 무언가가 되어 보는 것은 관점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다.


철학자 칼 포퍼는 새로운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 바로 '공감적인 직관' 혹은 '감정이입'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문제 속으로 들어가 그 문제의 일부가 되는 것'을 뜻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통해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 우리의 시선을 더 먼 곳까지 그리고 더 위에서 더 넓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을까.



진정한 과학자는 세계에 관해 생각만 하지 않고 느끼기도 하며, 뛰어난 화가는 세계를 느낄 뿐 아니라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 p410

저자는 생각이라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공감각적이라고 말했다. 종합지는 이러한 공감각의 지적 확장이 되는데, 공감각이 미적 감수성의 가장 고급한 형태라면 종합지는 궁극적인 이해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앎과 느낌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통합한 것을 말한다고 한다. 상상하면서 분석하고, 화가인 동시에 과학자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최고의 상태에 이른 종합지적인 사고의 모습인 것이다.

아마도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러한 통합적 사고를 하는 것 자체와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불가능하다고 미리 단정 짓고 싶지도 않다. 처음부터 완벽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감각과 의식이 서로 맞물려 창조적인 인물이 되고 싶다면 다학문적 교육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 책 제목 : 생각의 탄생

* 저자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

* 출판사 : 에코의서재

* 출판일 : 2007년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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