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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Nov 12. 2023

인생의 증거. 버스를 말한다.

버스에 관한 한 내겐 그리 좋은 기억이 별로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 등하교를 위해 버스를 탔을 때 운전을 거칠게 하는 기사님들이 많았다. 한번은 학생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든다며 큰 소리로 호통치고 승객들이 앞으로 밀릴 정도로 급정거했던 기사님도 있었다. 지금에야 애들이 얼마나 심각한 소음공해를 일으켰으면 그랬을까 하고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때는 그런 기사님이 두려웠고, 또 한편으론 원망스러웠다.


고등학교 때 늦은 밤 집에 가는 버스 좌석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낯선 남자가 내 자리 앞에 서서 나의 왼쪽 어깨에 자기 다리 사이를 밀착시킨 일도 있었다. 몽롱했던 의식에 얼음물을 끼얹듯 나는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얼어붙어 버렸다. 속에서 수백 번 외쳤던 비명은 거친 숨소리를 내던 그가 내릴 때까지 결코 밖으로 새어 나올 줄 몰랐다. 어깨를 비벼댔던 그 불쾌하고 딱딱한 감촉은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불주사 자국 같다.


버스를 좋아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멀미 때문이다. 전철을 탈 때면 가는 동안 핸드폰이나 책을 보며 다른 행위를 할 수 있지만,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그랬다가는 속이 울렁거리고 두통이 몰려온다. 그래서 대부분 버스를 타면 창밖을 잠깐 보다가 그대로 잠이 든다. 잠을 자더라도 내릴 정거장을 지나칠까 봐 잠과 각성상태를 한 발씩 걸치며 내릴 때까지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를 반복한다.   

  

이제는 버스를 타더라도 기사님에게 혼이 날 나이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기분 나쁜 소릴 들을 정도로 공공장소에서 예의 없는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정신이 나갈 정도의 큰 충격이 아니더라도 여자로 살게 되면 장소를 불문하고 성추행의 기억이 어쩔 수 없이 하나둘 생기게 마련이다. 게다가 멀미는 단지 버스를 탈 때만 오는 것이 아닌데, 나는 왜 유독 버스에 대한 인식 좋지 않을까.      


그렇게 본격적으로 뇌에서 기억 상자를 꺼내 확 쏟아버리고는 떨어진 기억을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쏟아버린 성냥갑을 빼곡하게 채우다가 튀어나온 하나의 성냥 머리처럼 마침내 버스를 탔던 어느 하루가 떠올랐다.


중학교 때쯤이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몇 정거장 후 삼십 대쯤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갓난쟁이 아기를 포대기로 싸서 업고, 이제 막 네다섯 살쯤 되었을 여자아이는 왼손으로 잡고 힘겹게 버스에 올랐다. 대충 묶은 둥 마는 둥 한 머리에 목이 다 늘어진 누런 티셔츠를 입은 초라한 행색.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그들이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동안 내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떼지 못했다. 야속한 버스가 그들이 미처 좌석에 앉기도 전에 출발하는 바람에 휘청거리던 아이 엄마와 아이는 거의 넘어질 뻔했다. 겨우 자리에 앉은 그녀는 손으로 식은땀을 닦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등을 내리누르는 아기와 무릎 위에 앉은 큰아이가 내 눈에는 그녀를 짓누르는 무거운 삶의 짐처럼 보였다. 엄마란 저렇게 볼품없는 존재인가. 그녀가…. 너무 처량하고 불쌍해서 코끝이 시큰거렸다.


바로 그 순간 모나고 못난 생각이 가시처럼 마음 깊이 박혀 버렸다.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 삶의 무게를 가득 짊어지고 혼자서 저렇게 다 떠안고 살고 싶지 않다.’

버스는 누구에게도 도움받을 수 없는 외롭고 서글픈 영혼들의 굴욕스러운 이동 수단이라는 비뚤어진 믿음이 사춘기 소녀에게 심어졌다.     


내 마음의 버스가 현재에서 출발해서 오랫동안 잊힌 기억역에 도착했다. 이 역에 내린 지금, 이제는 이 황폐한 역을 생기 있는 곳으로 바로잡아야 할 때가 왔다고 직감했다.      


세월이 흘러 나도 그녀처럼 엄마가 되었으니까. 처음 엄마라는 이름이 내게 달라붙었을 때가 떠오른다. 준비되지 않은 마음가짐으로 맞이한 아기는 밤낮으로 울어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다가 포대기로 아기를 싸서 몸을 흔들거리며 무작정 방안을 서성거렸다. 성난 아기는 엄마 등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그 작은 생명이 오직 나라는 존재만 바라보았다. 아기에게 엄마는 낯설고 무서운 세상과 자신을 이어주는 가장 크고 안전한 통로였다. 다 늘어진 티셔츠, 감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퀭해진 눈가가 남들에게 어떻게 비치든 상관없었다. 나에게도 아기는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완성해주는 절대적 조건이었기에. 우리는 그렇게 우리만의 무한한 우주를 만들었다. 엄마는 어떻게든 버텨야 할 수밖에 없다. 내쉬는 숨에도 부서질 것 같은 연약한 영혼을 지켜야 하니까. 무언가를 지킨다는 건 다른 말로 강해진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그날의 그녀 역시 서글프거나 초라한 존재가 아니었다.


단지 그녀만이 아니다. 오늘도 지켜야 할 존재가 있는 수많은 이들이 버스에 지친 몸을 싣는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때는 몰랐던 지친 사람들의 어깨를 눌렀던 짐은 알고 보니 그들이 스스로 받아들인 의미 있는 고통이었다. 이제는 버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버려야겠다. 버스는 누구보다 강한 영혼들의 험난한 노정과 그 길에서 내뱉은 한숨까지 묵묵히 받아주는 거대한 인생 역사의 움직이는 증거니까.


다음 주말에는 딸과 버스 타고 서울 나들이를 보고 싶어졌다.




#라라크루#갑분글감#버스#세상재밌는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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