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의 권태기, 일명 글태기.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가 보면 글태기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대부분 글이 좋아 쓰기를 시작했고 더 잘 쓰고 싶은 열망으로 자신의 글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단어이기도 하다. 책을 여러 권 낸 작가들조차 피해 갈 수 없다고 하니 과연 글로 만들어진 열정의 벽에 침투하는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라 칭할만하다.
작년 막 글쓰기를 시작하며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냥 웃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에게 권태기는 오래된 부부에게서나 듣는 시들한 감정의 교류일 뿐이다. 실감이 없는 자리엔 공감 역시 참석하지 않는다. 내게서 나온 글을 이제 막 알아가고 때론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그건 초기의 사랑싸움이지 관계가 끝나기 전 참았던 감정의 염증이 터지는 시기가 아니다.
진짜 글태기란 글을 써도 더는 설레지 않는 상태이다.
글 하나를 끝냈을 때 느꼈던 짜릿한 성취감이 사라진 단계, 그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글태기가 아닐까. 그런 의미로 대부분 작가가 말하는 글태기도 참 의미의 글태기가 아니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거나 글이 잘 풀리지 않는 상태는 글태기라기보다 글밀당 상태에 가깝다. 도도한 그(또는 그녀)는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를 만족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궁리한다.
글과의 밀당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흥미와 재미를 주어서 내게 빠져들게 해야 한다. 행동으로 그를 사랑한다고 확실하게 표현하면서도 그만 바라보고 살아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자신을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이 더 확실하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겠다는 결심, 일단 시도해 보는 결단력, 내 삶을 사랑하는 열정, 열심히 살지만 한 박자 쉬어갈 줄도 아는 용기, 실패를 경험으로 읽어내는 능력, 그리고 나뿐만이 아닌 다른 이들 역시 잘되길 바라는 이타심. 그 모든 요소가 똘똘 뭉쳐져서 나라는 존재를 빛나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런 자신에게 글은 점점 빠져들고, 그렇게 관계는 깊어진다. 관계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은 안정기를 맞게 되고 그런 이들은 잔물결이 여울지며 흐르듯이 생각의 물길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낼 수 있다. 그러다가 진짜 글태기가 온다면? 일단 초조함은 버리고 수용하자.
진정한 권태기가 찾아왔다는 건 오랜 시간을 인고하고 희생한 이들만이 맞는 단계이다.
오랜 관계에는 지겨움이 생긴다. 애초에 권태라는 말은 싫증이나 게으름, 무기력같이 듣기만 해도 힘이 빠지는 친구들과 엮여있다. 그런 상태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한동안 거리 두기, 휴식하기가 아닐까. 각자의 시간을 갖고 지난날을 곱씹으며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 결국 그들은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먼 훗날, 내게도 그런 글태기가 찾아오려나.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러려면 일단 오늘의 밀고 당기기에 충실해지자.
지금은 권태로움보다 믿음을 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